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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Dec 03. 2018

산티아고데쿠바, 그 묘한 매력

쿠바에서 한 달 살기 4.

이 도시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냉동칸 같던 야간 버스를 내리자마자 살인적인 더위와 습기가 반겼다.  자기 까사로 오라는 삐끼들의 공세가 맹렬했다. 당장 아바나행 버스를 타고 돌아가고 싶었다. 노 그라시아스(No thanks)를 해도 치노! 까사 빨띠꿀라르! 하며 덤벼드는 이들의 집념은 어마 무시하다. 그중 한 사람은 까사가 몰려있는 센뜨로까지 공짜로 택시를 태워 줄 테니 자기 집을 보라고 했다. 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떡하냐 물었다. 어차피 택시는 자기 친구 거라며 돈을 내지 않아도 좋다, 일단 와 보라 했다. 삐끼들이 붙으면 인기가 없는 곳일 확률이 높지만 이 더위에 실랑이도 귀찮았다. 우선은 그 사람을 따라갔다.

*까사 : 쿠바의 숙박 형태는 호텔과 Casa Particular로 나누어진다. 일반 가정집이 나라의 허가를 받으면 빈 방에 손님을 묵게 할 수 있다. 쿠바 제1의 산업은 관광업이므로 어딜 가든 까사 마크를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로 관광업을 통해 성공한 이들이 가장 쉽고 빠르게 부를 획득한다. 원래는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들 위주로 까사 운영을 허락했지만, 최근에는 그 수가 필요 이상으로 늘어났기에 더 이상의 허가를 막도록 법을 바꾸는 추세라고 한다.
Santiago de Cuba, Cuba

아니나 다를까. 방 상태가 엉망이다. 가격도 1박에 20 쿡(미화 20불). 잔뜩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다른 까사를 찾아봐야겠어요”하니 주인의 표정이 싹 바뀐다. 친구라던 기사는 갑자기 “그럼 택시비를 내야지.” 하며 5 쿡을 달란다. 저 사람이 안 내도 된다고 했는데? 주인에게 따지니 “그건 숙박을 했을 때 그런 거고.” 라며 말끝을 흐린다. 또 시작됐군. 관광객 등쳐먹는 쿠바노. 겨우 5분 운전해 온 거리에 5 쿡은 너무하잖아. 죽어도 못 줘!

자리에 주저앉았다. 택시기사는 휴대폰을 꺼내 경찰을 부르겠다며 협박했다. 무슨 소란이 났는지 구경 나온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동네 사람들! 이 아저씨가 여기까지 공짜로 태워다 준다더니, 숙박을 안 한다니까 돈을 내라네. 코앞 거리인데 5 쿡을 내래요. 말이 됩니까 이게? 경찰을 불러! 부르던가!”


뽈리씨아(경찰) 라는 말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동양인이 스페인어로 날 좀 보소 하는 광경은 웃음거리가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쇠. 그중 한 명은 이상한 증을 보여주더니 “내가 정부에서 일하는 데, 당신 5 쿡 내야 되는 게 맞아요. 안 내면 경찰이 잡아갈 거요.”한다. 흥. 이 나라 경찰들이 내국인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아는데.


허탈했다. 쿠바노들은 외국인과 현지인이 싸울 때 늘 쿠바인 편을 든다. 터무늬 없는 바가지를 씌워도 당신들 돈 많잖아? 하는 심보다. 잔뜩 노려보며 버티자, 택시 기사도 귀찮았는지 “그럼 3 쿡만 주쇼.”라고 했다. 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택시비를 내야 하는 것도 사실이기에 씩씩대며 3 쿡을 꺼냈다. 기사는 땡큐 베리 머치! 하더니 가버렸다. 마을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졌다. 한참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지나간 건가. 후. 아바나 돌아가고 싶다.

Santiago de Cuba, Cuba

여행자들 사이에서 산티아고데쿠바는 어떤 곳일까. 삐끼가 많더라, 덥더라, 굳이 갈 필요 없더라. 혹은 가장 쿠바스러운 곳이다, 너무 관광화 된 아바나보다 낫다, 이런 논쟁이 많다. 헌데 아바나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대부분 일정에 넣지 않는다. 막상 가본 사람은 적은 것.


여행은 본디 주관적인지라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내 생각에 산티아고데쿠바는 여운이 짙은 도시다. 머무는 동안에는 관광객을 돈주머니 취급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오만 정 다 떨어져서 원래 일정보다 하루 빠르게 산타클라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데 다시 쿠바에 온다면 산티아고데쿠바에 또 가고는 싶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매력과 함께 “나는 산티아고까지 내려갔어!”라는 여행 부심도 한몫한다.


