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그리며
글을 쓰면서 좋은 점은 가끔은 나를 다른 사람을 대하듯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졌다고 해야 할까. 어떤 일에 대해서 쓰다 보면 그 대상에 대한 좋고 싫음 등의 넘치던 감정이 어느새 누그러져 보통의 마음으로 변한다. 감정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 글을 쓰면서 털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때가 많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 나에 대해서 더 많이 느끼게 되고, 그래서 글쓰기를 치유라고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글을 매일 쓰고자 했을 때 힘들었던 점은 '도대체 뭘 쓸까'에 대한 것이었다. 예전에 감사일기를 쓰던 시절, 노트를 펴면 매일 똑같은 감사할 일만 떠올라서 오늘은 뭐가 특별히 고마웠는지 머리를 쥐어짜게 된다. 건강해서 감사하지, 무사히 오늘을 지내서 감사하지. 아는데.. 어제와 다른 오늘 뭐가 있었나.. 밤에 조용히 앉아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눈까지 꼭 감고 말이다. 영화처럼 아름답고 스펙터클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 둘은 있다는 사실.
비슷비슷하고 여전히 되는 일이 별로 없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그 안에서 뭐라도 써야만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며 쓸거리를 찾고 감사할 거리를 찾는 나의 노력이 하루 둘 쌓이면서 이제 그 과정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쓰는 일은 이제 습관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니 쓸거리를 발견하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쓰려니 쓸거리를 발견하려 애썼는데 이제는 거꾸로 수시로 쓸거리가 찾아와 쓰게 만든다.
'이거 써야지' 이러면서 얼른 노트를 꺼내 한 줄로 요약을 해두기도 하고, 종이나 펜이 없을 때에는 카톡을 열어 나에게 글을 남겨둔다. 글을 쓰는 시간에 힌트가 되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나의 감정을 살피고 지금의 상황을 되짚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나에 대해서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 관찰력이 늘었다고나 할까. 지금 나의 상태를 그대로 쓰려고 하다 보면 어제의 일도 나의 감정을 차분히 따라가게 된다. 어제 그 시간과 똑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있지만 최대한 이걸 왜 쓰는지, 그때 나는 무얼 느꼈는지 살펴볼 수밖에 없다. 나는 왜 그랬는지, 저 사람은 왜 저러는지-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어쩔 때는 쓰다 보면 저절로 받아들이게 되는 일. 내 마음을 잘 알려고 애쓰다 보니 타인의 마음까지도 헤아려주고 싶은 오지랖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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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면서 좋은 점은 그리는 사물에 대해 디테일하게 살펴보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파도치는 바다를 그렸다. 잔잔한 바다와는 또 다른 분위기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생각을 하며 그려내기 시작했는데, 파도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파도의 윗부분은 하얗게 칠하고 점점 밑으로 갈수록 진해지는, 단순한 기법으로 그리다 보니 내가 매번 보던 파도와 다른 모습이었다. 이게 아니지- 이건 내가 봐도 아니지- 열심히 그리다가 부끄러워졌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참고하던 사진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화면에 전체 그림이 보이던 사진을 파도 부분만 크게 확대해서 보기 시작했다. 돋보기를 가져다 댄 채로 가까이서 가 자세히 보니 어떤 모습인지 조금씩 감이 잡혔다. 아, 너는 이렇게 생겼구나-
그림을 그리는 것 또한 글을 쓰는 것처럼 대상에 대해 관찰을 해야 잘 담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사람과 사물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관찰하면서 애정을 느낄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풍성해질까. 글을 쓰는 일만으로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림을 그리는 일까지 더해지니 세상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 가속도가 붙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