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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Jul 03. 2017

나는 어른이 되기 싫었다.

2015년 2월의 추운 겨울이었다. 패스트푸드 알바가 꽤 힘드니 일하기 전에 실습을 와보라고 했다. 아침 7시에 출근을 해서 2시간 정도 실습을 했다. 내가 맡은 일은 그날 배달 온 원자재들을 트럭에서 모두 내리고 지하 창고까지 실어 나르는 고된 노가다였다. 이 패스트푸드점 포지션 중 가장 빡센일이다. 두 명의 젊은 남자들과 함께 일했다. 내 이름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이가 몇인지, 일해보니 힘들지 않은지, 계속하실 건지 같은 짧은 이야기만 오고 갔다.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교환학생에 합격은 했는데 돈이 없었다. 6개월 뒤 출국인데 비행기표 예매할 여유도 없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휴학 찬스를 때렸다. 보통은 휴학하고 인턴을 많이 하던데. 아니면 적어도 과외를 많이 뛰어서 편하게 돈을 벌던데. 나는 나의 메인 잡으로 햄버거 가게를 선택했다. 스케줄 조정이 자유로운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처음에는 교환학생 출국 전 6개월만 일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정이 들어버렸다. 교환을 다녀온 뒤 복직해서 아직도 일하고 있다.


사실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는 3D다.

Dirty. 더럽다. 일은 더럽게 힘들면서 쉬는 시간은 30분밖에 안 준다. 근로 시간에 잠시라도 짬이 나서 쉬려고 어디 앉으면 "뭐 하는 거예요?"라는 말이 바로 날아온다. 알바 초반에 이렇게 군기를 잡아두니, 2년 차가 되어 웬만한 매니저들과도 친하게 지내지만 여전히 어디 앉을랍시면 눈치가 보인다. 6시간 중 휴식 30분을 빼고 5시간 넘게 온전히 서 있는 것이다.

Dangerous. 위험하다. 막내 시절에는 패티 굽고 후라이 튀기는 일을 주로 한다. 초보자들에게는 화상이 일상이다. 특히 나처럼 굼뜨고 어리버리한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패티 굽는 기계에서 떨어지는 뜨거운 기름을 순발력 있게 피할 방법이 없다. 내 오른팔목에는 근무 초기에 생겼던 6개의 화상이 남아있다. 얼마 전에는 하도 바빠서 급하게 치킨을 튀기다가 그만 뜨거운 바스켓에 내 손이 데어버렸다. 왼쪽 팔목에 2cm가량의 화상이 남았는데 잘 없어지질 않는다.

Difficult. 어렵다. 돈 벌기 참 어렵다. 몸이 죽어라고 혹사를 당해도 고작 최저시급이다. 나름 대기업이니 4대 보험료도 떼 간다. 주 15시간을 넘어가면 주휴수당이 꼬박꼬박 나와서 좋긴 한데, 방학 때 말고는 15시간 넘겨서 일할 일이 없다. 학기 중에 15시간을 넘게 하려면 공부를 포기해야 했다.

(본 이미지는 제가 일하는 매장과 상관 없습니다)

복학을 하고 학교에 다니면서 그 힘들다는 패스트푸드를 계속 뛰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몰랐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 자본주의 시대에 왜 나는 적성 따라 돈 벌 생각은 못하는 걸까. 왜 기계적으로 햄버거나 만들며 최저시급을 받고 있는 걸까. 뭐가 좋아서 이 일을 계속하는 걸까. 친구들도 나를 이해 못했다. 다른 편한 아르바이트도 많은데 왜 굳이 사서 고생하냐고 했다. 답은 '저항'이었다. 첫 번째는 어쩔 수 없이 계급이 생겨나버린 이 사회에 대한 저항이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이미 '패스트푸드점 알바는 천한 직종이야'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 같아 불편하기는 하다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각종 직업을 등한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두 번째는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다. 나이가 한 살 더 먹을수록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나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 가진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돈을 모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나는 나이 먹기 싫었나 보다.


"안되는걸 알고 되는걸 아는 것, 그 이별이 왜 그랬는지 아는 것, 세월한테 배우는 것, 결국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 (윤종신 - 나이)

나이를 먹을수록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거는 되는 거고 저거는 안되는 거다. 그게 구분이 되는 게 바로 성숙이고 시간의 지혜라고 배운다. 그놈의 성숙에 저항하고 싶었다. 인생에서 한두 개쯤은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모든 선택이 합리적인 인생을 산다면 너무나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20대 초중반의 패기 넘치는 나와의 연결고리를 한두 개쯤 남기고 싶었고, 그것이 내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 될 지도 모르는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였다.


알바가 끝나고 아무것도 남는 게 없으면 슬플 것 같았다. 때마침 브런치 작가를 시작했고, 알바하며 만나는 사람들, 알바 중 일어난 에피소드를 글로 적기 시작했다. 이 글은 2년 넘게 해온 나의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의 경험, 즉 비합리적 선택의 끝판왕들이 모이고 모인 결과물이다. 가끔은 의도치 않게 사회고발적인 내용이 담길 수도 있고 나의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알바를 계속할 수 있도록 많은 정을 흘려주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한다.


그래서,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언제까지 할거냐구요? 글쓰기 소재가 떨어질 때까지 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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