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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Oct 28. 2021

취미가 뭐예요?

이제는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취미가 뭐예요?

.....




그 시절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취미를 물어댔다.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그럴싸하고 정확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정해진 공식처럼 물어보는 건지...

어디 사세요? 몇 살이에요? 쉬는 시간에 무얼 하세요? 취미가 뭐예요?






학교에서도 소개팅에서도 취미를 그렇게도 물어보던 그 시절.

그 질문 덕분에 취미 하나 없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내가 한심하게 여겨졌다.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1년에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으니 불가능했고,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운동을 한다고 해야 할까... 양심상 아무런 취미도 갖다 붙이지 못했다. 그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작아졌다. 특별히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게 없이 산다는 게 생산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과 동일한 기분이었다. 

취미 하나 없이도 나는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이면 나는 아이들 등원을 시키자마자 화장을 하고 뭘 입을까 집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굽이 높아 신지 못하던 구두도 꺼내보고, 평소에 잘 입지 못하는 원피스도 거울에 대어 본다. 어느새 막혀버린 귀도 요리조리 뚫어 귀걸이도 하고 먼지 묻은 반지도 꺼내 닦는다. 그냥... 그 시간은 모두 나를 위해서 쓰고 싶어서 의식적으로 더 신경을 쓴다.

나름 차려입고 버스를 타고 기분 좋게 도착하는 곳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공방이다. 화실, 스튜디오 그쯤 되는 장소.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중학생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오랜만에 누군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시간. 

규칙적으로 어른 사람을 만나는 날이다.



돈이 많이 들어서 그림을 그리게 할 수 없다는 엄마의 간결하면서 무게 있는 의견.. 통보.. 그 가운데에 있던 말. 한마디로 상황은 정리가 되었고 다시는 꺼내보지 못한 채 지나친 일이 되어버렸다. 그 마음은 그 길로 버려진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꼬깃꼬깃 접혀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아차렸다. 내 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20대에도 전혀 몰랐던.. 아이를 키우며 마음의 굴곡을 겪고 글을 쓰며 단단해지고 나서야 그 마음이 보였다. 

이제와서 시작 못할 게 뭐람. 

이 마음과 나는 당장 손을 잡았다.



그곳에 앉아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고르고 오늘은 어떤 도구로 그림을 그려볼까 고민하고 어떤 방식으로 캔버스를 채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참 쫄깃하다. 2시간 남짓. 온 신경을 집중하고 나의 손 움직임에 따라 비어있던 곳이 색으로 채워지는 걸 보고 있으면 몸 한 곳이 간지럽기까지 하다. 이런 느낌을 이 나이에 느낄 수 있다니...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림이다.



요즘 나에게 누군가 취미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단연코 독서와 글쓰기 플러스 그림 그리기.

취미의 의미가 시간이 날 때 뭘 하는지 그리고 돈벌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 내가 쓴 3가지는 모두 경제적 활동과 무척 연관이 없다. 어른들이 얘기하시는 쌀이 나와, 돈이 나와.. 딱 그런 항목들이다. 그림을 그리러 클래스에 참여하는 일은 생각보다 돈이 들어서 사실 매달 결재할 때마다 이것의 가치를 나에게 되묻곤 한다. (물론, 이것들을 생산적으로 풀어내려는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긴 한다.) 잠깐 시간을 내어 취미생활을 하는 에너지가 많은 날들에게 힘을 나눠줄 수 있다면, 내가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에 대한 정당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취미를 물어보는 질문을 질색했던 내가 이제는 고상스러운 취미를 가져버렸다.

이제는 누가 취미를 물어보지도 않는데 말이다.



읽는 책이 늘어갈수록

쓰는 글이 쌓여갈수록

내 그림이 집에 가득 찰수록

나는 더 몽글몽글 피어난다.

호사스러운 이 느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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