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Dec 17. 2021

첫 니가 빠진 날

좋은 날로 기억되서 다행이다

우리 집 첫째 딸, 6살 아가씨. 

"엄마 엄마 OO가 앞니가 빠졌어~ 많이 흔들려서 아빠가 실 묶어서 빼줬대.

나도 곧 빠지겠지? 실로 묶어서 어, 저기 뭐야? 이렇게 얘기해줘. 

내가 딴 데 보는 사이에 확 잡아당겨서 뽑아야 해, 알겠지?"



6살이 되니 빠른 아이들은 벌써 영구치가 올라오나 보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첫니가 빠진 사건이 영웅담처럼 떠도는지 친구가 털어놓은 그날의 경험을 그대로 듣고 와서 나에게 전한다. 이런 상황을 연출해서 뽑아달라는 요청까지 하며 '나는 언제 이가 빠지나..'기다리며 앞니를 자꾸 흔들어보는 아이. 

이는 빨리 나서 좋을 게 없을 테니까 엄마인 나는 늦게 올라와라, 천천히 나와라.. 아이의 맘과 반대로 속삭여본다. 





어머, 이게 뭐야?
이가 올라오는 거야??




쪼꼬렛을 먹고 나서 아이가 셀프 양치질을 했기에 어금니에 쪼꼬렛이 아직 남아있는지 확인하느라 아이의 입안을 들여다봤다. 하나 둘 확인하는데.. 어머. 앞니 뒤로 이 하나가 쏙 하고 보인다. 


'아직 앞니가 안 빠졌는데 이가 나는 거야? 이가 날 자리도 아니고 안쪽으로.. 이게 가능한 거야?

이가 2줄로 나고 있다니... 어머'




그렇다, 우리 집에도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6살 가득 채운 아이라 조금 빠르긴 해도 기다리고 있던 일이었다. 그런데 상상했던 것과 그림이 너무 다르다. 유치가 빠지고 그 자리에 영구치가 올라오는 게 아니었던가??

앞니 뒤에 또 앞니.

들어본 적도 없는 장면에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고 아이는 신이 났다.

"어? 이가 나고 있어? 그럼 나도 이제 이빨이 빠지는 거야? 거울보고 올게"




치과 이모에게 아이의 사진을 찍어서 SOS를 요청한다. 이게 무신 일이냐고. 무척 큰일이 아닌가 걱정되는 마음도 함께 보냈다. 

"요즘 아이들 얼굴도 작고 턱도 작아서 이런 일이 자주 있어요~놀라지 마시고, 앞니가 안 흔들리면 치과 가서 뽑으시면 돼요. 뒤에 나고 있는 영구치는 서서히 앞으로 나와서 자리 잡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아.. 치과에 가서 앞니를 뽑아야 되는 거예요? 그럼 마취하고 그렇게 뽑아야겠네, 난리가 한바탕 나야 지나가겠네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아이도 무서울 거예요. 많이 축하해주세요. 축하해줄 일이에요"






우리가 익히 아는 순서라는 건 현실에서 차례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예상과 달리 일어나면 무척이나 당황한다. 아이가 앉고 배밀이하고 기어 다니고 잡고 서고.. 그런 과정 끝에 걷게 되는 게 육아서에서 보던 걷기의 순서지만 배밀이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바로 기어 다니는 아기도 있고, 앞니가 보통 개월 수가 아닌 아주 늦게 나는 아기도 있다. 우리 아이는 왜 아직, 왜 저 단계는 없이... 이런 걱정을 수도 없이 하면서 지나왔는데 여전히 처음 겪는 변화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이가 새로 나는 건 축하할 일이야~ 아기 이빨은 빠지고 이제 어른 이가 나올껀가봐. 채아도 새 이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이제 진짜 아기가 아니라 어린이네 우리 딸.

근데 이가 빠지지 않고 나는 바람에 여기 봐, 자리가 이상하지? 그래서 앞니를 빼줘야 한대. 아직 흔들리지 않아서 치과 가서 뽑아야 하고. 치과.. 무섭지만, 엄마가 손 꼭 잡아줄게 용기 내볼까?"

