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Feb 29. 2024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어제 7년 동안 살았던 집과 이별을 했다. 큰아이가 2살이 되던 해 봄 이곳으로 와 9살이 되어 나가는 집. 이사 전날 마음이 심란했지만 막상 이사 당일에 아저씨들이 오고 짐을 하나씩 빼도 기분이 괜찮았다. 감정이 무뎌졌나 싶은 순간 3,4년 전 이사오셔서 오가며 인사를 나누는 딱 그 정도의 사이로 지내는 앞 집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셨다.


"이사 가나 봐요~안 그래도 이사 적힌 거 보고 놀랐어요."

그래도 아는 사이인데 이별인사는 해야지 하고 며칠 전부터 앞집 할머니, 할아버지를 마주치길 바랐다. 이사인사를 한다고 띵똥 초인종을 누르는 건 좀 오버 같고, 우연히 만나면 소식을 전하기 좋은데 한 번을 마주치지 못하던 참이었다. 아침부터 나오시길래 어딜 가시나 했는데 시끌한 소리에 인사를 먼저 건네러 오셨다.


"아이들 키우는데도 조용하고 부부가 참 사람 좋던데 간다니 아쉬워요~"

왕래가 많이 있는 게 아니었는데도 우리를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했다. 처음으로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만나는 마지막 날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이제라도 좋은 인연이었음을 서로 확인받는 게 좋았다.


"가서 더 좋은 일 많으시고 건강하세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어르신의 진짜 마지막 덕담에 나는 눈물이 고였다. 건네받는 인사 속에 내가 이곳에서 사는 동안의 의미를 생각했고, 이웃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였구나 싶기도 했다. 오가는 동안 인사만 하지 말고 한 마디라도 더 해드릴 걸, 마지막이 되니 많은 게 아쉬웠다.


앞집사람 얼굴도 모르고 사는 세상이라고 누군가는 이야기하지만, 마지막이 되니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갔다.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날이라면...?'


누구나 많이 진부한 이 질문을 한 번쯤 받아 받으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받기도 하고 타인에게 글감으로 주기도 하는 물음 중에 하나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마지막이라는 순간은 사람을 뚜렷하고 단순하게 만든다. 이것저것 비교하고 욕심부리는 그 복잡 미묘하고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도 '마지막'이라는 단어 앞에서 힘을 잃는다. 아니, 많은 것들이 정확해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니 저 깊숙한 곳이 단단해진다. 그러니 진짜 내 마음이 무엇인지 마지막이라는 순간, 그제야 알게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말이다.


마지막은 늘 그랬다.

아쉽고 시원하고 더 원하고 내려놓고.

그 공간에서의 마지막도 그랬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정한 한 마디, 오늘도 수고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