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대가리 Jun 25. 2017

나는 언제 글을 쓰는가

TED에서 김영하 작가님의 강의를 본 적 있다. 누구나 그 안에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글은 쓰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술술 써내려 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우니 억지로 잘 쓰고자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내 기준에서 일리가 있었으니까.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다만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다. 내가 집중해서 글을 쓸 때는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이 떠오른 딱 그 순간이다. 짧은 시간에 휘리릭 작성해 놓은 글을 토대로 문장을 살짝씩만 다듬는다. 처음으로 글쓰기에 맛들린 것은 군인 시절이다. 군생활이 4개월 남은 상병 말이었다. 평소와 같이 당직 근무 때 책을 쌓아두고 읽고 있었다. 당시 군대에는 ‘진중문고’라고 해서 일 년에 두 번 30권 남짓의 베스트, 스테디셀러가 각 부대마다 비치되었다. 남아도는 시간을 어찌 쓸지 몰라 책 읽는 습관을 들였는데, 세어보니 17개월 동안 100권을 넘게 읽었다. 어쩐지 이 책들의 내용을 혼자 알고 있기 아까웠다. 좋은 것은 나눌수록 배가 되는 법! 당직근무를 서며 진중문고 추천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글파일로 직접 디자인까지 예쁘게 했고, 각 계급별로 추천도서들을 짜 봤다. 그 책을 해당 계급에게 추천하는 이유와 함께 간단한 책의 줄거리, 또 필요하다면 군생활을 버티는 노하우까지 적었다.


이때부터 글쓰기에 맛이 들렸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이 일을 밤새가며 마무리했다. 늘 자기 바빴던 당직 시간엔 골똘히 깨어서 어떤 글을 써볼까, 어떤 책을 추천해 줄까 고민했다. 그 고민들을 화면으로 옮겼다. 글을 쓰겠다고 훈련소 시절 썼던 소나기(소중한 나의 병영일기),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까지 뒤적거렸다. 애꿎은 동기들에게 내 글을 먼저 읽게 하고 (나름 특권이라며 설득했다) 피드백을 받았다. 신랄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조금 더 매끄러운 글을 쓸 수 있었다. 모두들 시간이 안 간다고 징징대는 마지막 100일인데 글을 쓰다 보니 훌쩍 지나갔다. 다 쓰고 나니 약 200페이지 분량이 나왔다. 제목은 ‘진중문고(진짜 중요한 문제와 고민들)’. 간부들 몰래 제본기로 5부 정도 제본을 했다. 1개는 동기에게 선물로 줬고 1개는 전역할 때 가지고 나왔으며 나머지 3개는 병영도서관에 남겨두었다. 훗날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위안을 얻기를 바랐다. 하고 싶은 말이었고 쓰고 싶은 글이었기에 작업도 술술 이루어졌다.      

이 글을 쓰려고 '진중문고'를 다시 들추어봤다. 3년전 글 실력이 형편없었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하고 싶은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는데 어디 말할 사람은 없을 때, 핸드폰이나 메모지에 생각을 쭉 옮겨 적고는 페이스북과 브런치 등 SNS에 올린다. 이런 글들을 보고 “너는 글을 잘 쓴다”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계시다. 사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없거나 관심 없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쓸 때는 논리도 감정도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데 말이다. 이번 학기 ‘독서와 토론’ 과목의 기말고사 과제가 그랬다. 한 학기 동안 과학 관련 책을 쭉 읽었고 이를 토대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 대한 독후 글을 쓰라했다. 어찌어찌 끼어 맞춰서 ‘과학의 발전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보고서를 썼다. 끝까지 미루고 미루다 마감 5시간 전에 겨우 키보드를 두드렸다. 하. 다시 읽어보면 한숨만 나온다. 딱히 관심 없는 소재를 엮어 글을 쓰려고 하니 여간 고통이 아니었다.



나름 ‘예술적 글쓰기’를 신봉하다 보니, 문제점이 생겼다. 도무지 글쓰기 실력이 늘지를 않는 것이다. 마치 내가 천부적 능력을 타고난 것 마냥 내가 쓴 글에 도취해버리고 끝난다. 이 정도면 됐지, 라며 퇴고를 안 하는 것은 기본이다. 써놓고 나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는 반면, 이야기를 주로 쓰다 보니 논리와 주장이 빠져서 맥없는 글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재주가 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하고 싶은 말을 생명력 있는 문장으로 잘 표현해 내고 싶은데 이런 글 욕심은 나로 하여금 글을 쓰기 싫게 만든다. 좋아요를 몇 개나 받을까, 조회수가 어디까지 올라갈까. 사람들의 반응만 의식하게 만든다. 그런 마음이 먼저 되는 순간, 내 글은 이미 죽어버린다.


지금 이 글도 오늘 아르바이트하며, 머리를 자르며, 버스를 타며 든 생각들을 모으고 모아서 30분 만에 작성했다. 수정은 귀찮다. 설득력 있는 멋진 글을 쓰려면 초안보다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알고는 있는데 귀찮다. 나는 그냥 내가 사랑하는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성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