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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Oct 26. 2021

불편한 부지런함

시간을 정하지말자

"우리 내일 소풍 가자, 김밤 싸서 숲으로 가는 거야!!"

토요일 오후, 날씨가 너무 좋은 주말을 빈둥거리는 게 아쉬웠다. 낙엽이 나뒹굴고 나무가 색을 입기 시작한 가을. 등 하원 길에 슬쩍슬쩍 보던 풍경 말고 진짜 가을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작년에 갔던 숲이 기억에 남았기에 장소도 바로 결정. 우리는 내일 숲으로 가기로 했다.



"진짜 김밥 싸려고? 귀찮은데 그냥 가는 길에 사~"

"아니야, 집에 재료 다 있어. 아침 먹고 싸면 돼. 금방 해"

"그럼 김밥으로 아침도 해결하면 되겠다"

"같은 걸 두 끼 먹으면 지겹지 않을까? 아침은 간단하게 볶음밥 해서 먹고, 바로 김밥을 싸서 나가면 될 것 같아. 점심시간 전에 나서면 되니까 충분해."



남편의 말대로...

김밥을 두 번 먹었어야 했다.





일요일 아침. 계획대로 나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차 메뉴는 볶음밥. 밥솥에 취사를 누르고 야채를 다지고 냉장고에 조금 남아있던 불고기까지 꺼내왔다. 볶음밥이 간단하다고는 해도 기본적인 과정은 거쳐야 한다. 설거지거리도 없을 것 같지만 기본으로 도마, 프라이팬이 등장하고... 그래 거기까진 괜찮았다.



남편과 어제 대화를 하면서 혼자 마음속으로 집에서 나설 시간을 11시로 정했다. 나는 무언가 시간을 정해두면 늘 마음이 쫓긴다. 누군가와 약속한 시간도 아니고 숲에 가는 거 외에 할 일도 없었다. 그러면 시간을 정해두는 게 의미가 없지 않나. 그냥 준비되는 대로, 그게 출발하는 시간인데 그걸 못한다. 혼자 시간의 커트라인을 정하고 시계를 보며 바쁘게 움직인다.

그 마음 바쁨대로 아이들은 협조하지 않고 결국 화를 내고 그 와중에도 계속 시간을 확인하고.. 그 버릇은 나의 최대 단점이다. 알면서도 고치 지를 못한다. 아이들과 집을 나서기 전에 지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밥을 싸는 것도 중간중간 설거지를 하는 것도 아이들 옷을 준비하는 것도 김밥 외에 과일이나 음료를 챙기는 것도... 모두 내가 출발 전에 해야 하는 일들이다. 물론 아이들 밥 먹이고 씻기고 옷 입히는 건 남편의 몫. 아이 둘과 함께 나서는 길은 준비과정이 길다. 밥 먹고 씻고 옷 입고. 이 3가지만 하면 되는데 아직 혼자 척척 하지 않는 아이들이라 얼른 하자, 얼른 먹자... 이 말을 무한 반복하고 때로는 고성과 한숨이 나와야 멀끔한 아이들로 변신한다.



아침을 먹고 돌아서니 9시 반. 

이제 2차로 김밥을 쌀 준비를 한다. 김밥 안에 들어갈 재료 시금치와 당근, 계란, 맛살을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차례로 손질하고 볶고 밥도 간을 하고... 중간중간 시간도 확인하고 설거지도 했다. 5줄을 다 싸고 썰고 있는데 갑자기 화가 닥친다. 



김밥 몇 줄 그냥 사고 말걸.

사는 건 5분도 안 걸리는데 아침부터 몇 시간째 주방에 있는 건지.

남편 말대로 아침도 김밥으로 할걸.

너 정말 사서 고생한다.



부글부글 폭발 직전이었지만 누굴 탓할 것도 없었다. 내가 혼자 스스로 부지런을 떨어보겠다고 얘기했다. 화가 스멀스멀 옆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결국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김밥 사자니까 굳이 자기가 싼다고 하더니..."






기분 좋게 계획했던 소풍. 준비 시간이 길었던 탓에 나는 출발하기도 전에 지쳤다. 그냥 잠이나 잤으면 싶었다. 다 귀찮았다. 그렇지만 그 말을 할 순 없었고, 나의 계획대로 11시에 남편과 나는 기분이 좋지 않은 채 출발했다. 차를 타자마자 나는 비몽사몽 잠에 빠졌다. 차를 탄 건 기억나는데 깨워서 눈을 떠보니 산에 도착해있었다.



늘 그렇다.

시간을 정해두면 나는 예민해지고, 뭔가 과하게 하겠다고 하면 지쳐 나가떨어진다. 

이런 것도 욕심이라고 대충 할 수 있는 만큼 하자고 늘 생각하는데 왜 항상 습관처럼 이런 상황을 만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이가 더 들어서 체력도 열정도 떨어지는 때가 되면, 이렇게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게 될까.

나의 기분으로 가족의 분위기를 망치는 일. 이제는 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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