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Dec 06. 2021

엄마 무대에 서고 싶어

티브이에 나오고 싶은 6살

딸아이가 내 눈치를 흘깃 보면서 방으로 혼자 들어가더니 문을 닫는다. 동생이 늘 쫓아다니며 방해하거나 같이 놀자고 해서 그런지 언제부턴가 그런 행동을 보인다.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거니까 신경은 쓰이지만 말을 걸지 않고 그냥 두었다. 



거실에서 둘째와 놀고 있는데도 신경은 온통 방안에 가있다. 나올 때가 됐는데 소식이 없어서 아이를 불러본다.

"oo야~ 방에서 뭐해?"

"엄마 잠깐만~"

대답은 금방 하더니, 바로 나오지 않고 또 몇 초가 흐른다. 

"나 지금 뭐 찍고 있어."

"어? 아.. 어 그래. 다 하고 나면 나와"



그리고는 아이는 또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몇 분 후 문을 열고 씩 웃으면서 거실로 나왔다. 내 휴대폰을 쥔 채로.






아이는 4살 때까지만 해도 부끄럼이 많았다. 낯선 곳에 두려움이 있거나 예민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선생님께 인사도 못해서 쭈뼛거렸고 모르는 친구에게 말을 먼저 걸지도 못했다. 세상 수줍음은 혼자 간직한 그런 아이였다. 나도 남편도 변죽이 좋은 성격은 아니니 우리를 닮았겠거니, 우리 아이니까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아이가 5살이 되더니 조금씩 변했고 이제는 처음 보는 친구에게 먼저 말도 걸고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발표를 한다. 보는 사람 누구나 아이가 활발하다고 말을 건넨다. 




어느 날은 "엄마 나 무대에 서고 싶어"

또 어느 날은 "엄마 나도 티브이에 나오고 싶어"

이제는 나이까지 지정해서 "엄마 나 10살 되면 무대에 설 거야. 그래서 노래 연습해야 돼"

매일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아이의 노래 실력은 영 소질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아이는 진심이다.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난다.



아이가 방에서 나오고 나는 궁금해서 핸드폰을 열어봤다. 분명 말하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는데 뭘 찍었다는 건지. 사진을 찍었나.. 제일 최근에 저장된 동영상 하나.



"엄마와 아이는 사랑해야 해요. 엄마가 화를 내면 아이는 무서울 거예요

그럴 때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엄마가 손을 내밀어주세요

그러면 아이도 엄마를 다시 사랑하게 될 거예요"

아직도 발음이 정확하게 영글지 않은 아이가 주말이라 제대로 빗지도 않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밑에서 위를 바라보는 각도로 핸드폰을 두고 발목이 잘린 채 육아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내가 오은영 선생님의 영상을 즐겨보기에 그걸 보고 따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이의 엉뚱함과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심도 있어서 나는 '어머어머'를 수십 번 외치면서 영상을 봤다. 

엄마가 부르고 동생이 등장하면 화면을 향해 예의있게 "잠시만요"를 외치며 사라졌다가 방해꾼들을 몰아내고 다시 찍으면서 꿋꿋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3편의 영상에 남겨두었다.




'나를 더 사랑해달라는 말인가?

엄마 들으라고 이렇게 영상을 찍었나?

근데 이 말투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맞다, 내가 올해 초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올려둔 영상.

얼추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는 이제 혼자 티브이를 틀고 유튜브 영상을 검색해서 본다. 그러다가 우연히 나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연결되어있는 유튜브 계정이 내 것이어서 검색을 하러 들어갔다가 어찌어찌 엄마를 티브이에서 보게 된 날, 아이들은 엄마가 여기서 왜 나와... 하면서 놀랐고 거실에서 청소를 하던 나는 내 목소리가 크게 들려서 놀랐었다. 어찌나 창피한지 금방 꺼버렸는데 아이들은 신기해하면서도 좋아했다.

"엄마 티브이에 나오는 거야?"

그때 아이는 자극을 받았고 기억 속에 무언가를 담아둔 모양이다.





혼자 영상을 찍는 날이 많아졌고, 어떤 날은 나에게 영상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기꺼이 카메라맨이 되어 아이가 하는 이야기와 동작을 담아준다. 4살이 되어도 엄마 아빠 이외의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서.. 말하지 않는 아이가 내 걱정의 전부였는데, 이제 6살이라고 이런 것도 나에게 시킨다. 얼마나 이쁜지.




훌라후프 하는 영상을 찍는데 

"안녕하세요 oo티브이입니다."

빵 터진 나와 남편을 보면서 아이는 더 신이 났다.

이러다 구독과 좋아요까지 눌러달라고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듯하다.




"너, 유튜브도 안 보면서 이런 건 다 어떻게 알아?"

"엄마가 하던데?"

아이는 유튜브나 티브이에 노출이 많이 되어있지 않다. 어릴 때는 굳이 보여주지 않아서 그런지 커서도 영상을 즐기지 않고, 보더라도 그다지 재미없고 이야기한다. 그만 보자 하면 그런가 보다 생각하면서 스스로 끄고 나오는 아이. 아이는 그곳에 경험치가 없다. 그래서 영상을 찍겠다 하고 무슨 티브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더 신기했다.




몇 개의 영상이 쌓이고 나는 그것들로 아이 채널을 만들어주었다. 물론 비공개로.

나름 영상을 자르고 노래도 넣고 썸네일까지. 내 채널을 운영했던 실력을 한껏 발휘해서 저장해주었다. 보고 싶을 때 늘 꺼내볼 수 있게. 성격도 언제 변할 지 모르기에 지금 이렇게 활달한 모습을 남겨주고싶다. 그리고 그렇게 외쳐대는 티비에 나오고싶다는 말, 그걸 현실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 일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인 나를 항상 주의 깊게 살펴보는 아이라는 사실에 감동했고 이래서 부모로 엄마로 많은 것들을 보여줘야겠다는 다짐도 들었다.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 시도한 하나의 도전, 유튜브였다. 말을 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연습으로라도 해보려고 유튜브를 시작했었다. 이왕 찍는 거 삭제하지 말고 기록으로 남겨두자 싶었고 영상편집도 잘하지는 못해도 기본은 해두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 그냥 움직인 것들이 결국 아이에게 전달되었다. 아무 의도 없이 그리로 흘러갔다.

더 많은 것들 보여줘야겠구나.. 그래야 아이의 세상도 넓어지겠구나...

아이도 기특하고 나도 기특한 그런 날.




요즘 아이들은 크리에이터, 유튜버가 장래희망이라는데 우리 딸도 그런 꿈을 가지려나? 6살이라 지나가는 장면일 수 있지만 말이다. 이래도 저래도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는 슬픈 일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