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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Aug 16. 2019

고정관념은 당신의 여행을 망친다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1

순례길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생장’까지 가야 한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바욘까지, 바욘에서 또 기차로 1시간을 들어가면 생장이다. 이 구간은 시작 전부터 스트레스였다. 프랑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사람들은 영어를 못할 것이며, 동양인에게 친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행에서 ‘말 통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두려웠다. 파리에 도착하면 느낀다는 설렘도 없었다. 하루빨리 이곳을 지나 말이 통하는 스페인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파리는 예상대로 흐렸다. 사람들은 바빴다. 영어로 말을 걸었다가 “프랑스에 와서 왜 영어를 쓰니?” 괜히 혼날까 봐 잔뜩 움츠려 있었다. 나에게 프랑스인들은 그런 이미지였다.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들.

실제로 쿠바에서 서양인에게 길을 묻기 위해 “Do you speak English? O, hablas español?" (영어 하세요? 스페인어 하세요?)라고 말을 걸었었는데, “I speak French” (불어하는데요?) 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한 사람이 있었다. 같은 관광객 입장이면서!! 내가 불어까지 할 줄 알아야 한단 말이냐! 기분 상했다.


Logroño, Spain

선입견은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 체험할 수 없게 만들었다.

프랑스에 있는 하루 종일, 나는 누구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붙이는 사람이 되었다. 배가 고파도 식당에 들어가지 못했다. 당당하게 먹고 싶은 걸 주문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점심을 굶은 채 몽파르나스역으로 갔다. ‘PAUL’이라는 빵집에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여기가 제일 맛있나 보다. 같이 줄을 섰다. 목표는 치킨과 야채가 들어간 바게트 주문하기. 목이 마르니 콜라도 하나 사야지. 속은 울렁거렸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봉쥬-’ 나 ‘멜씨’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차례가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평소에 자랑처럼 생각하던 미소도 짓지 못했다. 한껏 경직된 채, 손가락으로 먹고 싶은 샌드위치를 막 가리켰다. 직원들은 웃었다. 그냥 내가 귀여워서 그런가 보다 하면 됐겠지만 그 웃음이 마치 말 못 하는 동양인을 비하하는 웃음처럼 느껴졌다. 캐셔가 불어로 무어라무어라 말했다. 나는 모르겠다는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영어로 “세트를 시키시면 음료와 쿠키도 같이 나와요.”라고 했다. 아! 왜 진작에 영어를 하지 않았는가.


기분 좋게 바게트와 콜라, 쿠키를 받고 나오려는 참에, 직원이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니하오! 하하하!!!"


탁 트인 지평선이 그립다.


예약했던 기차는 전력 수급 문제로 취소되었다. 이메일 조차 불친절했다.

“기차가 출발 못 하게 되었어요. 여행을 미루시길 추천드려요. 스케줄을 바꾸거나 환불하고 싶으면 구매처를 방문해주세요.”

당황하는 사이 원래 기차의 출발시간은 다가왔다. 어딜 가든 외국인에게 말 거는 것에 울렁증이 없었는데 왜 유독 프랑스에서 심했을까. 그들이 쌀쌀맞게 나를 대하지는 않을까, 나의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 하진 않을까, 지레짐작했다.


다행히 ‘Assistant'라고 쓰여있는 조끼를 입은 직원을 발견했고, 영어로 물어볼 수 있었다. 취소된 기차 편 대신 다른 기차가 바욘까지 나를 데려다 줄 거라고 했다. 잠시 후, 7번 플랫폼으로 사람들이 몰려갔다. 기차에 탔다. 평소 값보다 4배는 비싸게 산 15만 원짜리 표였는데 기차 여러 대가 취소되어 한꺼번에 승객들을 태우는 바람에 자유석이 돼버렸다. 나는 앉을 곳을 찾지 못했다. 객실 사이 통로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순례길이고 뭐고 내가 왜 또 해외를 나와서 이 고생인가 잠시 후회했다. 다 먹은 줄 알고 꾸겨 넣은 캔에서 콜라가 샜다. 쿠키가 콜라를 먹어 한껏 눅눅해져 있었다. 서브웨이 쿠키처럼 저렴한 단맛을 기대했건만 생각보다 건강한 맛이었다.

출발 1시간, 앉을자리를 찾았다. 중간에 기차를 갈아타고 바욘까지 가야 했던 원래 표와 다르게 이 열차는 바욘 직행이었다. 바욘에 도착하니 생장까지 가는 막차는 이미 끊겨있었다. 기차가 2시간 연착된 탓이었다. 말도 안 통하는 프랑스에서 1박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큰 지도를 하염없이 보고 있자니 역무원이 왔다.


그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자기를 따라오라 했다. 그곳에는 나처럼 순례길을 시작하러 온 사람들 대여섯 명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기차가 연착된 탓에 생장행 막차를 놓쳤다. 역무원은 우리를 위해 생장행 택시를 잡아주었다. 공짜였다. 죽으란 법은 없었다. 순례는 시작되고 있었다.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자용 여권을 발급받았다. 이 여권이 있어야 순례자용 숙소인 알베르게를 이용할 수 있다. 배낭에 조가비 껍질을 달았다. 분홍빛과 주황빛이 감돌았다. 순례자들은 이 조가비를 순례의 표시로 달고 다닌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산티아고, 즉 야고보(James)가 걸었던 길로 알려져 있다. 그 도착점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대성당에는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있다. 그가 타고 다닌 배에는 조개껍데기가 많이 붙어있었고, 이는 곧 순례길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진짜인지는 모른다.)


51번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배낭의 무게가 고작 5kg밖에 되지 않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뿐, 침낭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절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기에 ‘설마 베드 버그에 물리겠어. 날도 더운데 침낭이 필요할까.’ 이런 단순한 생각이 가능했다.


순례길의 숙소에서는 대부분 이불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친절한 주인 앤드류는 하룻밤 침낭을 빌려주었다. 써보고 괜찮으면 그냥 10유로에 팔겠다고 했다. 더 이상 생각하기는 귀찮았으므로 얇디얇은 침낭을 10유로에 샀다. 내가 아주 계획적인 사람이었다면 짐의 무게는 몇 키로까지 불어났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샤워까지 마치고 작은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밤 9시가 넘었고, 밖은 밝았다. 해는 이제 막 지고 있었다. 열 시가 넘어서야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생장은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작고 조용한 이 도시가 유독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도 초심자의 생기와 설렘이 흐르기 때문 아닐까.


St Jean Pied de Port,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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