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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Apr 16. 2017

#17 포기할 수 없는 7대 불가사의

페루 - 쿠스코(Cuzco)

다시 쿠스코다. 이곳은 익숙한 호스텔 미라도르시토. 정우형은 아침 일찍 비행기 타고 라파즈로 떠났다. 우리가 마추픽추에 다녀오는 동안 리마에서 먹은 닭꼬치의 물갈이와 함께 쿠스코 고산병이 찾아와 쉬고 계시던 강이형은 이제 몸이 좀 나아졌나 보다. 얼핏 보면 장혁을 닮아서 잘생겼는데 친해지고 보면 김C를 더 닮은 (멋진) 형이다.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아온 포스가 느껴진다. 오후에 근교 ATV 투어를 다녀올 거라는데 빨래도 돌려야 해서 시간이 애매하다고 하셨다. 안 그래도 빨래비가 비싸서 고민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형 빨래에 내 빨래를 얹어서 돌리는 대신 내가 널어주기로 했다.

그 사이 나는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저녁 6시 반! 고산병은 이제 싹 날아갔다. 투어 마치고 돌아온 강형이 소시지와 계란을 가지고 밥을 해 먹는다길래 나는 뭘 할까 고민해 봤다. 미국에서 배운 계란 파스타가 생각났다. 슈퍼로 달려가서 파스타 면, 베이컨, 양파, 파마산 치즈 가루를 샀다. 여기 식료품이 저렴해서 정말 좋다.


마늘을 깜빡했는데 공용 냉장고에 있는걸 슬쩍했다. (쉿!) 면을 너무 익혀서 국수가 되어버렸지만 맛은 있다. 형이 사 온 페루 맥주 (꾸스께냐)랑 같이 먹으니까 좋다. 제대로 쉬어가는 느낌이다.


1월 22일

외로움이 불현듯 찾아온다네

아침 7시. 강형은 마추픽추 투어를 떠났다.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마추픽추 사진의 좋아요는 어느덧 100개를 넘어갔다. 쿠스코에서 별 것 안 하고 요리하며 쉬는 하루도 너무 좋았다. 근데 고작 2일 동행했던 형들이 모두 떠나고 방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자니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다. 여행이 아무리 새로운 일로 가득 차도 외로움은 불현듯이 찾아오는 건지, 괜스레 센치해진다.

..

는 감정이 한 세 시간? 갔나? 인연이 되면 한국에서 또 보겠지 뭐. 이미 떠난 사람들을 어쩌겠어. 점심으로 남은 재료를 이용해 계란 파스타를 또 해 먹었다. 마늘이 빠지니까 확실히 맛이 덜하다. 원래는 오늘 푸노로 떠나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추픽추를 제대로 못 본 게 억울해 죽겠다. 아무리 가난한 대학생이라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한 곳에 가서 가서 그저 낮잠만 자고 오다니!


결심했다. 이번엔 제대로 갔다 와 보자. 눈 딱 감고 지르는 거야. 투어사에서 1박 2일짜리는 무지 싸게 갔다 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파비앙 (투어사)에 갔다. 워낙 한국인들의 입소문을 탄 곳이라 주인아저씨 파비앙은 한국어 공부까지 하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쏘이 꼬레아노 (한국인이에요) 하니까 꽤 정확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인사해 주셨다. 원래는 1박 2일 일정으로 그냥 콜렉티보를 타고 이동하는 투어를 하려 했는데, 2박 3일짜리 정글 트레일이 생각보다 저렴하다. 기차 제외하고 ISIC 학생 할인 적용해서 125불이다. 뭘 할지 계속 고민하는데 같은 호스텔에 들어온 찬규, 현진이가 때마침 정글 트레일을 신청하러 왔다.

이 친구들은 짧은 방학을 이용해 남미의 핵심 코스들을 단기간에 이동 중이었다. 그중 하나로 정글 트레일이 껴 있었다. 그래서 나도 같이 가기로 했다. 고민해서 뭣 해!


