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 루레나바께 팜파스 투어
2016년 2월 3일
루레나바께 터미널에 6시가 조금 안돼서 도착했다. 마을까지 들어가는 줄 알고 기다렸는데 여기부터는 오토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내가 급하게 화장실에 간 사이 강형이 오토 택시의 시세를 알아봤다. 10 볼을 불렀는데 "그냥 걸어갈래."하며 걷는 시늉을 했더니 5불로 깎아주었다고 한다. 역시 강형이다. 그래도 우린 그냥 마을까지 걷기로 했다. 1마일이라는데 생각보다 길었다.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투어 예약을 위해 열려있는 아무 곳에나 들어갔다. enscorpio라는 여행사였다. 갑자기 밖에 앉아계시던 동양인 할아버지가 "Where are you from?" 하길래 한국인이라 했더니 "한국사람들이에요?" 하신다. 볼리비아에서 38년, 루레나바께에서는 20년째 벌목을 하며 정착했다는 아버님.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하단다. 근데 하시는 말씀이 좀 이상하다. 영어를 배우고 싶거나 백인 여자와 결혼하고 싶으면 여기에 오란다. 농장일 하는 미국인 밑에서 일 도와주며 1년 동안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느니, 1억으로 송아지 천 마리를 사서 이 넓은 땅에 방목시키면 10년 뒤 만 마리가 될 거라느니. 무용담처럼 듣고 넘기긴 했는데 루레나바께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셨다.
2박 3일 팜파스 투어를 500 볼 불렀는데 450까지 깎았다. (형은 흥정 대왕이다.) 드디어 오래 꿈꾸던 아마존 강으로 들어가는구나! 지프차를 타고 제대로 비포장인 도로를 3시간가량 시원하게 달렸다.
중간에 점심을 먹었는데 우리와 함께 투어를 하게 된 미국 여자 3명과 유럽 여자 4명은 모두 채식주의자였다. 그래서인지 2박 3일 내내 우리 밥에 나온 고기 양이 엄청 적었다. 도착해서 잠시 쉬다가 보트 투어를 시작했다. 강 바로 위에 보트를 띄워서 팜파스에 살고 있는 각종 동물들을 구경했다. 물소리 새소리 그리고 보트. 아마존 어딘가에서 즐기는 한가로운 낭만이다. 같은 풍경이 계속되니 좀 졸리기도 했다.
저녁 먹고는 드넓은 평원으로 노을이 지는 뷰포인트에 다녀왔는데 구름이 많이 껴서 장관은 보이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배구를 하고, 맥주는 너무 비싸고, 나는 그냥 해먹에 누워 있었다. 보트 타고 돌아오는 길, 해가 지자 별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앞에 어떤 여자애가 "얘들아 별이 진짜 많다. 잠깐 1분만, 말하지 말아보자. 신기한 경험이 될 거야!"라고 했지만 안 들렸는지 제각각 신나서 떠들었다.
2박 3일간 지낸 숙소는 자연 속에 있었다. 여기에 워낙 모기가 많아서 잘 때도 모기장은 꼭 쳐야 한다. 잠시 밖에 나가서 5분 정도 별 사진을 찍고 들어왔는데 그 사이에 양쪽 넓적다리와 허벅지에 각각 10방도 넘게 모기가 물려있었다. 반바지를 입은 게 실수였다. 여기 정말 미친 듯이 간지러웠다. 바지를 뚫은 건지 반바지 속으로 들어가서 문 건지 자각도 못할 타이밍에 피를 마구 빨아갔다.
화장실에 갔던 여자애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모두 놀라서 나갔더니 뱀이 등장해있었다! 가이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손으로 뱀을 잡아서 우리에게 보여줬다. 독이 없는 뱀이니 만져보라길래 만졌더니 매끈 하니 기분 나쁜 질감이다.
2월 4일
밤새 두 차롄가 비가 세차게 내렸다. 그때마다 잠에서 깨 행복한 자연의 소리를 감상했다. 내 아침잠을 깨운 것도 오줌이 마려워서.. 가 아니라 새소리, 동물 소리, 빗소리다. 모기장이 두꺼웠는지 밤새 모기 한 마리도 안 물렸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두꺼운 이불과 모기장이 있는 곳, 눈을 뜨니 볼리비아의 어느 숲 속에 와 있다는 게 실감 났다. 밖으로 나가보니 처마 밑으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풍경이 좋아서 한동안 앉아있었다.
아침으로 파파야, 바나나, 쿠키, 빵, 엠빠나다가 풍족하게 나왔다. 알람 없는 아침, 적당한 날씨, 빗소리, 맛있는 아침. 행복한 아침의 여건이 모두 갖추어졌다.
오전 일과는 아나콘다를 찾아서! (부제 : 모기와의 싸움) 결국 아나콘다는 한 마리도 발견 못 했지만 드넓게 지평선이 펼쳐진 팜파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돌아가는 보트에서 잠이 쏟아져서 잠시 졸았는데, 눈을 뜨니 내 앞에 앉은 강이형의 티셔츠에 그려진 노란 네모가 눈에 들어왔다. 보트는 굽이도는 강을 따라 흘러가고, 노란 네모를 내 시야의 우측 상단에 두니 내셔널 지오그래피 생방송을 보는 기분이다.
이 투어는 밥이 정말 최고다. 점심도 배 터지게 먹었다. 다만 같이 온 사람들이 나랑 형 빼고 다 베지터리언이었다. 그래서인지 고기반찬이 거의 안 나왔다. 고기 없이도 진짜 맛있긴 한데 2% 부족한 이 포만감은 어쩔 수 없다. 채식주의자들이 평소에 얼마나 먹을 거 고르기가 힘들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엔 2시간의 낮잠 시간, La siesta. 밀린 일기나 쓸 까 했는데 해먹에 누워서 멍 때리다 보니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줄 알았는데 2시간이 훅 갔다. "Vamos, chicos!" (이제 출발합시다!)라는 가이드의 말에 나의 대답은? "5분만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