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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Dec 12. 2022

나의 초라함은 나만 안다

나는 요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 문화생활을 즐기는 건 나와 별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누구나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고 싶은 마음이 커져가고 있다.


책을 읽었더니 책을 쓰게 되었고, 책을 썼더니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 자연스러운 연결 안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알게 되었고 여전히 부족하고 두려운 것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지금이 좋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 여기까지 왔을까 신기하면서도 새로운 길 앞에서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내년 중순쯤,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고 나면 오프라인에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조바심 내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때가 되면 시작하자, 그런 마음이었다. 그래서 아직 남은 6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글쓰기로는 강의를 하고 마음이 동하면 다시 온라인 글쓰기 모임도 열고, 그림 공방 창업을 위해 배우고 그리는 연습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글을 쓰는 건 이제 익숙하지만 그림은 아직 나에게 착 붙지 못했기에 조금 더 애를 쓰자며 말이다.


글과 그림으로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 꼭 그것들을 통해 드러내지 않아도 함께 하는 동안 내 안의 복잡함을 내려놓고 리프레시가 된다면, 그 공간을 제공해주고 공유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쓰고 그려서 전시회나 독립출판을 하면 더욱 좋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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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공방을 열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두 번째 책 출간. 아니 출간까지 아니어도 계약이라도 말이다. 올해 안에 출판사와 계약을 한다면 두 권의 책을 쓴 사람으로 조금 더 자신 있게 클래스를 열고 운영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쓰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다음 단계로 가는데 꼭 필요한 스텝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출간. 책을 하나 내어봤다고 그 과정을 다시 하는 일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닌가.. 어쩌면 내심 '한 권은 써본 사람이에요, ' 0.1초 생각하며 메일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뭐 내 마음이야 어찌 됐든 첫 번째도 두 번째도 결코 쉽지 않다. 한 번 해봐서 거절의 씁쓸함은 너무 잘 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이 아픈 건 똑같다. 전투적으로 투고 메일을 보내다가도 멈춤 상태로 몇 주가 흐르고, 오랜만에 열어본 메일함에는 거절 메일만 수두룩하고... 그래도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또 슬쩍 투고 메일을 쓰고... 꼭 하고 싶은 일인지 그냥 해야 할 것만 같은 일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나 자신에게 묻고 있다.


글을 쓰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은 천지차이니까, 그래도 같이 글을 쓰자고 말하려면 글을 쓰는 건 당연하고 책도 계속 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첫 책을 낼 때는 아이들을 재워놓고 밤 11시부터 매일같이 원고를 잡고 씨름을 했으면서 지금은 그 정도의 열정이 없는 거 아니냐고-혼자 묻고 답하고 또 묻고. 괜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자꾸만 작아진다.


선택받아야만 하는 일. 좋은 끝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믿지만 언제까지일까. 단번에 선택받지 못한다면 뭐가 잘못된 건지 기획서를 요리조리 고치고. 누군가는 척척 책만 잘 내던데... 능력에도 없는 일을 자꾸만 도전하는 건지 초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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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가 글을 쓰는 일로 돈을 잘 벌고 있다면, 이렇게 책 하나 내는 일에 매달리지 않을까? 

복합 문화공간을 꾸려가는 일에 내가 자격이 있을까?

누가 오기나 할까?


사람이 한번 작아지면 우르르 부정적인 생각들이 밀려온다. 한겨울 활짝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세찬 바람보다 새시 틈새로 들어오는 외풍이 더 시린 것처럼 어느샌가 비집고 들어온 스스로를 향한 화살은 꽤 아프다.


 


내 길을 간다는 게 얼마나 자신의 초라함과 싸워야 되는지 알아요?





오늘도 미경언니는 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 당장의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어쩜 이렇게 잘 아는지- 지금 하는 일은 돈도 벌리지 않고 애써도 제자리 같을 때, 반대편의 사람들을 보고 자신의 초라함을 느끼는 그 마음. 당장 벌어지는 돈은 진짜 내 돈이 아닐 수 있고 지금 미래에 투자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성장하려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진짜라고 이야기해주는 영상을 보고 '그래 그렇지' 푹 꺼지는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다가도 만족하는 시간들이 반복되고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건 두려울 수밖에 없고, 보이지 않는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가봐야 안다. 잘될 수도 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 망해도 남는 게 있다는 웃픈 진실에 기대어 오늘도 내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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