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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Jun 20. 2017

섬진강이 내게 남긴 것

4박 5일의 무전여행을 마치며

2014년 7월

하동읍에 도착했다. 섬진강과 이별할 시간이 왔다. 마지막으로 섬진강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표지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가진 것이 한 푼도 없어서 여행을 못 가는 게 서러웠다. 그 마음으로 무전여행을 떠나기 까지, 계획은 딱 2시간. 시작이 막막했다. 정말 무전여행이 가능할까? 갓 전역한 젊은이의 패기가 있다지만, 뭔가를 배우긴커녕 되려 지역에 민폐만 끼치고 오는 건 아닐까? 많은 걱정 속에서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논산훈련소 시절 행군할 때 바라본 논산의 파란 하늘, 노란 논을 보며 무전여행을 꿈꾸었던 순수한 청춘을 기억했다.

4박 5일 동안 이렇게 많은 음식을 얻어먹었다. 교회 밥, 절 밥, 농사 밥, 이장님 밥, 어느 것 하나 맛없는 것이 없었고 정성이 안 들어간 끼니가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처음 보는 젊은이에게 조건 없이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셨다.


섬진강은 어디서 바라봐도 아름다웠다. 걷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렇게 편안한 곳에서 잠 들 수도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떠나야 될 이유보다 떠나지 말아야 될 이유가 더 많았던 여행이었다.


해야 될 일도 많은데 스트레스 풀 길이 없어서 두 시간 만에 충동적으로 계획하고 다음날 바로 떠난 여행이었다. 남부지방에 찾아온 태풍 '너구리'를 뚫고 걸은 여행이었다.

5일 동안 배낭 메고 섬진강을 따라 80km의 길을 걸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 길을 1시간도 안 걸려 지나온 허무한 여행이었다.

자외선을 그대로 맞아서 피부는 더 나빠지고 까맣게 타버려 여드름까지 늘어난 여행이었다.

매일매일 잠은 어떡하지, 밥은 어디서 먹지, 걱정 속에서 한 여행이었다.

휴대폰도 꺼놓고 지도 한 장만 들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여행이었다.


하지만,

무전여행 중인데 쓰레기라도 줍겠다고 하니 웃으시며 표를 무료로 건네주신 기차마을 매표소 직원분이 있었다.


처음엔 왜 사서 고생하냐고, 당장 서울 올라가라고 그러셨지만 나중엔 여행 잘 다녀오라며 격려해 주신 곡성의 어느 할머니가 있었다.

저녁 안 먹었으면 들어와서 먹고 가라고, 나중에 성공하면 꼭 다시 찾아오라고 하면서 아들이라고 불러주신 심청이야기마을의 이장님 내외분을 만났다.

둘째 날 점심을 못 구해 허덕이다가 풍경이나 보려고 우연히 올라간 절에서 공양하고 가라며 나그네에게 밥을 챙겨주신 어느 보살님이 있었다. 같이 밥을 먹으며 갓 전역한 청년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나누어주신 하늘공원 이사장님을 만났다.

처음에는 이단인 줄 알고 냉랭하셨으나 식사 두 끼와 잠잘 곳을 제공해 주시고 새벽기도를 통해 삶의 진리를 더욱 깨닫게 해주신 구례의 어느 교회 목사님을 만났다.

비바람 맞으며 지나가는데 감기 조심하라고, 와서 차 한잔 하고 가라며 따뜻한 커피를 대접해 주신 관광안내소 직원 분들을 만났다.

일거리라도 찾아보고자 들어간 마을에서 일은 됐으니 밥 한 끼 먹고 가라며 그날 새로 딴 호박으로 전을 부쳐주신 송정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도 만났다.

쌍계사 가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교회에서 저녁밥, 아침밥 챙겨주시고 아침엔 같이 운동하러 가서 테니스까지 알려 주신 하동 어느 교회 목사님, 사모님을 만났다.

무지하게 더운 7월의 어느 날, 6시간을 걸어 발걸음 닿는 대로 들어간 집에서 밥은 없지만 라면이라도 먹으라며 신라면을 두 개나 끓여주신 아주머님을 만났다.

잘 곳 없다고 하니, 여기서 자고 가라며 마지막 날 잠자리를 허락해주신 정동마을 경로당 할머니들을 만났다.


이 모든 사람들, 음식, 기쁨을 만날 수 있었다. 떠나지 않았으면 다시는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느끼지 못했을 숱한 감정들, 소중한 기억들을 고이 안고 돌아온 여행이었다. 나보다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어떤 것이지, 이렇게 섬김 받을 자격 없는 내가, 받은 사랑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야 하나 어렴풋이라도 알게 된 여행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지하철 2,3호선에서 밀짚모자 쓰고 달랑 반바지에 티셔츠 하나 입은 이 꼴은 누가 봐도 거지였다. 예전에는 아무리 꾸며 입고 나가도 훨씬 키 크고 잘생기고 옷 잘 입는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곤 했다. 여행 후에는 이런 차림으로 당당하게 2호선을 타고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됐다. 겨우 5일뿐인 여행이었지만 정말 중요한 가치는 외면이 아닌 내면에서 온다는 말이 무엇인지 몸소 깨달았다. 7월의 섬진강에게 나는 아무것도 줄 수 없었지만 섬진강은 스물 세 살 젊은이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다시 2017.

* 아직까지 버킷리스트 중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전국 무전여행 일주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에는 정말 멋진 풍경들, 좋은 사람들, 맛있는 음식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전국 지도 한 장 들고 김삿갓처럼 자유로이 국도를 거닐고 바다에 빠지기도 하고 산을 타보고도 싶다. 그 모든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아, 무전여행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아니면 못해보겠구나! 싶다. 조금씩 철이라는 게 들면서 무전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 해서는 안 되는 이유만 늘어간다. 어쩌면 전국 무전여행은 평생 꿈으로 간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실현 못하고 꿈으로 남는 들 어떤가! 돈키호테도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하고, 이기지 못할 싸움을 싸우고, 불가능한 꿈을 꾸라고 하지 않았는가. 무전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남아있는 한, 내 마음은 영원히 청춘이다.



섬진강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 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 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긴강물이 어디 몇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으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개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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