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혜진 작가 Oct 18. 2021

나에게는 슬픈 일이야

넘지 못하는 산, 누나

평일 저녁,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공원 운동장으로 나갔다. 두 아이는 각자의 씽씽이를 타고, 남편과 나는 아이들의 속도를 맞추며 걷고 뛰고를 반복했다. 네 식구가 이렇게 각자의 속도로 따로 또 함께 하는 시간은 하루 중에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눈뜨는 순간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사는 이유는 어쩌면 이 평화로운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아닐까. 하루 안에 부대끼는 감정들, 힘이 부치는 일들도 네 명이 각자의 걸음으로 한 공간에 머무는 이 시간이면 모조리 사라진다. 이 시간을 산소 같다고 해야 할까, 충전 같다고 해야 할까.

두 눈 가득 담고 싶은 순간이다.



운동장에 도착해서 열심히 씽씽이를 타던 아이들. 다른 곳으로 걷고 있지만, 사람들과 부딪히지는 않을지 눈은 열심히 아이를 따라다닌다. 넓은 곳에 나와 신이 난 아이들을 쳐다보며 남편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갑자기 둘째가 우리를 향해 왔다. 

"우리 집에 가자."

"지금? 벌써?

도착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오랜만에 나온 건데 조금 더 있다가 가자~"

"...."

"엄마 아빠는 아직 한 바퀴도 못 걸었어. 

조금만 더 타~

누나 저기 있네, 누나한테 가봐"


아이는 말없이 가만히 있다가 엄마 아빠가 계속 설득을 하니 안 되겠는지, 그제야 다시 씽씽이를 탔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을까, 아이는 다시 우리에게 와서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진짜 집에 가자고. 

첫째는 더 놀고 싶고, 둘째는 집에 가고 싶고. 둘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흩어져야 했다. 나는 둘째와 먼저 집에 오고, 아빠와 누나는 더 놀기로 했다. 네 명이 같이 출발했는데 돌아오는 길은 둘이다.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슬쩍 물어본다.




"왜 벌써 집에 가고 싶어? 더 놀지~"

"누나랑 시합하는데 자꾸 지니까 하기 싫어"

"아... 그래서 집에 가고 싶었던 거야?"

"응, 나는 자꾸 져.

나에게 슬픈 일이야"




이제 4살인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너무 작게 이야기해서 들리지 않아 허리를 숙여 귀를 입에 대고서야 간신히 들리는 말. 나에게 슬픈 일이야...

4살 인생에 제일 큰 시련인 듯 이런 슬픈 일은 처음이라는 듯, 그렇게 풀이 죽어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4살이 이 정도 타는 건 너무 잘하는 거라고. 아직 씽씽이 못 타는 4살도 많다고. 누나처럼 6살 되면 너는 더 잘 탈거라고 이미 잘하고 있다고... 평소 같으면 이 말들을 쏟아내며 아이의 표정이 밝아지길 기다렸을 텐데 그날은 이런 말조차 해줄 수가 없었다. 아니, 더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런 감정이 처음이 아니라 어쩌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4년 내내 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크면 2살 차이인 누나와 키도 할 줄 아는 것들도 비슷해질 거고, 사춘기가 되면 누나보다 키나 덩치는 앞서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누나는 달리기도 빠르고, 블록도 잘 만들고, 글자도 읽고 쓰고... 뭐든 자신보다 빠르고 척척 해내는 누나. 둘째에게는 언제나 부러운 존재이다.



아이에게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아직은 그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아마도 태어났을 때부터 라이벌 같은 감정이 있었겠지. 2살, 3살 때 아이가 많이 했던 말이 있다. 

"나는 못해"

누나가 하는 걸 똑같이 하고 싶고 해내고 싶은 아이는 언제나 누나 바라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작년에는 훨씬 그런 부분이 강했다. 나도 하고 싶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누나를 따라 하지만 해내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결국 나는 못한다며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귀엽기도 안쓰럽기도 한 둘째.



너는 이런 걸 잘한다고,

너의 장점은 이거라고,

4살 중에 제일 잘한다고...

엄마가 부지런히 이야기를 해줘도 결국 아이의 마음속 비교대상은 누나뿐.



차라리 울고불고 난리가 났으면 좋았을 걸. 고개를 푹 숙인 채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니 이 아이를 첫째로 낳아주지 못한 채 미안하기까지 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난감한 순간 중에 하나는 서로 비교하면서 이야기할 때이다.

"엄마, 나를 더 좋아하지?"

"엄마, 내가 더 잘하지?"

그냥 나를 사랑하냐고, 나 잘하냐고 물어보면 되는데 꼭 아이들은 다른 형제를 비교하며 물어본다. 그보다 나를 더, 그보다 내가 더... 그런 경쟁심이 아이를 성장하게 한다고 해도 비교에는 지는 쪽이 생기기 마련이다. 스스로 자신이 더 모자란 부분을 느껴진다면 엄마로서 마음이 아프다. 채워줄 수 없는 패배감이 자리 잡을까 혼자 겁도 난다. 



누나와의 차이는 아마 몇 년 동안 둘째를 좌절하게 만들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를 보듬어주는 수밖에. 누나와 너는 다른 존재이고, 비교 없이 그저 잘하고 있다고. 그런 이야기를 진심으로 나누는 것만이 내가 우리 둘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다.



둘째야, 그거 알아?

누나가 가지지 못한 점도 너에게 많아.

그 이야기들을 엄마가 앞으로 하나씩 해줄게.

시합에서 자꾸 져도 엄마는 너를 너무너무 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반대로 가는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