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Nov 16. 2022

칭찬은 마흔도 춤추게 만든다

살다 보니 재능이 많다는 소리도 듣는다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기에 나의 재능에 대한 칭찬을 들어본 적 없다. 공부를 잘하지도 그렇다고 눈에 띄는 특기도 없어서 무난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우와, 재능이 정말 많네요"


어쩌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듣게 된 건지-

꿈이냐 생시냐-



-

어릴 적부터 특출 나지 않는 아이가 공부도 썩 잘하지 않았다. 예전에야 부모들이 아이의 재능을 뚫어져라 관찰하지도 않았으니 대부분 무난하게 살곤 했다. 공부도 중간, 생긴 것도 중간, 성격도 중간. 모든 분야에 중간으로 사는 하루하루가 좋기도 싫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노력이라도 할 텐데... 공부를 해야 하는 것 말고 나에게 주어진 미션은 없었고 더구나 내가 잘하고 싶은 무언가도 없었다. 10대도 20대도 30대도.. 그냥 그렇게 살아왔기에 '나=oo'이런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쭉 그렇게 희미한 듯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런 내가 30대 후반, 마흔이 다되어서 처음으로 재능이 많다는 칭찬을 들었다. 4살이 아니고 40살에 말이다. 더할 수 없이 좋은 칭찬이 얼떨떨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얼굴이 발개졌다.



"책을 냈어요? 우와-"

"책이 아니라 그림 전시를 하는 거예요?"


어쩌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건지-신기하고 낯설고 꿈같고 막 그렇다. 



그림과 글. 모두 재능이 있어야 하는 일이 맞다. 아니, 대부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나 역시도 쓰고 그리는 누군가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할 게 분명하다. 두 가지 분야는 특히 재능이 필요한 거 아니겠냐고, 하나도 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두 개를 다 하느냐며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가 보다-이런 말을 나도 똑같이 전했을 것이다. 

이런 말들이 고마우면서도 내가 이 일들을 특별히 잘하지 못한다는 걸 너무 잘 안다. 겸손이 아니라 정말 특출 난 재능을 뽐낼 만큼 나의 글과 그림은 뛰어나지 않다. 이 일들을 하는 이유는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일,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일 딱 그 정도이다.



그냥 시작하고 보니 잘하고 싶어 졌다.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잘 쓰게 될 것이고, 그림도 그리다 보면 잘 그리게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조금 모자라고 서툴더라도 이어나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글을 쓰지도 않던 사람이 책을 내려고 했고, 그림을 그리지도 않던 사람이 전시회를 한다고 했다. 목표는 정말 대뜸 세웠고, 높은 곳에 닿기 위해서 몇 달을 그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짠하고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쌓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책이 술술 읽힌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참 좋다. 나온 지 2년이 지난 책이라 이제는 누가 읽을까 싶다가도 최근에 내 책을 읽었다며 좋은 평을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채워진다. '얼굴을 마주했으니까 좋게 말하는 거겠지' 싶다가도 '책이 별로였으면 읽은 척도 안 하겠지' 좋은 그 말을 믿고 싶어서 애를 쓴다. 

글을 쓰지 않던 내가 저 높은 곳에 있는 저자라는 이름을 가지려고 했을 때, 불안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내 글이 쓸모 있을까, 지금 투자하는 시간들이 의미 있을까 매일 걱정했지만 쓰고 있는 글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니, 보여줄 수가 없었다. 불안했지만 이걸 보여주고 돌아오는 피드백이 부정 가득한 빨간색이라면 나는 시작도 못해보고 쭈그리가 될까 봐 혼자 끙끙 앓으며 그냥 불안감에 흔들리는 쪽을 택했다. 나를 믿는다기보다 글을 쓰고 수정하는 시간을 믿었다. 하다 보면 잘할 수밖에 없다는 진실에 기대어 잘 쓰게 되는 나를 늘 상상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도 기분이 참 좋다. 사실 표현하고 싶은 느낌을 다 담지 못하고, 여전히 아마추어의 실력이다. 이제야 조금씩 누군가의 그림을 보면 표현법이나 색상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그렸겠구나 감이 잡히는 때도 있고, 이렇게 색감을 쓸 수도 있구나 기억해두려고 기록을 해둔다. 그림의 메시지도 없이 그냥 떠오르는 대로 그림을 그려내기도 하는 상황이라 작가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그래도 전시라는 큰 목표를 잡고 어떻게든 시간과 공을 들여 해내는 편이 나에게 이롭다는 걸 안다. 한 단계를 뛰어넘으려면 미완성의 것을 보여주는 부끄러움까지도 넘어서야 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의 반경은 넓어졌다. 이런 일들을 하며 살아가는 자체로 그리고 재능이 많다는 칭찬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내가 살아오던 테두리를 넘어섰다. 또 어디로 가서 내가 어떤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걱정이 쌓일 때마다 나에게 재능이 많다고 칭찬해주던 사람들이 떠오를 것 같다. 

내가 나에게 '너 참 재능이 많구나' 얘기해줄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지속하고싶다. 그리고 결국 나에게 그 말을 해주고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 참 많이 변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