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Dec 10. 2021

엄마랑 책 읽는 건 재미없어. 그렇지만 밥은 맛있어

아빠 엄마의 역할


맞벌이를 하던 신혼시절, 그때는 나와 남편 두 사람 모두 집에 있는 시간이 동일했다. 나는 전혀 야근이 없었고 남편은 가끔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건 1달에 고작 1,2일. 회사가 조금 가까운 내가 6시 반쯤 집에 도착하고 남편도 곧이어 7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를 각자 잘 보내고 다시 만난 저녁 7시. 나는 식사를 준비했고 남편은 그 시간 동안 집안을 정리하고 숟가락을 놓았다. 아주 가끔 간단한 밥을 차려주기도 했으니 집안일에 너, 나 이름이 따로 있지 않은 편이었다. 물론 먼저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달라고 얘기해야 뭐든 해주는 사람이었지만.




아이를 가지면서 나는 퇴사를 하고 주부가 되었다. 집에 하루 종일 있으니 집안일은 이제 내가 전담으로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돈을 한 사람이 벌어오게 되었으니 가정 안에서 나의 몫도 하나쯤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좋아하는 단어 '공평'이 여기서도 튀어나왔다. 나 혼자 그렇게 정리를 했고 누구 하나 "집에 있으면서..."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의식적으로 집안의 모든 일을 처리했다. 백수인 듯 임산부 그리고 주부인 듯.. 그렇게 예비 전업맘의 포지션은 집안일하는 사람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나는 남녀가 함께 공평하게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같이 살고 아이를 키우는데 왜 여자들만 밥하고 빨래하고.. 수만 가지 집안일을 혼자 꾸역꾸역 해내는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집에 들어앉기 시작하면서 현실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둘 다 의도가 없는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나의 불만은 쌓여갔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에 역할분담이라는 게 있어야지, 남편은 아이 손빨래를 맡아줘. 아이 낳고 나면 손목도 아프고 힘을 많이 쓰면 안 된대. 그거 하나는 전담으로 해줘 알았지?"



먼저 눈치껏 알아서 집안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이거 해줘, 저거 해줘 부탁을 정말 잘 수용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왜 알아서 못하느냐..' 단점에 집중해서 다툰 적도 많았지만 그건 남자들의 특성 같기도 하고.. 어찌 됐든 아이가 태어나고 하루 종일 모아둔 손빨래할 옷들은 남편의 몫이 되었다. 






아이가 하나일 때는 그 룰이 정말 잘 지켜졌다. 아이를 위한 일 그리고 가사를 전담하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게 서로 좋았다. 남편은 요즘 아빠답게 가정일을 나 몰라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무언가 하나 뚜렷하게 도움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나도 그 하나는 남편이 알아서 해주니 든든하면서도 마음 편했다. 



그런데 아이가 둘이 되면서 너의 일, 나의 일 그 선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하루를 잘 버텨내는 게 관건이지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건 이미 관심밖의 일이 되어버렸다. 2살 터울의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한 아이를 한 명씩 전담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했다. 낮에야 하나는 업고 하나는 놀아주고 혼자 가능했지만 오후가 되면 나의 체력은 바닥이 되고, 남편이 와서 함께 아이를 봐주기만을 기다렸다.



남편이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슬쩍 아이들의 옆자리에서 탈출했다. 나 대신 아빠를 그 공간에 투입시켜 셋을 한 팀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제 밥하러 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음식 솜씨도 그다지 없지만 부리나케 저녁 준비를 시작하는 건 아이들에게서 조금 벗어나고 싶어서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지지고 볶았으니 저녁이 되면 육아는 접어두고 집안일에 더 집중을 했다. 그래서 결국 아이들의 손빨래도 자처해서 내 몫으로 가져왔다.





어젯밤 남편이 씻는 사이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 독서를 하고 있었다. 큰 아이가 가져온 책부터 열심히 읽어주고 있는데 잘 준비가 끝난 남편이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랑 책 읽는 건 재미없어. 그렇지만 밥은 맛있어"

이런 대화 기법은 어디서 배우는 건지.. 내가 읽어주는 그림책 이야기를 집중하며 잘 듣다가 아빠가 오니 이렇게 마음이 변한다. 밥을 먹을 때는 너무 맛있다고 엄마가 해주는 밥이 최고라도 외치면서 노는 건 역시 아빠라는 것도 슬쩍 흘린다. 나름 목소리도 바꿔가며 읽어줬더니 이쁜 목소리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아빠가 해주는 밥은 맛이 없어. 그렇지만 함께 책 읽는 건 좋아"

아이는 눈을 흘기고 있는 엄마에게 옛다, 칭찬인지 흉인지 모를 말을 한마디 더 던진다. 엄마와 아빠를 평가하는 아이의 말에서도 '공평'이 묻어난다. 엄마인 나는 그 말을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아이는 해맑다.'둘 다 장단점을 이야기해준 건데 왜 엄마만 기분 나빠해?' 이런 표정이다. 그러게, 남편은 웃고 있는데 나 혼자 진 기분이다.



아이들은 이미 학습이 되어있다. 아빠는 잘 놀아주는 사람, 엄마는 늘 잠시만을 외치고 맛있는 거 해주는 사람. 물론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남편이 오는 시간 전에는 나도 아이들 옆에서 놀아주지만, 그 외에 네 가족이 함께 있을 때는 아이들의 놀이에는 나보다 남편이 적극적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건 내가 낫지만 장난을 받아주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놀아주는 건 남편이 낫다. 

아빠도 육아를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길 바랬다. 아빠와 부대끼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이 잘 자란다는 육아서 같은 말과 저녁이 되면 나도 지쳐서 아이들에게 더 화를 낸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아빠와 유대관계가 잘 되어 있어야 사춘기가 되어도 나이가 들어서도 잘 지낼 수 있다는 반협박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그렇지, 

재미없이 책 읽어준다고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를 하다니. 목소리까지 나름 바꿔가면서 역할극을 하고 있는 엄마인 말이야. 

아쉽지만 그렇게 아쉽지만은 않은 상황,  슬쩍 또 아이 옆자리를 남편에게 비워준다.

계속 바뀌는 엄마와 아빠의 포지션이지만, 어느 한쪽이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가정일을 하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 아이도 함께 가정을 꾸리는 것도 함께. 건강한 모습의 집을 꾸미는 것에 항상 신경을 쓴다.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맛있는 밥해주는 엄마. 이 그림은 싫은데... 아이들에게 뭘 잘해줘야 할까.

새로운 고민이 어제 생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무대에 서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