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
"폐하, 과라니족의 지역을 포르투갈 영지로 복속시켰습니다."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원주민들을 학살해야 했소?"
"폐하가 허락하신 것 아닙니까."
"..."
"세상은 원래 그렇습니다 폐하."
"아니오, 그렇지 않소. 우리가 그렇게 만든 거요."
이번 주 라틴아메리카사 수업에서 영화 '미션'을 봤다. 포르투갈 식민지 정책이 남미의 과라니족을 어떻게 말살시키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라틴사 자체가 워낙 마이너지만 원래 이 지역에 관심이 있어서 듣게 됐는데 교수님의 강의력과 상관없이 세상을 뒤집어 바라보고 이게 진짜인가?라는 의문을 키워준 수업이다.
서구의 눈부신 발전에는 타 문화와 종교에 대한 얼마나 많은 묵살과 폭력이 있었는지. 유럽의 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아메리카 자원이 수탈되고 얼마나 많은 흑인 노예들이 죽어갔는지. 유럽에서 옮겨온 천연두, 대학살로 중남미 원주민들의 인구는 1/10이 되었다는 사실은 왜 학창 시절에 안 배우는지. 찬란한 문명과 유산은 무참히 짓밟혔는데 태양의 후예들이 채 천하를 호령하기도 전에 얼굴 하얀 종족이 모든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는 관점은 왜 가르치지 않는 건지.
학창 시절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주로 배운 것은 근대 유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우수한 이슬람의 문화도, 6세기에 이미 대도시를 이룩한 멕시코 원주민 나우아족의 이야기도, 근대 유럽의 자본주의 물꼬를 튼 남미의 수많은 금과 은도 아니었다.
아직까지 서구인의 정신에 흐르는 그리스와 로마였고, 중세의 암흑기였고, 입이 쩍 벌어지는 르네상스, 그 유명한 프랑스혁명, 산업혁명, 세계대전, 유럽과 미국이었다. 오로지 승자의 시각에서 모든 역사가 기록되었다.
교육을 통해 인생에서 무엇이 남았는가. 우리도 역사의 승자가 되기 위해 더 악착같이 살고, 더 위대해지려 하고, 조금이라도 더 이겨먹으려 경쟁하는 건 당연한 거라는 합리화? 원래 세상은 승자가 독식하는 불공평한 곳이야, 그러니까 괜한 생각 품지 말고 좋은 대학 가서 열심히 살어, 이런 거?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을 향해서는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는 도대체 어디서 배웠단 말인가.
있긴 있었다. 수능에는 나오지 않아 공부하지 않았던 도덕 말이다. 거기서는 윤리 의식을 다루었던 거 같긴 한데, 결국 "1-5번 중 가장 착한 것을 고르세요" 식의 문제가 나오지 않았던가?
영화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찔렀다. 세상은 원래 그렇지 않다. 우리가 세상을 그렇게 만든 거다.
강자가 되어 역사에 남기를 바라지 말아야겠다. 세상을 뒤집어 볼 줄 알고, 삶을 힘겨워하는 수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크고 작은 액션을 취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사실 나도 내 살길 하나 찾기 어려워 타인보다 내가 더 중요한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이 시대 대학생이다. 이미 가진 것도 성취한 것도 많아서 감히 누군가를 약자라고 규정 지을 자격이 내게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래서 SNS에 거리낌 없이 내 생각을 올리는 거다. 이렇게라도 하면 보는 눈이 많아져서 내가 쓴 글에 나타나는 내 모습에 일 할 이라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