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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Jun 20. 2017

섬진강 무전여행기 4

무전여행, 테니스, 신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 목사님을 따라 나섰다. 하동읍까지 길이 꽤 멀어서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으나, 테니스를 치러 가자고 하시는 목사님의 권유를 거절할 수 없었다. 무전여행 와서 테니스까지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 운동신경이 약한지라 테니스를 익히는 게 어려웠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셔서인지 1시간 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배웠다.     

태풍 너구리가 지나간 하늘은 맑게 개어있었다. 여행 시작부터 이런 하늘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테니스를 마치고, 아쉬운대로 테니스장 사진을 찍었는데 사모님이 “그러지 말고 같이 사진 찍고 가자~ 라켓 들고!” 라고 하셨다. 타이머를 설정하고 셋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사모님께서 아침상을 차려주셨다.


“손님 왔다고 생선까지 차렸네. 허허.”     

짐을 꾸리고 다시 길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어제 밥을 먹으면서 매실장아찌를 극찬했는데, 서울 가서도 계속 이 맛이 생각 날거라고 하니까 사모님께서 한 봉지를 싸주셨다. 같이 테니스 쳤던 것 기억하라며 테니스공 넣는 통에 주셨다. 거기다가 방금 찐 따끈한 감자와 옥수수까지 엄청 챙겨주셨다. 영원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고 은혜다.     

테니스 공 케이스 안에 한봉지 들은것이 경상도의 매실 장아찌다. 달고 시큼한 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날이 개니 교회와 하늘의 조화가 아름답다.



섬진강 물줄기의 하나를 이루는 ‘화개천’은 물이 참 맑았다. 화개천을 따라 다시 화개장터로 내려왔다. 어제까지는 태풍의 영향으로 엄청 덥지는 않았는데 날씨가 맑아지니 상당히 덥다. 화개를 지나 하동 쪽을 걸으면 섬진강 변에 올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아름다운 강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어서 좋다. 다만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서인지 제초가 안되어 풀숲이 되어버린 구간도 있고 거미줄이 길을 떡하니 막고 있는 곳도 있었다. 예쁘게 조성해 놓은 김에 관리도 잘 되면 좋을 텐데.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인가보다. 좀 아쉽긴 하지만 풍경자체가 워낙 압도적이니까 그걸로 만족한다.

두어시간 걸으니, 찌는 날씨를 참을 수 없었다. 눈 앞에 보이는 ‘지리산생태관’을 따라 무작정 들어갔다. 입장료를 내야 한다면 비벼서라도 어떻게든 들어가서 쉬어야지 생각했는데, 무료 관람이었다. 잠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지리산의 기운을 느꼈다.

길가의 정자에 누워서 쉬며 하늘을 바라봤다. 흰 구름, 파란 하늘, 초록빛 지리산, 섬진강. 이 네박자의 조화가 기가 막히다. 마지막 여정에서 갈 길이 멀었기에 점심은 아침에 싸주신 옥수수와 감자로 배를 채웠다.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었다. 아무 말 없이 5-6시간을 걸으니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하동읍’ 표지판이 나타났다.

하동은 배와 녹차가 특산물인가보다. 곳곳에 녹차 밭, 배 농장이 늘어져 있다. 어느덧 저녁 6시가 되었고 배고픈 몸을 이끌고 다시 민가의 문을 두드렸다.

“무전여행 중인데요. 길가는 나그네에게 저녁 한 끼만 부탁드립니다.” 이런식으로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앗, 지금 밥이 없는데..”

“괜찮아요. 문전박대 안해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하며 돌아서려던 찰나,

“라면이라도 먹고 갈래요?” 하신다.

“네! 감사합니다!” 굽신굽신 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정말정말 좋아하는 신라면을 그것도 두 개나, 약간의 찬밥과 함께 주셨다. 너무 배가 고팠는지 5분도 안되어 라면을 폭풍 흡입했다. 뿌는 것 조차 아까웠나보다. 설거지를 도와드리고, 감사의 인사를 나누며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정동마을을 향해 갔다.     


잠을 어디서 자야 할까? 마을회관으로 갈까? 고민하던 찰나, 오두막이 보였다. 경로당이었다. 거기 계신 할머니들께 인사드리고 여쭈어봤다. 

여기 마을회관이 어디있나요? 큰길따라 나가면 있어. 네, 감사합니다! 하며 길을 나서려는데 근디 워디서 왔데. 여행중인감? 네 할머니. 서울에서 곡성까지 기차타고 와서요. 걸어서 섬진강 따라 무전여행 하고 있어요. 어이구, 뭣하러 사서 고생한댜. 잘데 없음 여기서 자! 밤에는 아무도 없응께. 와, 진짜요? 그래도 되요? 정말 감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 밥하고 반찬도 있으니까 먹고 가라고 막 붙잡으셨다. 저녁은 이미 먹었으니 잠자리를 주신 것 만으로도 큰 감사를 드리며.. 이렇게 좋은 추억을 하나 더 만들어간다. 정동마을 경로당을 끝으로, 넷째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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