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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Feb 05. 2019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쿠바 기차 탑승 후기

론리플래닛 쿠바 편은 쿠바 여행의 교통수단으로 버스, 택시, 기차, 자전거를 소개한다. 그중 기차 설명을 읽어보면 돈 주고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쓰여있다. 관광객이 이용하는 버스(Viazul) 요금의 2/3 정도로 저렴하다는 것 외에 아무 장점이 없단다. 그래도 기차를 타고 싶었다. 기왕 쿠바에 온 거, 관광객들은 하지 않지만 현지인들은 하는 일을 많이 해보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기차였다. 여행책자에 나온 굳이 타지 말라는 후기는 마음에 불을 지폈다.


산티아고데쿠바에서 산타클라라 까지는 기차로 14시간이다. 기차를 예매하려면 역 앞 터미널에 가야 한다. 개장 시간은 아침 8시. 쿠바인들은 7시부터 ‘울띠모’를 걸어놓고 줄을 서 있는다. 언뜻 보면 사람들이 규칙 없이 여기저기 산개 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다 순서가 있다. 다만 햇빛을 피해 그늘 진 곳에 모여 있을 뿐이다. 나 또한 울띠모를 걸어놓고 그늘에 주저앉았다. 문지기는 일정 간격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밖은 땡볕인데 안은 추울 만큼 에어컨이 빵빵하다.

(참조 : https://brunch.co.kr/@dnjs9523/111)

순서를 기다리다 지치고 더위에 또 한 번 지친 누군가는 문을 연신 두들기며 “이보시오! 나 지금 표 안 바꾸면 차 놓친 단말이요!” 한다. 문을 지키는 공무원은 평소에 꽤나 깐깐해 보이지만 이런 사정을 들으면 표를 확인하고 먼저 들여보내 준다. 나는 9시가 넘어갈 때쯤 내부로 입성했다.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천국과 지옥이 따로 없다. 문제는 이 안에서도 1시간 넘게 기다린다는 것. 앞 줄 사람들이 빠질 때마다 밀어내기식 수동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지루하지 말라고 애니메이션을 틀어 주지만 음소거 상태다. 30분이 지나면 얼어 죽을 에어컨에 욕이 나온다. 이 와중에 민소매 복장으로 일하는 직원이 있는 게 참 신기하다.

Santiago de Cuba, Cuba.

터미널에는 4개의 창구가 있다. 그중 하나는 비었고 3명의 공무원이 내국인용 버스와 기차 매표 및 컨펌을 한다.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매표소의 내부에서 연신 영수증 기계가 돌아가는 찌지지지직- 소리가 난다. 쿠바의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매표소에 두 번 들러야 한다. 최소 하루 전까지 표를 예매하러 와야 하고 당일 탑승 1시간 전에 다시 와서 “나 탑니다”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한다. 다행히 컨펌을 할 때는 줄을 설 필요 없이 컨펌 전담 창구로 가면 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공무원들은 불친절하다. 뭐. 나였어도 한 달에 30 불 받고 일하면 불친절할 것 같다.


“안녕하세요? 산타클라라까지 가요. 기차로요.”

스페인어를 하는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직원은 안경을 한 번 치켜올리더니 나를 빤히 쳐다봤다. 시선은 다시 아래를 향했다.

“언제가시우?”

“내일이요.”

“오후 1시 기차라우. 내일 낮 12시까진 와서 도장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저녁에 와도 되나요?”

“그러슈.”

“얼마죠?”

“20.”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20 CUC(쿠바 태환 페소, 미화 20 달러)를 냈다. 직원은 아무 거리낌 없이 20 쿡을 받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하다. 요금표에도 해당 구간의 요금은 ‘20’ 이라고만 쓰여있지 20 CUC 인지 20 Moneda Nacional(MN, 내국인 화폐. 1MN=약 50원)인지 단위가 없었다. 쿠바 노동자의 한 달 임금은 많아봐야 3-40 쿡인 데다가 시내버스 1회 요금이 약 10원인 쿠바에서 기차가 20 쿡(24,000원)인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마 내국인에게 20MN을, 외국인에게 20 CUC을 받아서 요금이 24배 차이 나도록 만들어 둔 것 같다. 혹은 직원이 동양인 호구를 등쳐먹었거나.

Habana, Cuba


다음날 아침, 탑승 확인 도장을 받기 위해 창구로 갔다. 그곳에서 독일인 알렉스를 만났다. 동양인이 없어 쭉 혼자 다녔던 이 도시에서 여행자를 만났다는 사실도 기뻤는데 나와 같은 기차를 탄다고 했다. 알렉스는 아바나로 간다. 왜 기차를 타냐고 물었다.


기왕 쿠바에 온 거, 쿠바의 모든 것을 느끼고 싶거든. 버스만 계속 타면 재미없잖아?


