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추억에 잠겨 싸이월드를 보다가.
오랜만에 싸이월드에 들어갔습니다. 8-90년 대생들이 감성을 폭발시키기 가장 좋은 방법이죠. 아쉽게도 훨씬 어려워진 (못생겨진) 레이아웃, 계속 뜨는 광고 팝업이 조금 거슬렸습니다. 차라리 지난 미니홈피 시절의 플랫폼을 그대로 가져온다면 사용자로서도 시간여행 하기 참 좋았을 텐데요.
가장 눈에 들어온 건 ‘2013년 9월’의 선곡표였습니다. 육군 상병 시절이네요. 그때도 아마 페이스북을 하다가 사회와 나 사이의 괴리감, 열폭을 느껴 잠시 싸이에 들어와 옛 감성을 느껴보고 싶었을 테죠. 싸이를 처음 시작한 2004년부터 차곡차곡 모아둔 배경음악들 중 가장 좋아했던 것만 모아 선곡을 해 놓았네요. 지금은 대부분 듣지 않는 곡들인데 다시 들으니 너무 좋은 노래들입니다.
재생 버튼을 누르려니 어도비 플래시가 없다고 설치 하라네요. 평소라면 바로 꺼버렸을 테지만 그 노래들이 너무나 듣고 싶었는지 플래시를 깔았습니다. 그리고 재생을 했지요. 노래가 20초에 한 번 끊기더군요. 채 한곡을 못 끝낸 채 그냥 유튜브에서 똑같은 노래들을 검색합니다.
지금 글을 쓰며 듣는 노래는 김진표의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안 들어 보신 분은 한 번 들어보세요. 이적의 목소리와 김진표 랩의 가사가 정말 좋아요. 그런데 이 노래 중 한 구절이 저를 뜨끔하게 만들었습니다.
내 나이 스물여덟 시간은 금세 흘렀는걸. 동화 속 공주님 같은 얘기는 내겐 너무 사치인걸, 이리로 가다 때로는 저리로 가다 계속해 뛰다 보면 어느샌가 시간은 흘러 이렇게나 미쳐가나
이 노래를 처음 만난 게 늑대의 유혹이 나왔던 2004년, 그러니까 저는 열세 살이었네요. 언제 들어도 ‘스물여덟’은 나랑 먼 이야기였는데 말이죠. 소름 돋게도 내년에 스물여덟입니다. 스물일곱이라는 나이를 생각해 봤어요. 젊다면 한없이 젊은 나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시기인 것 같기는 합니다. 끊임없이 다음 스텝을 생각해야 하고, 이제는 좀 전문 분야를 정해서 그 길을 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싶고, 가정적인 남편이 되고 싶은데 그렇게 하려면 직장이 안정적이어야 할 것 같고.
뭐 그렇다고 이 상황을 불평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괜히 우울해져서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구요. 청춘을 예찬할 때마다 말했듯이 저는 나름의 방법으로 스물일곱을 보내고 있고 할 수 있는 데 까진 평범함에 저항해 볼 생각이니까요. 다만, 그냥 그런 고민이 들어서요. 안정적인 상태를 찾아가려는 건 사람의 본능일까?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순응하는 것이 조금 덜 복잡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면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 평범함이 꼭 순응을 의미하는 것 같지도 않고. 어쨌든 안정감을 누리면서도 도전은 가능하지 않나.
정답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아직 길을 찾지 못해 좀 더 방황 속에 머무르고 싶은 나 자신에게 “젊잖아”라고 합리화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실패하면 좀 어떻냐고. 버즈 ‘비망록’의 가사처럼 ‘다른 삶의 오직 나만의 길을 가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이효리 씨의 말 따라 그냥 아무나 되고 싶은 마음. 그 사이 어디쯤에 있습니다. 평범해지고 싶은 이 마음을 억누르는 게 맞는 건지 순응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럴 땐 어른들의 지혜가 부럽기만 합니다.
시간을 찾아서는 마지막에 이렇게 끝납니다.
아마 평생 내가 너를 보는 날은 오지 않겠지. 세월이 흘러 주름이 지면 너가 말해주겠지. 난 언제나 항상 너와 함께 했다고. 다만 니가 몰랐던 것 뿐이라고.
그래요. 이 매거진 제목처럼 젊음이 오래 거기 남아 있었으면 좋겠네요. 말없이 찾아왔듯이 말없이 떠나가겠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눈치 못 챈 채로 시간은 흐르겠지만요. 평범해지고 싶은 욕구에 순응할지 억누를지, 그 문제에 답을 내릴 수 있게 되는 순간 젊음은 끝나지 않을까요.
PS. 브런치도 언젠가 그런 공간이 될까요. 20대 중후반의 향수를 느끼려고 방문하는 공간 말입니다. 왠지 아닐 것 같네요. 세월이 흘러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없어지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