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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Dec 27. 2022

다정한 한 마디, 오늘도 수고했어

오늘도 수고했어!!


친구와 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 자라는 인사로 마무리를 지었다. 밤 11시, 늦은 시간이었고 자려고 누운 상황에서 톡을 하다 보니 오늘 내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었다. 잘 자라는 말과 동시에 튀어나온 이 말, 오늘도 수고했어!!

하루를 떠나보내며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와 인정의 말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나는 참 수고했다.



주말에 큰 아이는 아침에 목이 잠기기 시작했고, 그 증상은 조금씩 심해졌다. 월요일 아침, 주말에 두 아이들과 부대낀 후라 피곤하기도 하고 원에 보내려는 마음이 더 급해지는 시간이다. 그런데 아이가 일어나며 목이 아프다고 이야기를 했다. 목소리가 잠기고 목이 아프다는 걸 보니 편도가 부었구나 싶었고- 순간 미안하게도 이대로 원에 보낼지 말지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증상이 이런데 그냥 아이를 보낼 수는 없어서 진료 시간 전 서둘러 소아과로 갔다. 감기, 독감이 많은 계절이고, 하필 월요일 아침이라 도착해보니 이미 대기실은 만석이었다. '최소 40분 최대 1시간은 걸리겠구나' 기다리는 사람들의 수만 봐도 대충 의사 선생님을 만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파악이 된다. 엄마 짬밥 7년 아닌가.



거의 1시간을 기다려 만난 의사는 나의 예상대로 아이의 목이 부었다며 열이 날 수도 있다고 했다. 두 아이들과 진료 대기를 1시간쯤 하고 나니 벌써 오늘 쓸 에너지를 다 쓴 느낌이었다. 첫째는 오늘 가정보육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 둘째는? '이대로면 오늘은 등원을 못하겠구나'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한데 한 명이라도 어떻게든 보내고 싶은 생각에 끝까지 미련을 떤다. 



하루면 되겠지 싶었던 가정보육이 오늘까지 넘어왔다. 여전히 아이의 목소리는 잠겨있고 몸이 쳐지는지 자꾸만 누워있다. 평소에는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을 할 만큼 웃음도 말도 많은 아이가 이틀 동안 말도 거의 없다. 말을 하니 목이 아프기도 하고, 몸이 안 좋으니 만사 귀찮고, 동생이 목소리 이상하다고 얘기하니 맘도 상하고...





직장을 다니지 않고 기한이 정해진 일을 하지도 않지만, 내 나름의 일이 있다. 프리랜서이기에 하루 그리고 한 주 건너뛴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하지 않아서 좋지만, 사실은 그게 참 무섭다. 만들어놓은 루틴과 계획이 무너지는 건 참 쉽기 때문이다. 스스로 관리하지 않으면 시간은 그냥 흘러가고 허무해지기 딱 좋은 나의 일들. 아이들이 아프면 시간이 여유 있는 엄마라 집에 함께 있어줄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반대로 나의 스케줄은 모두 취소가 된다. 어제오늘처럼.



2달째 매주 내가 지키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 유튜브에 그림 영상을 올리는 것인데, 8주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실행하고 있다. 보통 월요일에 영상을 찍고 편집을 거친 후 수요일쯤 업로드를 하는 루틴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아이와 함께 있다 보니 이번주는 물감을 꺼내보지도 못했다. 벌써 화요일인데, 오늘이 아니면 이번주는 못 올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아이 낮잠을 재워놓고 거실로 나왔다.



캔버스, 물감, 붓, 촬영 스탠드를 주섬주섬 꺼내서 세팅을 한 후 나만의 작업에 집중했다. 오늘 찍을 그림은 시간이 조금 소요되는 그림이라 촬영을 하는 사이에 아이가 깨버렸다. 1차로 작업을 하고, 아이와 점심을 챙겨 먹고 나머지 촬영까지 끝냈다. 영상을 만들어놨으니 이제 아이가 밤에 잠 들고나면 편집을 하기만 하면 된다. 

오늘의 내 분량은 해냈다.




수고했다, 오늘도 정말.

이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하루였다. 

엄마로 나로 동시에 사는 매일이 참 애쓴다싶다.




나도 그대도 오늘 참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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