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Nov 14. 2022

밤바다의 매력

울지 마요, 다 괜찮아요

바다 가까이 살지만 어떤 날은 바다가 그립고, 바다 가까이 살기에 언제든 마음먹으면 볼 수 있다며 바다 옆을 지나면서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칠 때도 있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나의 상황, 생각에 따라 눈에 담고 담지 않고... 바다를 대하는 자세도 바뀐다.



나는 요즘 1주일에 2번 광안리 바다를 만난다. 해변가 한 블록 안 골목에 위치한 공방에 수업을 들으러 간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지만 늘 바다를 지나쳐간다. 매번 수업시간에 빠듯하게 도착하기에 여유 있게 바다를 바라볼 여유는 없다. 그냥 저 자리에 있는 무언가로 느껴지기에 자주 보는 바다 언젠가 조금 시간이 남으면 꼭 한 번 앉아서 커피를 마시자-한 번은 그러겠지- 이런 마음으로 바삐 지나간다.



밤 10시. 수업을 마치고 나와보니 날이 쌀쌀해져 있었다. 두르고 온 목도리를 잘 여미면서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길을 걸었다. 이 시간에 밖에 있는 게 얼마만인지- 어린아이를 키우는 사람에게 밤 10시는 아이를 재우는 인내의 시간이거나 운수 좋은 날이면 육아에서 탈출한 시간이다. 그런데 그곳은 그 시간,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나도 결혼 전에는 이 시간을 즐겼지만 몇 년 만에 만난 낯선 상황은 나만 뚝 이곳에 떨어진 느낌이 들면서 신비롭기까지 했다.



'길 건너가서 바다 사진이라도 찍을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시간, 나만 훌쩍 이 광경을 지나쳐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바다를 즐기기에는 1시간 동안 집으로 가야 하는 길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냥 사진이라도 하나 찍자 싶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느냐, 혼자 물어보며 신호등을 건너 바다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밤바다는 정말 오랜만이다. 아이들과 바다를 보러 다니지만 늘 낮에 왔었고, 그것도 한적한 바다만 다녔지 광안리나 해운대처럼 관광지 바다는 찾아오지 않는다. 



안녕, 광안리.

새롭게 꾸며놓은 광안리 밤바다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데,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커플도 있고 친구사이도 있고, 그리고 혼자 앉아있는 여자도 있었다. 누구와 함께면 어떠리- 시원한 날씨에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뭐가 됐든 좋겠지 싶었다. 나도 예전에 저랬는데 싶은 구닥다리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따라 눈길이 이동하다가 한 명에게서 멈췄다. 

'혹시 우는 건가?'



힐끗힐끗 멀리서 쳐다보니 혼자 앉은 여자가 울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나이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20대로 보였고,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눈물만 흘리며 손으로 닦고.. 엉엉 세차게 울지 않았지만 울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 있을까, 그래 울고 싶은 일이 참 많지. 20대라면 더더욱 구덩이 파는 일이 많아. 그렇지 맞아. 취직이 잘 안 되나? 누군가와 이별을 했나? 부모님이 아프신가? 친한 친구와 다퉜나? 

무슨 이유가 되었든 내 인생이 참 내 맘대로 안되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라는 사실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 나이쯤 알게 된 사실 또 하나는,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가야 하기에 발길을 돌려놓고도 계속 눈이 그곳에 머물렀다. 길을 건너려고 신호등에 서있으면서도 눈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별 일 아닐 거라고 커피라도 한 잔 건네주고 싶었다.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을 방해할까 봐- 완전 오지랖 넓은 이상한 아줌마로 볼까 봐-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날 잠드는 순간까지도 그 사람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

20대, 고민이 다양하고 깊고 무거웠다. 그 시절을 제대로 즐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저 도전하고 성취하는 것에만 매진하고 또 실패하고. 내가 세상의 어떤 곳에 필요한 존재일지 시험하는 시간이었다. 받아들여지는 곳이 있다면 감사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경험은 낮은 나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아프고 또 아픈 시간들. 그게 20대였다.



그런 마음을 털어놓기에는 밤바다가 딱이었다. 훤한 대낮은 사람들 눈에 띄기에 나의 마음, 눈물을 가려줄 수 있는 밤이 좋았다. 시끌한 분위기 속에 나 혼자 덩그러니 앉아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슬플 수 있었다. 시커먼 바다는 파도를 넘실거리며 나의 이야기에 대답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말하기 초라하고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내가 부끄러울 때 바다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시간이 지나도, 바다는 그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예전의 내 모습이 보였다.

오지랖 아줌마 같아서 끝내 전하지는 못했지만, 

무엇이든 다 괜찮다는 내 말이 전달되었기를-

오늘은 울고 있었지만 눈물을 다 쏟아내고 내일은 웃을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3년 만에 다시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