받은 것 이상으로 도움 주며 살기

이 친구들은 라파즈까지 직행하는 버스를 찾고 있었다. 이미 쿠스코 지리에 빠삭한 나는 더 싼 표를 찾으려면 직접 터미널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쿠스코 초입부에 있는 터미널까지 약 40분을 같이 걸어갔다. 가는 길에 사람들에게 계속 길을 물으며 갔다. 어느 주유소 아저씨와는 스페인어로 이런 농담도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말씀 하나만 여쭈어 볼게요."

"두 개 물어보세요!"

"아 네. 첫 번째, 터미널이 어디예요?"

"쭉 내려가서 ~~~ 로 가면 돼요."

"고마워요! 두 번째,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하하하하. 페루예요 페루."

이제 현지인하고 이런 장난도 친다는 게 뭔가 스스로가 대견해지는 순간이었다.


표를 구입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를 탔다. 저녁을 먹으려는 이 두 명에게 식당이 많은 거리를 추천해 줬고, 같이 들어갔다. 이제 쿠스코 가이드해도 되겠는데?

현진이가 말했다.

"저희가 형 시간을 너무 뺏는 거 같아서 죄송하네요."

"나도 여행 다니면서 현지인, 한국인 할 것 없이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아서. 도움 줄 수 있을 때 주자고 마음먹었어. 부담 갖지 마. 나는 어차피 오늘도 별 계획 없었으니까."

오.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다 나오는구나.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저녁 먹고, 마추픽추 가는 길에 간식으로 먹을 계란을 삶았다. 다시 마추픽추에 가는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부디 무모한 결정이 아니길 바란다.


1월 23일

마추픽추를 지은 목적

아침으로 삶은 달걀 1개를 까먹고 파비앙의 사무실로 갔다. 차에 탑승하니 한국인은 총 6명이다. 나, 찬규, 현진, 10년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30대 중반의 나이에 여행길에 오른 '여행에 미치다' 경민이 형,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어느 부부. 아저씨에게 "휴가로 오셨어요?"라고 여쭈어 보니 "인생이 휴가지. 허허."라고 말씀하셨다. 이분들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여쭈어볼 수 없었다. 아주머니는 성당에 다닌다고 하셨다.

"천주교 신자 셔서 성당 구경하는 게 더 재밌겠네요!"라고 하니 아주머니는 "그 당시엔 지금 같은 기술도 없었을 텐데 인력만으로 저 성당들을 쌓아 올린 게 신기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우리가 지금 그런 유산을 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라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다. 그 성당들은 잉카의 황금 신전을 헐어버리고 그 위에 지어졌다. 나는 성당들을 볼 때 아름다움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스페인 제국의 탐욕만 보일 뿐이었다. 아주머니 말씀처럼 이 성당을 쌓아 올리는 일에 동원되고 그러다 죽어갔을 수많은 원주민들을 생각하니 짠했다.


참! 어제 자기 전에 마추픽추에 관한 다큐를 봤다. 마추픽추가 지어진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마추픽추를 처음 발견한 하이람 빙험은 그곳이 잉카의 황제가 스페인군을 피해 최후로 피신한 빌카밤바 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에 받아들여지는 정설은 아니다. 스페인군은 발견한 모든 잉카 유적지를 파괴했는데 빌카밤바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외에 스페인군에 대항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소문이 있고, 잉카의 전성기를 이룩한 파차쿠텍 황제의 영지라는 설, 태양신을 기리기 위한 신전이었다는 설, 심지어 죄수들을 가둔 감옥이라는 설도 있다.


이 다큐에서는 마추픽추의 건설 목적이 잉카 고위 계층들이 살던 신전이자 태양신을 숭배하며 주거지의 역할을 동시에 했던 요새라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마추픽추 역시 발견했는데 이곳을 파괴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스페인 법정에 소송을 냈으나 잉카인들이 승소했다고 한다. 의문은 두 가지다. 왜 스페인 사람들은 마추픽추를 발견하고도 파괴하지 않았을까? 잉카 사람들은 왜 승소를 하고도 다시 그곳을 차지하지 않고 떠나야 했을까? 물론 그 덕에 우리는 지금 온전한 모습의 마추픽추를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어디까지나 다큐이고 가설이다. 정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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