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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Apr 26. 2017

#26 긴박했던 15분

볼리비아 - 루레나바께 (팜파스)

피라니아는 어디로 갔는가

다음 일정은 피라니아 낚시다. 보트를 타고 잠시 이동하니 낚싯줄과 함께 미끼로 소고기를 건네주었다. 낚시는 처음 해보는 거라 별 기대 안 하고 있었다. 소고기를 갈기에 껴서 물에 던지니 피 냄새를 맡은 피라니아가 달려드는 입질이 왔다. 순간 팍! 당겼더니 한 마리가 올라왔다. 막 흥분해서 자랑하는 사이에 물고기가 갈기를 빠져나와 달아났다. 잠시 후 한 마리를 더 잡고 기념샷을 남겼지만 그 뒤로는 다 놓쳤다. 처음에는 내가 낚시에 소질이 있구나 생각했는데 그런건 아니고 그냥 초심자의 행운이었나보다. 결국 미끼만 낭비했다. 피라니아들이 소고기만 쏙 빼먹고는 도망가는게 신기하다.


어떤 유럽 여자애는 고기를 잡았는데 그만 갈퀴가 눈 근처에 찍혀버렸다. 3일 내내 동물을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게 눈에 보이는 친구였다. 물고기의 눈을 보고 놀라서 어쩔 줄 몰라 가이드에게 "얘 실명되면 어떡해요? 얼른 안전하게 풀어주세요."라며 잡은 물고기를 건넸다.

그 뒤로도 장소를 옮겨가며 낚시를 했는데 우리가 잡은 건 총 4마리밖에 안됐다. 강이형 말처럼 물고기 잡은 것보다 미끼 값이 더 들었겠다. 보통 이 피라니아는 저녁상에 나온다던데 우리는 대부분이 채식주의자다 보니 피라니아는 없었다.


저녁 먹기 전에 선셋 포인트에 다시 들렀다. 오늘은 구름이 많긴 하지만 저 멀리서 주홍빛 노을이 보였다. 드넓은 팜파스에서 하늘 색이 변하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숙연해졌다. 칵테일을 한잔씩 들이키며 강형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기를 안 남겨서 대화 내용이 기억 나지는 않는다. 영화 얘기를 했던 거 같기도 하고, 가족 얘기도 좀 했던 거 같다.


2월 5일

나 세계일주 다녀올 거야!?

꽤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잠이 들었나 보다. 원래 날씨가 좋으면 5시쯤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날이 흐려 8시쯤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그러고는 이 투어의 하이라이트, 핑크돌고래와 수영을 하러 갔다. 가는 내내, 수영하는 내내 비가 와서 물은 굉장히 따뜻했다. 구명조끼가 겨우 2개뿐이었는데 나는 수영을 아예 못 하므로 하나를 get 했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핑크돌고래는 못 봤다. 중간에 발 밑으로 한번 쓱 미끄덩한 감촉이 지나갔는데 아마 돌고래였던 것 같다. 다음번에 여행 다닐 때는 꼭 수영을 배워서 가야겠다. 즐기지 못하는 게 너무 많다.

젖은 옷에 비를 맞으며 돌아오니 좀 추웠다. 샤워까지 마치니 이제 아마존과 이별할 시간이 됐다. 없는 시간 무리해서 만들고 아타카마와 수크레를 포기했으며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겨우겨우 방문한 루레나바께였다. 힘겨웠던 과정 자체도 기억에 남지만 어떻게든 오기를 잘 했다. 여행은 하면 할수록 중독된다던데.. 2년 안에 꼭 세계일주를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동네방네 소문내야지.

나 세계일주 다녀올 거다!


가장 긴박했던 15분

루레나바께 마을에서 터미널까지 가는 수단은 오토 택시밖에 없다. 5 볼이 좀 비싸긴 하지만 달리는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이제부터 숨 막히는 15분이 시작된다. 여섯 시 이십 분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모든 회사에서 라파즈로 돌아가는 표가 매진되어 있었다. 여기서 다시 1박을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내 일정으로는 도저히 불가능이다. 1주일 후에 리마에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고, 여기서 하루를 더 머물면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우유니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기는 싫어서 생각해낸게 지난번 마추픽추 갈 때 우루밤바에서 산타마리아까지 입석으로 갔던거였다. 오늘은 꼭 돌아가야겠으니 입석이라도 달라했다. 좌석은 70 볼인데 입석 50을 불렀더니 안 된단다. 아쉬운 사람이 돈 더 내야지 뭐 어쩌겠는가. 60 볼에 입석 표를 샀다. 대신에 총 16시간 중 6시간쯤 가면 중간에 두 자리가 날 것이니 거기 앉아서 가라고 하셨다.


