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 라파스 (La Paz)
라파즈는 정이 들 만 하면 떨어지는 이상한 곳이다. 시내 지리에 익숙해질 즈음, 호스텔 돌아오는 길에 예쁜 문양의 필통을 1개에 5 볼에 팔길래 5개 20 볼로 흥정해서 샀다. 무늬가 다 비슷비슷해서 괜찮은 걸 고르느라 필통들을 좀 해 집어 놓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막 화를 냈다. 대충 해석해 보니 이런 말인가 보다.
"싸게 사는 주제에 왜 난장판은 부려놓아!?"
2016년 2월 1일 월요일
역시 9시 좀 넘어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오늘은 꼭 라파즈를 떠나 우유니로 가려고 마음먹었는데 동현이가 "볼리비아 버스 파업 때문에 우유니 가는 길이 다 막혔대."라고 했다. 오잉? 이걸 어쩌나. 그거랑 별개로 아침에 오랜만에 따뜻한 물이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페루에서부터는 무조건 저렴한 호스텔을 선택해서 따뜻한 물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가끔 랜덤 위치에서 뜨신물이 나온다.
아침으로 엠빠나다를 사 먹고 슬슬 터미널로 갔다. 쿠스코에서 만났던 강이형이 오늘 라파즈에 오신다길래 만나자고 했다. 그래, 파업이든 뭐든 급할 거 없지. 쿠스코에서 헤어진 이후에 서로 뭐 했는지 물었다. 나는 고산병 걸린 게 억울해서 마추픽추에 다시 다녀왔다고 했다. 형은 그 사이에 태양의 섬에서도 일박을 하고 충분히 쉬었다고 한다.
정말 파업을 하는 게 맞나 보다. 방송사들이 취재를 나왔다. 우유니 직행 버스 회사도 2개밖에 없는데 그 마저도 길이 막혀서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 못 한단다. 그렇게 터미널에서 멍 때리고 있는데 강형이 왔다. 만나자마자 유쾌하게 말을 거신다. "어이구. 그래서, 거기, 뭐냐, 마추픽추를 다시 갔다 온 거예요?"
"네. 그래서 지금 거지가 됐어요 하하하."
형은 팜파스(루레나바께)와 우유니를 둘 다 갈 건데, 날씨 때문에 고민 중이었다. 팜파스를 먼저 가면 우유니를 갈 때 달이 없는 시기여서 별을 최대로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기예보 상으로 그때 우유니 날씨가 흐림이다. 우유니를 먼저 가면 앞으로 3일간 우유니는 맑음이지만 달이 반달보다 조금 작은 정도?
내가 우유니는 지금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니 팜파스를 먼저 가자고 꼬드겼다. 끝까지 날씨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셨지만 어쨌든 같이 가기로 했다. 자기는 뭐 어차피 시간 많으니까 우유니 가서 맑은 날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형과 함께 루레나바께 행 터미널로 가서 내일 1시 버스를 예매했다.
이 형 너무 좋다.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지만 현지인들과 한국어 + 바디랭귀지로 대화한다. 환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빵 터졌다. 지폐에 투명 인물 위치가 다르다며 "이 거봐 이 거봐. 다르잖아. 바꿔 줘!"라고도 하고 "6.97로 해줘. 옆에 환전소는 6.97이던데? 안 해주면 나 저기 간다?"라며 흥정도 하신다. 이게 말이 통하는 게 더 웃기다. 환전소 아주머니 왈 "가든가!"
라파즈도 안전한 동네는 아닌가 보다. 들어보니 대낮에 혼자 골목길을 걷는데 세명이 달려들어 전기 충격을 가해 다 털어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내일 버스로 팜파스에 가기 위해 다시 호스텔 체크인을 했다. 이 지겨운 동네에서 4박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방값이 저렴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형이 달의 계곡과 킬리킬리를 다녀오는 사이에 나는 라파즈 시내를 좀 더 돌아다녔다. 오후가 되면 햄버거 노점상이 열리는데 햄버거와 감자 세트가 8 볼(1500원)밖에 안 한다.
한국에 있는 친구와 카톡을 했다. 자유롭게 여행 다니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여행을 참 좋아하는 친구인데, 나처럼 배낭여행보다는 돈을 모아서 휴가 동안 짧고 굵게 다녀오는 스타일이다. 나는 성향 자체가 타인 신경 별로 안 쓰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데 반해 이 친구는 주위 사람들(특히 가족) 신경을 많이 쓴다. 죽을 때 내가 하지 못한 부분을 아쉽게 여기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나 같은 사람들은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지 못해 후회할 수도 있고. 나와 반대 성향의 사람들은 다른 이의 말을 들어주느라 자기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후회할 수도 있고. 어차피 선택은 각자가 하는 거고, 그 선택에 맞게 후회 없이 살면 되지 않을까?
