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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Jul 03. 2017

부끄러움을 아는 것

아침메뉴로 팔고 남은 계란을 지하 창고에 가져다 두려던 참이었다. 냉장고를 지나 아무 생각 없이 냉동고를 열었다. 두리번거리며 계란 상자가 모여 있는 자리를 찾았으나 없었다. 뭐지? 아. 계란은 냉장보관이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실소했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냉동고를 빠져나오니 안경에 김이 서렸다.


우리 매장은 지체, 지적장애인들을 의무적으로 고용한다. 이렇게 해야 본사에서 지원을 해준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들 중 나보다 세 살 정도가 어린 J라는 친구가 있다. 키는 한 185쯤?  글을 쓰려고 생각해보니 아직도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다. 어쩌면 나도 이 아이와 친해질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고 있었는지도. 작년이었나? 오더 매니저가 한바탕 화가 났다. 누군가 계란 한 박스를 냉장고가 아닌 냉동고에 보관한 것이다. 계란은 꽁꽁 얼어 있었고, 30개들이 계란 6판이 쌓여있는 한 박스를 통째로 버려야 했다. 범인은 J로 밝혀졌다.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찼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조롱거리로 삼았다. “ㅋㅋㅋㅋ 계란을 냉동실에 넣었대.”


또 다른 지적장애인 중에 H형이 있다. 나보다 한 살 많다. 나랑 동갑인 매니저도 그냥 "H야!" 라고 부른다. 이 형은 조금 재밌는 면이 있다. 시사 이슈를 한눈에 꿰뚫고 있다. 이야기하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뉴스 브리핑이 따로 없다. 한참 북핵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에는 컵을 씻다가 갑자기 "위대하신 김정은 장군님 만세!" 라고 외친 적도 있다. 이 형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말을 걸면 오히려 무슨 말을 하든 "응"이라는 대답밖에 안 한다.

형 안녕하세요? 응. 형, 저 다음 주에 쉬어요. 응. 형 저 퇴근할게요. 수고하세요. 응.     

점장의 기분이 아주 아주 나빴던 어느 날, H형이 점장의 말을 듣지 않고 평소 자기 하던 스타일대로 일을 했나 보다. 전날 야간 근무에다가 본사 직원들의 방문으로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있던 점장은 옳다쿠나 싶었는지 H형에게 쏘아댔다.


“너 일로 와봐! 내가 여깄는 것들 내리라고 했어 안 했어! 왜 안 해! 이거 먼저 하고 컵 와시 하라고 했잖아! 왜 네 맘대로 와시 먼저 하는데! 어? 그리고, 올리라는 거는 왜 제때 안 올려? 이거 세탁기 이런 식으로 돌리면 안 된다고 했어 안 했어? 바닥은 또 왜 이렇게 더러운데?”

백룸에서 점장의 샤우팅이 오가는 동안, 나머지 직원들은 조용히 햄버거를 만들고, 햄버거를 나르고, 주문을 받고, 아이스크림을 뽑고, 음료를 뽑아내고 있었다. 전국에서 매출이 손가락 안에 드는 직영점, 그중에서도 가장 바쁜 점심시간이었다. 남일에 신경 쓸 여유 없이 주문은 계속 들어왔고 햄버거는 계속 제조되었다. 327번 고객님, 제품 찾아가세요! 결제 이쪽에서 도와드릴게요! 치킨 좀 튀겨주세요! 방금 들어간 치즈버거 케첩 빼주세요! 소금 뺀 감자튀김 하나 있어요!


잔뜩 일그러진 점장의 얼굴과 어쩔 줄 몰라하는 H형의 얼굴을 상상만 하며 서로 이런 대화를 소곤소곤 나누었을 뿐이다.

“야, 점장 또 왜 저러냐.”

“에휴. 저러는 거 하루 이틀이니.”

“오늘 유독 더 심한데?”

“오늘이 그날 인가 보지 뭐. 애꿎은 H 오빠만 불쌍해.”     

나는 점장님의 행동에 비난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일, 내 월급밖에 관심이 없었던 스물다섯 살에는 더 그랬다. 계란 사건을 두고 조롱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H형이 혼나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잘못을 했으니 혼나겠지 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이런 상상을 해본다. 똑같은 광경을 지금 목격한다면, 퇴사할 것을 각오하고 점장에게 큰소리로 따지는 거다. 만들던 햄버거를 집어던진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집에 있는 아이 둘에게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하. 이건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조용히 토스트기에 빵을 넣을 것이고 빵 위에 기계적으로 소스를 뿌릴 것이다. 몸이 먼저 반응하여 자연스럽게 토핑을 얹을 것이다. 점장의 태도에 대한 분노보다 밀려있는 손님들에게 더 눈길이 갈 것이다. 내 이성이, 내 감정이, 햄버거 레시피 외우는데 특화되어 있기보다는 불의 앞에 참지 못하는 분노를 지닌 것이면 좋겠다.


오늘따라 영화 ‘동주’에 나오는 정지용 시인의 대사가 위로가 된다. “윤 시인,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부끄러운 걸 모르는 놈들이 더 부끄러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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