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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Jul 23. 2021

엄마, 문이 안 열려

괜찮아 괜찮아

아이들이 스스로 하겠다고 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중에 요즘 두 아이 모두 꽂혀있는 것은 현관 비밀번호 누르기이다. 아파트 출입구와 집 현관. 두 군데 번호를 눌러야 하는데 이걸 서로 누르겠다고 난리법석이다. 한 명이 누르면 다른 한 명은 들어가지 않는다. 문이 닫히기를 기다렸다가 자기 손으로 문을 열고서야 입장한다. 요즘처럼 더운 날, 이 엄마는 무슨 죄인지 한참을 밖에 서서 두 아이가 직접 2번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 개의 문을 통과할 때마다 2번 눌러야 하니.. 총 4번 문이 열리고 닫혀야 우리는 온전히 집에 도착한다.


어제, 하원길에도 여느 때처럼 아파트 출입문을 2번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집 현관. 어쩐 일인지 둘째가 먼저 들어갔고 우리도 들어가자 했더니 첫째가 안된다고 문을 닫아버렸다. 자신도 번호를 눌러 다시 열고 싶다며. 문이 닫히고 첫째가 다시 비밀번호를 눌렀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뭐지? 내가 다시 비밀번호를 눌렀다. 분명 맞게 눌렀는데 손잡이를 아무리 돌려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둘째가 안에서 잠금장치 하나를 돌려서 잠가버린 것이다. 잠금장치가 총 2개인데... 비밀번호로 여는 것이 아닌 손잡이에 달린 잠금장치를 돌려버렸다. 이런 일이...


4살 아이는 혼자 집에 들어가 버렸고, 나와 6살 딸은 문 밖에 서서 어쩔 줄을 몰랐다. 열쇠를 들고 나오지도 않았으니 내가 열 방법은 없었다. 어쩌지. 겁이 많은 4살 아들은 울먹이기 시작하고 나는 아이를 진정시키며 어떻게 이걸 열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엄마 목소리는 들리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아이가 더 무서울 것 같았다. 그래서 현관 아래쪽에 있는 우유 투입구로 얼굴을 들이밀고 아이에게 엄마가 여기 있으니 괜찮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잠금장치를 반대방향으로 돌려 열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자신이 뭘 돌려서 잠근 것인지 알지 못하는 듯했고 놀라서 손에 힘이 빠졌는지 다시 돌리지를 못했다. 안된다고 얘기하며 울먹이는 아이. 이걸 더 해보라고 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아이가 아닌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 되었다. 


"엄마 화장대에 열쇠 꾸러미가 있어, 그거 갖다 줄 수 있어?"

"엄마 바지라도 내줄 수 있어? 그럼 베란다로 들어가 볼게."

"괜찮아, 도와줄 아저씨가 올 거야. 금방 문 열려."

"엄마랑 누나 목소리 들리지? 무서워하지 마"


우유 투입구로 보이는 아이의 발. 낮이었지만 불이 꺼진 집이 무서워서 현관문에 기대어 최대한 우리와 가까이 서있는 아이. 너무나 고맙게도 아이는 대성통곡하며 울지 않았다. 집에 같이 있어도 불 꺼진 방에 혼자 들어가지 못해서 엄마를 꼭 부르는 아이다. 엄마가 손잡고 들어가 불 좀 켜달라고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다고 이야기하는 아이. 그런데 혼자 저렇게 있는 게 얼마나 무서울지... 그 마음이 느껴져서 아이를 안심시키는 일에 제일 신경을 썼다. 


도저히 혼자서는 방법이 없어서 일단 관리실에 sos를 요청하고 누군가 오시기를 기다렸다. 

아이가 문을 열지도 못하고, 열쇠도 없다면 이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은 단 두 가지. 열쇠가게 아저씨를 부르거나 베란다를 통해 집으로 들어가거나. 물론 1층이기에 후자가 가능하다. 내가 바지를 입고 있었다면 베란다를 넘어가려는 시도라도 했을 텐데 하필 치마를 입고서... 그래서 할 수 없이 누군가를 불렀다.


우리 집은 1층이지만,  앞 베란다는 1.5층 높이라 방범창을 설치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관리실에서 도와주러 오신 분이 넘어가겠다는 말을 하셨다. 갑자기 아저씨가 집으로 들어오면 아이가 또 놀랄 테니 그 소식도 계속 전해줬다.

"아저씨가 베란다로 들어가서 문을 열어줄 거야. 놀라지 말고 기다려. 이제 진짜 문 열릴 거야 알겠지?"

"은우야, 엄마 여기 있어. 베란다 쪽으로 와봐. 조금만 기다려"


아이를 그렇게 애타게 불러본 적이 지금까지 없었다. 혼자 무서울 아이를 생각하니 목소리가 절로 커지고 계속 아이를 부르게 되었다. 옆에서 6살 누나도 동생을 안심시키느라 바쁘고... 긴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마음이 타들어갔다.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많이 무서웠지? 울고 싶은데 꾹 참았어? 울지도 않고 너무 용감했어. 이제 괜찮아 괜찮아"

처음에 당황해서 훌쩍거리고서는 끝내 울지 않던 아이였는데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물론 나도 함께. 아이와 내가 진정하고서야 문을 잠그면 안 된다고 일러주면서 아이 혼자 집에 들어가게 두는 건 절대 안 되겠다며 나에게도 당부했다.







아이를 키우면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난다. 나는 그런 일에 사실 무딘 편이다. 넘어지는 일에 하나하나 다 예민하게 굴 수 없고, 크면서 더 큰 일도 많은데... 그런 것에 너무 크게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놀라고 흔들리면 아이는 다 느끼게 되는 법이니까.


어제의 그 상황에도 아이를 위해 더 차분해야 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문은 결국 시간이 걸리지만 열릴 것이고 아이가 다치는 일도 아니다. 다만 무섭다는 생각이 아이를 누르지 않게 하는 게 내가 할 일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전화할 때도 관리사무소에 전화할 때도 최대한 조용하게 별 일 아닌 듯 통화를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애들은 사고나. 잘 봐야 돼 진짜.'

나의 엄마가 늘 했던 이야기. 그 이야기가 다시 들렸다. 진짜 매일 일어나는 일인데 하나 어긋나 이런 사건(?)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게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아이가 다치치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너무 놀라서 밤에 잘 못 자거나 영향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자고 잘 먹었다. 아무래도 내가 더 놀랐나 보다.


이제는 꼭 3명이 같이 들어가고 나가고 그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끝은 해피엔딩이었지만 이 과정을 겪기는 싫다. 이런 일들이 다시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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