치. 과. 

어른도 무서운 그 치과.

이가 나온다는 소식에 방방 뛰던 아이는 '치과'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대성통곡을 한다. 

"친구는 집에서 뽑았다는데 나도 집에서 해줘. 왜 치과를 가서 뽑아? 그럼 주사도 맞아야 되는 거야? 주사 맞고 뽑아? 무서워 싫어"



순서를 지키지 않고 순식간에 올라온 영구치가 열 밉다. 이가 빠지고 그 자리를 채워주면 좋으련만, 뭐가 급해서 고개부터 내미는지. 우리의 머릿속 순서대로 진행되면 아이도 기분 좋게 뽑았을 텐데.. 조금 더 기다리지.. 밉다 미워.



"무섭지 맞아, 엄마도 어른이지만 치과는 갈 때마다 싫어.

근데 지난번에 동생 치과치료하는 거 봤지? 금방 끝나서 우리 모두 놀랐지, 기억나?

우리 아침에 치과 갔다가 오후에 엄마랑 시장가자~

시장 가서 맛난 것도 먹고, 너 좋아하는 딸기도 하고, 오랜만에 작은 화분도 하나 살까?"



아이가 좋아하는 시장투어 카드를 내밀어본다. 치과를 데려가기 위한 달콤한 제안이기도 했고, 이제 이가 계속 빠질 텐데 첫니를 뺀 날의 기억이 좋았으면 했다. 다 큰 어른이 되면 기억조차 하지 못할 사건이지만 6년 평생에 힘든 날 중 하나일 테니까. 너도 나도 오늘이 좋았으면.. 했다.



"그건 좋아. 근데 내일 당장 치과는 못 갈 것 같아."

"그래, 며칠 후에 가도 괜찮아. 그럼 내일은 말고 3 밤 자고 갈까? 그때까지 마음이 준비되겠어?"

"생각해볼게"



하루라도 빨리 치과에 가서 해결하고픈 마음, 얼른 빼주지 않으면 덧니로 자리 잡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하지만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고, 우는 아이를 데려가 봐야 치과에 대한 안 좋은 경험만 쌓일 뿐. 나에게도 결국 득이 될 것이 없기에 아이에게 시간을 주기로 한다. 그래 봐야 몇일인데.




약속한 그날 아침. 새벽부터 나는 마음이 심란하다.

흔들리지도 않는 이빨을 뽑으려면 마취주사를 분명히 맞아야 할 텐데. 무서움과 아픔.. 그걸 아이가 겪어야 한다니 속이 상했다. 새로 나는 이는 자꾸만 나에게 미움을 받는다. 그저 나올 때가 되어서 역할을 할 뿐인데 말이다. 



"엄마, 오늘 치과 가는 날이지? 빨리 가자."

"어? 빨리 가자고? 어.. 그래 얼른 가야지.

근데.. 왜 갑자기 빨리 가자고 해? 안 무서워 이제?"



일어난 아이는 오늘 치과 가는 날인지 확인하더니 아침부터 재촉을 한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울고불고 난리가 난 아이를 치과에 어떻게 어르고 달래서 데려갈지 새벽부터 걱정이었는데, 대뜸 얼른 치과를 가자니...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는 아이가 신기해서 빤히 쳐다본다.



"빨리 가야 빨리 끝내고 나오지"




치과치료를 끝내야 좋아하는 시장을 가기에 얼른 치과를 가자는 건지,

어차피 뽑을 거 얼른 뽑고 끝내자는 건지,

밤새 도를 닦은 듯한 말을 하는 아이.

이럴 때 빨리 가야지, 나갈 준비를 서둘러본다.