막 출발하려던 버스를 잡아 입석표를 샀기에 현지인들이 빨리 출발하자고 재촉했다. 짐칸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원주민 아줌마들에게 "짐 여기다 놓아도 돼요?"하니 "니 알아서 해라"는 제스처를 취하셨다. (짐 훔쳐갈 것 같은 기세여서 내내 마음 졸였다.) 우여곡절 끝에 탑승했는데 형이 가방을 뒤지더니 갑자기 13만원 짜리 맥가이버 칼이 없어졌다고 했다.

"어, 그 칼 여행사 선반 위에서 본 것 같은데요? 놓고 오신 거 아니에요?"라고 했더니

"혼자 다녀올게요. 이 버스 타고 먼저 가요." 하셨다.

이 형은 스페인어 안 하고 분명 한국어랑 손짓 발짓 섞어가면서 짐 찾을 텐데.. 워낙 내공이 있는 분이어서 걱정은 안 되지만 스페인어가 조금이라도 되는 내가 돕고 싶었다. 꽤 오래 동행해서 친형처럼 따랐고, 덕분에 내가 더 많은 도움을 얻었으니 말이다. 우유니를 못볼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형과 떨어져 혼자 먼길을 가기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형, 같이 가요 얼른." 하고 차에서 내려 급히 기사 아저씨에게 "저희 물건을 잃어버려서 버스를 못 탈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리고 짐칸에서 다시 짐을 꺼냈다. 그 순간, "찾았다!!"라고 외치는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급하게 가방을 짐칸에 넣고 서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깔깔댔다. 주변에 탄 현지인들도 우리 행동을 보고는 빵 터졌다. 형은 멋쩍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그쪽 일정 내가 다 알고 있는데, 왜 따라오려고 했어요. 미안하게."

"에이. 그게 중요한가요 뭐. 중요한 물건인것 같은데 찾아서 다행이네요."

굿바이 루레나바께


남미 여행 두 달 차, 버스 통로에 누워서 자다.

버스 통로에 앉아서 가는 8시간은 너무 힘들었다. 나는 엉덩이 근육이 그렇게 세분화되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앞, 중간, 위, 왼쪽, 오른쪽.. 계속해서 자세를 바꿔 무게를 분담시켰지만 상체에 심한 무리가 갔다. 더 이상 포지션을 바꿔도 엉덩이 배김이 나아지지 않을 그즈음, 그냥 포기하고 벌러덩 누워버렸다. 이제 허리가 배기긴 했지만 여기서도 꿀잠을 잤다. 어디서나 잘 자는 유전자 하나는 타고 났다. 보트 위에서도 곤히 자던 내 모습을 본 뉴질랜드 여자애 케이티가 "You sleep everywhere!"라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어느덧 아침이 밝아왔고 우리는 드디어 자리를 얻었다.

"아. 입석 너무 힘들었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잤네요."

"진짜?"

"아니요 히히히."

"그럴 줄 알았지."


중간에 어느 마을에서 20분간 휴식을 했다. 배가 고파 1 볼짜리 빵을 4개 사서 둘세데레체 라는 캐러멜 소스에 찍어먹었다. 비가 오고 있었고 나갔다 돌아온 승객들 신발이 다 진흙에 뒹굴었는지 계단과 통로에 흙이 가득했다. 우리는 여기 앉아서 가야하니 물티슈로 급하게 흙을 닦고 다시 자리를 잡았다. 너무나 처량했다. 누울 자리를 만드려고 물티슈를 여러 번 써서 영토 확장하듯 넓게 닦았는데 옆에 앉아있던 현지인이 불쌍했는지 휴지를 건네주었다. 아무튼 거기 누워서 또 잘 잤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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