크. 낭만을 아는 친구 고만. 우리는 탑승에 앞서 마을을 돌아다니며 간식을 샀다.


한 도시를 떠날 때는 설렘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묘한 감정이 돈다. 이 도시는 까사를 나오면 알라메다 공원까지 이어진 언덕길을 내려오며 바다를 바라볼 때 그 감정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기차는 얼마나 설렐까 혹은 힘들까. 산타클라라는 어떤 곳일까. 혹시 산티아고데쿠바에서 놓친 곳이 있지 않을까. 707 밥집에서 한 끼 더 먹고 싶다. 그 츄러스 가게 좋았는데. 연유 소스 듬뿍 넣어서 한 입 물고 싶다.

그땐 미쳐 알지 못했지

기차에 탑승했다. 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낡았다. 의자도 기대 이상으로 딱딱하다. 잠시 후, 기내로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들어왔고 육성으로 객차에 안내방송을 했다.


승객 여려 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의 안전한 여행을 책임지는 ___입니다.

이 열차는 산티아고데쿠바를 출발하는 열차로, 까마궤이, 산타클라라를 거쳐 최종 종착지 아바나에 내일 오전 일곱 시 이십 분에 도착합니다. 물론 아무 일이 없다면 말이죠. 화장실은 객실 앞, 뒤에 있습니다. 흡연은 객실 사이의 통로를 이용해 주십시오. 이 열차에는 출입문이 따로 없습니다. 게다가 많이 흔들리니 통로를 이용할 때 아이들은 반드시 보호자와 동반해야 합니다.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며 샌드위치, 탄산음료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혹은 5번 칸의 카페테리아를 이용하십시오. 식수는 따로 팔지 않습니다. 아마 각 역마다 상인들이 타고 내리며 물을 팔 겁니다. 수돗물을 먹지 않도록 하세요.

저는 여기 뒤쪽에 대기하고 있으니 궁금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 문의해주시면 됩니다. 편안한 여행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오후 한 시 사십 분, 기차가 출발했다. 역방향 좌석은 해가 보이지 않았다. 다섯 시. 고개를 살짝 내미니 노을이 지고 해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멋지다! 느낄 틈도 없이 먼지바람이 불었고, 목이 아파왔다. 좀 이따 다시 봐야지, 생각하는 사이에 잠에 들었다. 잠을 깨니 이미 세상이 어두워졌다. 객실에는 이십여 개의 전등 중 네 개의 불이 들어왔는데, 희미해 보이지만 시야를 밝히기에는 충분했다. 창밖으로는 벌판 위로 보름달이 밝았다. 별들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밤이 되니 사람들은 더욱 수다스러워졌고 화장실에서 오는 냄새도 고약해졌다.

자리가 없어 통로에 앉아있는 아주머니는 연거푸 담배를 피웠다. 통로에는 기차 노선이 그려진 프랑스 지도가 색이 바래 있었다. 이 기차는 오래전 프랑스에서 사용된 뒤 쿠바로 넘어왔다. 중간에 역방향과 정방향이 교차하는 딱 두줄, 서로 마주 앉는 자리가 있는데, 그곳 사람들은 금세 친해져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낮에 햇빛이 들어 창가 쪽에 앉기 싫다던 아이는 어느덧 할머니와 자리를 바꿔 창가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관찰하고 있었다. 시간여행 이란 게 가능하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새벽 1시, 딱딱한 의자를 견디며 막 잠에 들려던 참이었다. 낮에 안내방송을 한 그 직원이 알렉스와 나를 깨워 주의를 줬다.

이 구간부터는 도둑들이 많이 타고 내려요. 두 분 다, 머리 위에 배낭 간수 잘하세요.

다른 남미 국가에 비해 치안이 매우 좋은 쿠바에서도 도난과 소매치기는 일어난다. 물론, 외국인 대상 범죄가 걸리면 형량이 어마어마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알렉스와 서로의 짐을 봐주기로 합의했다. 덕분에 산타클라라에 도착하는 새벽 4시까지 선잠을 자며 잠에서 깰 때마다 알렉스의 짐이 무사한지 확인해야 했다.


기차는 장장 14시간 만에 산타클라라에 도착했다. 밖이 어두웠다. 날이 밝을 때까지 터미널 의자에 앉아 잠을 청했다. 버스 대신 기차를 선택해 만 원을 아꼈다. 야간기차 이용으로 숙박비도 아꼈다. 쿠바의 기차는 어떨까, 궁금증도 해소했다. 덤으로 시간여행하는 기분을 느꼈다.


다만 허리가 좀 아팠다. 잠을 제대로 못 자 몸이 피곤해 산타클라라를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했다. 아바나에 도착해서는 이틀을 더 뻗었다. 역시, 사람들이 하지 말라는 건 하면 안 된다. 그래도 스스로 궁금해서 못 참겠는 것은 안 하고 후회해 보느니 해 보는 게 낫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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