이 도시의 아주머니들은 그저 길을 물었을 뿐인데 “Mi vida(내 인생)”, “Mi amor(내 사랑)”라고 부르며 친절한 설명을 해 준다.  “몇 번 버스 타야 모로 요새 가나요?”라고 물으면 “저랑 같은 거 타면 돼요. 제가 돈 내줄게요.” 하는 호의를 쉽게 받을 수 있다. 물론 버스비가 인당 20센트(10원)밖에 안 하니까 가능하다.  관광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바네로(아바나 사람)들보다 훨씬 순수하다.  곧 12번 버스가 올 거라던 아저씨는 잠이 들었다. 기다린 지 1시간이 넘었다. 정류장 쪽에도 그늘이 들기 시작할 때쯤 버스가 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스를 기다리던 그 시간이 아깝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Santiago de Cuba, Cuba

어느 나라를 가든 현지인들의 버스에 타보는 것을 좋아한다. 돈을 아끼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들 속에 녹아들어 가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 나라와 도시의 분위기를 버스에서 파악해볼 수 있다. 산티아고데쿠바의 버스에서는 앞뒤로 음악이 흘렀다. 기사님의 스피커에서, 뒷좌석 손님의 블루투스에서 서로 다른 레게톤 음악이 나왔다. 해변에서 놀던 젊은이들은 웃통을 벗은 채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남은 맥주를 마셨다. 젊은 커플은 꼭 붙어서 애정행각을 나눴다. 반대편의 아이는 엄마품에 안겨 곤히 자고 있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릴 때는 넘어지지 않도록 승객들이 번갈아가며 손을 잡아줬다.


산티아고는 부산처럼 쿠바 제2의 대도시이다. 한데 여전히 마차가 콜렉티보로 사용된다. 모토 택시들이 모두 끊긴 밤 9시 이후, 같은 구간에 마차가 다닌다. 물론 아바나에도 마차는 있지만 관광객을 태우고 일부 구간만 다니면서 비싼 요금을 받는다. 반면 이곳의 마차는 실제 사람들의 이동 수단이다. 최대 9-10명까지 탈 수 있으며 잘 훈련받은 말이 꽤 빠르게 달린다. 마차 기사들은 하나같이 “아—죠!” 하며 말 비슷한 소리를 낸다. 사람이 네 명 정도 차자 아-죠! 소리와 함께 말이 출발했다. 말은 궁둥이를 세차게 씰룩거리며 불평 한마디 없이 갈 길을 갔다. 잠시 후, 사람들의 무게로 어쩔 수 없이 속도가 느려진다. 그때마다 기사는 운전석 오른편에 있는 쇠 봉으로 말을 때린다. 사극에서 채찍질하듯 세게 때리지는 않지만 말이 흠칫 놀라 속도를 높인다. 다시 속도가 줄어들면 또 매질을 하고, 빨라짐의 반복이다. 어쩐지 말이 불쌍해 또 이용하지는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밤길을 걸어가기 무서워 돌아올 때도 마차를 탔다. 가련한 말 덕분에 리얼 쿠바를 경험한다.

Santiago de Cuba, Cuba. 까사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

머무는 동안 날마다 까사 테라스에 나왔다. 하루 종일 온 힘을 쏟아부어 도시를 덥게 만들던 태양이 지면 거짓말처럼 세상이 시원해진다. 골목길마다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산티아고 앞바다의 야경을 바라보며 일기를 썼다. 아마 이 순간이 아니었다면 산티아고데쿠바가 이만큼 그립지는 않았을 거다.



쿠바를 다녀온 여행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산티아고데쿠바를 다녀온 자와 다녀오지 않은 자. 이것도 산티아고데쿠바를 다녀온 누군가가 지어낸 말일 거다. 이곳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나는 쿠바의 모든 곳을 돌았어!”

쿠바적인 분위기가 가장 많이 남아있다는 여행자들(혹은 우리들)의 적절한 허세와 어느 정도의 사실이 뒤섞여 복잡 미묘한 도시. 그것이 바로 산티아고데쿠바의 매력 이리라. 글 쓰다 보니 산티아고데쿠바에서 매 끼니 먹으러 갔던 츄러스 집이 그립다. 한 입 물면 빵빵하게 채워진 연유 소스가 펑, 하고 흘러나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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