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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Nov 21. 2022

심심하면 언제든 놀러 와

엄마는 너를 기다려

나의 일상을 사느라 요즘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둘 다 백수니까 점심을 먹자고 부를 법도 한데, 돈을 벌지 못할 뿐이지 나는 백수치고 너무 바쁘다. 내 점심 챙겨 먹는 30분도 어쩔 때는 눈으로 할 일을 하며 손과 입만 바쁘기도 한다. 직장을 다니지도 않는 딸이 도대체 하루 종일 혼자 뭘 하는지 엄마는 알 리가 없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러 간다 하더니 매일 조용하니까.. 그냥 뭘 또 하나보다 짐작만 할 뿐 굳이 찾거나 묻지 않는다. 딸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말이다.



엄마는 물어볼 것이 있어서 전화를 해놓고 통화 끝에 슬쩍 "오늘은 뭐해? 오늘도 바쁘지?" 이렇게 물어본다. 왠지 바빠 보이는 딸을 잡고 정말 스리슬쩍, 도대체 뭘 하길래 매일 바쁘다고 하는지 대놓고 묻지 않고.. 그 물음도 방해가 될까 봐 구구절절 질문을 하지도 않는다. 전화한 목적을 해결하고 끊고 나니 문득 우리의 대화가 차갑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일들을 하느라 바쁜 딸. 엄마는 혹시 그냥 말을 걸어보려 전화를 했을까, 진짜 전화를 한 이유는 다른 게 있었나 싶기도 했다.



[요즘도 바쁘게 지내지?! 심심하면 언제든 놀러 와]

며칠 뒤 훅하고 들어온 카톡 하나. 엄마라는 존재는 이런 건가.. 마음이 휑해졌다. 다 컸다고- 이제는 자기 자식들 챙기고 내 할 일 하느라 바빠서 전화도 먼저 하지 않는 딸에게 언제든 놀러 오라고 하는 말. 분명히 '엄마는 너를 기다려' 이 말이 쓰여있지 않았는데 이런 글자만 크게 보이는지...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더 엄마의 마음이 잘 느껴져서 어쩔 때는 내 마음인지 엄마 마음인지 구분이 되지 않기도 하고. 카톡 하나를 받아 들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부모는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봤다. 아이들이 어릴 때야 부모한테 붙어서 매달리고 부모 없으면 울기까지 하지만, 10살이 되고 11살이 되고.. 사춘기까지 시작되면 너와 나 분리가 철저하게 시작된다. 언제나 어린아이 같고 무언가 해줘야 할 존재로 느껴지지만 점점 아이가 크면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적어질 게 분명하다. 1살 때와 7살인 지금도 완전히 다르니까 말이다. 하나씩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나의 일이 줄어드는 게 반갑지만, 온전히 자신의 하루에 엄마가 필요하지 않을 때는 또 다른 상황이겠지. 그러니 아이 키울 때 힘들었지만 지나 보면 그때가 황금기였다는 이야기가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된다.



친구 찾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시간을 채우는 동안, 부모는 가끔 혹은 자주 아이를 기다리겠지. 잘하고 있으리라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내가 먼저 연락을 하려다 멈추기를 반복할 것이고.. 이제 큰 아이가 7살이니까 5년쯤 뒤에는 나도 아이들의 삶에서 조금 빠져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바라게 되었다. 온전한 한 사람으로 독립을 시키는 것이 육아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하는 일의 종착점이라고 하지만, 상상하면 마음 한편이 허전하기도 하다. 그것은 그저 부모인 나의 몫이겠지만. 



언제든 놀러 오라는 엄마의 기다림과 배려. 자식이 마흔이어도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애쓰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바로 달려와주는 사람. 부모는 언제나 기다리고 내어주고... 나 또한 그러겠지..

조만간 엄마를 불러서 점심도 먹고 드라이브도 하고 하루를 공유해야겠다. 백수 딸 좋은 게 뭐야, 평일에 같이 놀러 다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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