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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Oct 06. 2021

선을 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그와의 인연은 심플해야 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포지션이 형성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성격들로 배정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과정을 통해 너와 나의 그림이 그려진다. 누가 지정해주는 것도 아닌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격에 따라 어떤 역할들이 주어진다.



연락면에서 본다면, 먼저 연락을 하는 쪽과 먼저 하지는 않는 쪽.

표현면에서 본다면, 민망하다며 말보다 행동이나 선물 등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쪽과 말로 표현하는 쪽.

성격면에서 본다면, 성격이 급한 쪽과 성격이 느긋한 쪽.

똑같은 성향이라 가까워지기보다 반대의 성향의 끌림에 의해 인연이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요즘 나는 나라는 사람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를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어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일단 성격이 급하다. 해야 하는 일은 지금 당장 시작하고, 계획보다 시간이 남으면 당겨서라도 해치우는 편이다. 시간을 빈둥거리게 두는 건 상당히 기분이 나쁘고 무기력해지는 계기가 된다. 그걸 알기에 매일 아침 오늘 할 일에 대해 정리하고 하나씩 클리어 해나 간다. 

잘하려 애쓰지 않고 이것저것 그냥 한다. 질보다 양. 이제 막 나의 일을 시작하는 나는 그것이 결국 질을 높이는 길이라 믿고 있다. 이것저것 재는 사이, 포기하는 일이 많아지는 걸 막으려 애쓴다. 

그런데 이런 성격이 실행력은 높으나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서는 상대방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성격이 급하기에 득이 되기도 실이 되기도 하는데...



특히, 누군가와 트러블이 생겼을 때 그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한다. 

남편이든 친구든 부모이든 오해가 생기면 그걸 바로 해결하려고 든다. 묵혀두면 더 생각이 커지고 오해 또한 다양해지고 깊어진다고 믿기에 어떻게든 먼저 말을 걸고 풀려고 노력을 하는데... 누군가는 나를 자기 멋대로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오래된 친구가 있었다. 

멀리 떨어져 버린 지금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나는 그 안에서 항상 저자세였다. (오직 나만의 관점이다. 같이 이런 이야기를 나눠본 적 없는 이기적인 결론일 수 있다) 자주 보는 사이였기에 트러블이 생기는 횟수가 빈번했고 그때마다 똑같은 이야기와 상황이 반복되었다. 약간은 제멋대로인 친구의 행동에 대부분 내가 서운함을 느꼈고 이런 점들에 대해 나는 토로하고 그 친구는 또 이러는구나 싶은 말투로 대화를 나눴다. 



그는 급할 게 없어 보였고 항상 당당했다. 그에 비해 나는 나의 기분 상함과 이런 점을 조심해달라는 그리고 오해.. 그런 부분을 혼자 설명하기 바빴다. 한두 번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서 빠져줬어야 했을까. 나는 우리가 하루 이틀 만난 사이도 아니고 쌓은 시간 동안의 추억과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 믿음을 전제로 어떻게든 이 불편함을 풀기 위해 애를 썼다. 항상 먼저 전화를 하면서. 

그로 인해 나는 기분이 나쁜 건데 상황의 과정, 끝에 대한 마음 불편함은 늘 나의 몫이었다.

그 친구는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불편함의 주인공이었지만, 나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그 친구는 다른 사람들과 일상을 잘 지냈다. 내가 전화를 하면 그제야 그런가 보다 하는 듯 이야기를 나눴고 자신이 문제 있는 발언과 행동을 했음에도 사과는커녕 뭐 그런 걸로 그러냐는 듯 이야기를 했다.



우리 사이에 기분이 나쁜 일이 대부분 일방적으로 발생했지만, 나에게 늘 이런 생각이 있었다.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낸 이 친구, 젊은 시절 추억이 많은 이 친구를 놓으면 과거의 내가 다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나둘 마음이 벽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는 서로라는 단어에서 멀어졌다. 다시 좋은 관계로 유지할 기회를 줬지만 우리의 마지막 장면은 씁쓸하고 슬프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 걸 보면 나는 그 친구에게 아무것도 아니구나.. 인정을 하기까지 그리고 다시 내가 연락을 하고 싶은 그 마음을 누르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의 20년을 채운 관계임에도 끝은 생각보다 쉬웠다. 나만 그 관계에서 조금 가벼워지면 되는 일이었다. 허무했고 구질구질했다. 





관계의 심플함


지금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선을 넘는 사람을 보면 거리를 둔다. 내가 허용의 폭이 좁은 사람일지라도 나를 예민하다고 탓하기보다 나를 지키는 편을 택한다.

나의 감정이 중심이었다면 지난날처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끌려다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관계에서 그로 인해 내가 기분 나쁜 것보다 이 관계가 흐트러지는 것에 더 예민했다. 내가 지금 너로 인해 기분이 나쁘다는 걸 그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사과는 아니더라고 이해받으려 애썼다. 그런 나의 행동이 후회되고 다시는 그렇게 반응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집중하고 나니 관계가 심플해졌다.

어쩌면 나도 챙기고 상대방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픈 욕심이 많은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기적인 사람으로 그리고 자기만 아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그러면서 좋은 사람이라는 말도 듣고 싶은 그때의 나. 내가 할 일을 챙기고 혼자 시간을 즐기고 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덜 예민해지는 지금이 그냥 좋다. 



관심을 상대방보다 나에게 향하는 것.

관계의 어색함을 서둘러 풀기보다 자연스러운 인연의 흐름대로 그대로 놔두는 것.

나이가 들어가면서 관계를 심플하게 만드는 나만의 방법을 하나 둘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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