2월 2일
역시 또 주섬주섬 일어나 샤워를 하고, 한국인 부부와 함께 마트에 다녀왔다. 속이 좋지 않아서 너구리 라면을 사다 끓여 먹어야겠다고 하니 계란을 2개나 공짜로 주셨다. 호스텔에 돌아오니 같은 방의 일본 친구 Jin이 기타를 치고 있었다. J-POP을 칠 수 있냐고 물어봤고 Spitz의 チェリー(Cherry)를 말하니 기타로 쳐주었다. 나도 신나서 노래를 불렀다.
강형이 달의 계곡에서 돌아오자마자 부랴부랴 라면을 끓여 먹었다. 오랜만에 먹은 한국 라면은 정말 미친 듯이 맛있었다. 역시. 남미에서 탈 났을 땐 한국 음식이 직빵이다. 설거지 포함 30분 만에 마무리하고 바로 터미널로 뛰어갔다. 그런데 1시에 출발한다던 버스는 1시 40분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버스는 안 오는데 직원분들은 여유롭게 티비를 보고 계셨다. 남미 두 달 차인데 이 정도쯤이야. 조급해할 거 하나 없지. 우리도 옆에 같이 앉아서 더위를 식혔다. 이제는 이들의 시간 체제에 완전히 적응했다. 남미는 일 처리가 느리다느니, 사람들이 게으르다느니 이런 소리가 더 듣기 싫다. 누구 기준에서 느리고 누구 기준에서 게으르단 말인가? 이 사람들이 한국 오면 놀랄 거다. 일처리가 너무 빠르고 사람들이 사는 속도도 너무 빨라서. 1시 버스가 1시에 바로 출발해 버리는 걸 두고 정이 없다 생각할 수도 있고.
그 유명한 루레나바께행 버스에 탔다. 사실 루레나바께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1. 비행기 - 1시간이면 가는데 기상 여건에 따라 자주 결항된다. 돈이 좀 든다.
2. 버스 - 약 16시간 걸린다. 볼리비아 죽음의 산길, 비포장도로를 꽤 오래 달린다. 약 70 볼 (15,000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 매력이다.
형과 나는 돈보다는 시간이 많은 여행자이기에 2번을 택했다. 우리의 배낭은 짐칸에서 각종 짐들과 뒤엉켰다. 2시간쯤 달리니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차 하나가 겨우 지나갈만한 길목인데 반대편에서 오는 트럭과 마주했다. 바로 옆은 산비탈 낭떠러지다. 버스가 트럭을 비껴가야 하는 상황. 잠들어 있던 승객들이 모두 일어났다. 중간에 버스가 철컹하는데 거의 절벽으로 떨어지는 줄 알았다.
현지인들도 숨 죽이며 지켜보는 상황! 얼마나 절박했던지, 가장 곤히 주무시던 아저씨가 일어나서 운전석을 향해 쾅쾅 문을 두드린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못하는데 대충 이런 거였겠지.
아저씨! 이대로 가면 우리 다 죽어. 차 멈춰요 멈춰!!
신기하게도 트럭은 잘 비껴서 지나갔고 버스도 곧이어 비탈길을 빠져나갔다. 다시 평안한 마음으로 가나 했는데 마을 꼬마애들이 창문 안쪽으로 물풍선을 던진다. 시작부터 뜨개질을 하시던 우리 옆자리 할머니는 물풍선이 옆에서 터지건 말건 뜨개질에 초 집중하셨다. 아마 생계유지 수단인 것 같았다. 중간에 비포장도로에서 차가 한 번 좌우로 덜컹거렸다. 자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순간 눈을 떠 탄성을 질렀다. 이때 정말, 절벽으로 떨어져 죽는 줄 알았다.
강이형하고 16시간 오는 동안 군대 얘기를 많이 해서 그런가 군대 꿈을 꾸었다. 다행히 병장 때였다. 새로 들어온 행정병에게 내가 원하던 리더십의 모습으로 지도를 해주는 그런 이상한 꿈이었다. 해가 저물고, 버스는 운전자를 교대한 뒤 계속 달리고 있다. 볼리비아 아마존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투비 컨티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