"나도 이 뽑고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야. 내일 가서 보여줘야지~

그리고 시장 문 닫기 전에 얼른 가자. 나 시장 가서 할 일도 많단 말이야"


가는 길 내내 조잘조잘 치과를 다녀온 후에 할 일들을 읊으며 신이 났다. 치과 가는 게 이렇게 신이 날 일인가. 무섭고 걱정되는 일에 대한 걱정을 줄이기 위해서 다른 것에 집중하는 건 어른들도 하기 힘든 건데.. 아이라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리하다 싶은 아이의 손을 꼭 잡으며 '그래 막상 도착해서도 지금처럼 씩씩하게 뽑고 오자 제발..'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간 게 아니라 아이가 나를 치과에 데리고 온 것처럼 치과에 오는 길 내내 아이는 즐거워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었다.




치과에 도착하면서부터 아이는 품에 꼭 안겼다. 무서움에 이미 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눈은 초점을 잃었다. 울음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지만 간호사 이모가 이름을 부르면 아마, 울기 시작하겠지.




엑스레이도 찍고 선생님도 아이의 입 안을 보시더니 뽑아야 하는 게 맞다고 하셨고, 진료 침대가 뒤로 눕는 순간 아이는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다행인 건, 새 이가 나서 그런지 며칠 사이에 앞니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마취주사 없이 마취크림을 바르고 그냥 뽑게 되었다. 공구 같은 집게로 아이의 작은 이를 잡더니 순식간에 발치를 했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뽑힌 앞니. 이가 이렇게 귀여웠나.. 뽑힌 앞니를 보여주시는데 그제야 나도 온몸에 힘이 빠진다.



간호사 이모가 쥐어준 아이의 빠진 이를 들고 아이도 나도 흥분해서 계단을 내려왔다. 아이도 손에 쥐어진 이도 그제야 기특해 보였다. 

"이 이빨이 한 살 때 제일 처음 난 이빨이야. 이가 하나둘씩 올라와서 얼마나 귀여웠다고. 6년 동안 채아가 잘 먹고 자랄 수 있게 지켜준 이빨이야. 이제 떠나.."

감수성 충만한 엄마는 주책맞게 떠난다는 말이 나오자 눈물이 또 나오려고 했다. 아니야, 지금 울면 상황이 이상해져. 내가 생각해도 지금 타이밍은 울 게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이제 무서운 상황이 끝났고 행복이 가득한데, 내가 울어버리면 슬픈 건가 헷갈릴 텐데, 주책이다 싶어 얼른 말을 끊었다. 





첫니가 빠진 날.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처음 겪는 그리고 큰 변화. 



첫니를 발견한 날도 몇 개 없는 이로 쌀과자를 부셔먹던 장면도 떠오른다. 

소리가 어찌나 요란스럽던지..

이래도 저래도 귀여웠던 1살 아이가 눈에 선하다.

어느새 커서 어른 이가 나온다고.



"아빠한테 나 이 잘 뺐다고 이야기해줘. 사진도 찍어서 같이 보내줘"

"할머니한테 전화하자, 영상통화. 이 뽑은 거 얘기해야 되니까 전화 걸어줘"

스스로 자랑스러웠는지 일하고 있는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연락을 요청하는 아이.

'이~'하며 보여주고 상자에 보관해둔 빠진 이도 자랑하는 아이와 '잘했다, 장하다, 축하한다' 맞장구쳐주는 어른들. 치과에서 상냥하게 치료해준 선생님과 간호사 이모. 놀란 엄마의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축하할 일이라며 아이에게 바나나 우유와 쪼꼬렛을 선물해준 SOS치과 이모까지.



아이의 하루에 많은 어른들이 함께 했다. 진짜 응원하며 아껴주면서 말이다.




"엄마, 오늘 진짜 행복했어.

이도 잘 뽑았고 엄마랑 시장도 가고, 하루 종일 엄마랑 놀고.

내일은 어린이집 가서 선생님이랑 친구들한테 자랑도 해야지.

너무 좋았어 진짜"



다행이다, 좋은 날로 기억되어서.

아프기만 한 날이 아니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랑 책 읽는 건 재미없어. 그렇지만 밥은 맛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