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드디어 봤다. 캡틴, 오 마이 캡틴.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도 한참 여운이 남았다. 내 인생에서 두 장면이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나는 반장이었다.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담임을 싫어했다. 광명 촌동네에서 가장 작았던 우리 중학교로 오기 전에는 서울의 유명한 명문 중학교들에서 숱한 고등 입시를 치른 분이었다. 답답했을 거다. 공부할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 개기기는 또 최고로 잘하는 촌동네 아이들이. 그래서였을까, 우리 반 학생들을 그닥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학생들과 담임 사이의 불신이 절정에 달했던 어느 날 종례 시간이었다. 담임은 종이를 나누어 주더니 우리 반 학업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들의 이름을 다 적으라고 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는 담임에게 대놓고 말했다.
“이 종이에 제 친구들 이름을 써야 하는 이유가 뭐죠?”
“뭐? 너 뭐라 했어?”
“이런 식으로 학생들을 이간질시키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요.”
“이원희, 너가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우리 반은 오늘부터 반장 없다. 종례든 뭐든, 수업시간에 경례는 반장이 하지 말고 부반장이 한다. 알겠니?”
“싫은데요?” (우리 반 부반장은 의리파였다. 하하..)
“참나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종례는 끝났고 나는 교무실로 불려 갔다. 엄마를 데리고 오라 했다.
다음 날, 엄마와 함께 담임을 만났다.
“원희가 반장인데도 반 아이들을 잘 이끌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학습 분위기를 만들어 가네요. 입시도 얼마 안 남았는데 걱정이 돼요.”
“얘가 그런 애가 아닌데, 사춘기가 와서 그런가 봐요.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으아. 말하기 부끄러운 흑역사 맞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한참 두발 단속이 심한데 장발이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아침이면 학생부 선생님들이 두발을 검사하러 각 반에 와서 머리가 불량인 학생들의 이름을 적어갔다. 이걸 피하려고 배 아픈 척하며 화장실에 숨어있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텼으나 복도를 가던 중 소위 ‘미친개’ 선생님이 내 머리를 지적했고 나는 곧바로 반성문을 써야 했다.
억울했다. 어떻게 기른 머리인데... 꾀를 부렸다. 어차피 학생부 선생님들은 그 많은 반성문들을 다 읽지 않을 것이고, 처음과 끝만 대충 반성 투로 꾸며내고 중간에는 내 생각을 좀 넣어놓아도 괜찮겠지 싶었다. 일단 좋게 시작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학생으로서 품행을 단정하게 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머리를 기르고 싶어서 자르지 않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반성문의 중간은 이렇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들을 논리 없이 섞어놓았다.
“우리나라는 개화기에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다며 차라리 목을 자르라고 했을 정도로 머리카락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에게 강제로 머리를 자르게 하는 선생님들의 요구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에게도 인권이 있는데 왜 두발 자유를 허락하지 않으십니까. 오히려 두발이 자유화된다면 우리는 더 공부에 전념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반성문은 다시 반성으로 끝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를 자르겠다는 이야기는 죽어도 없다.
“저는 이제 곧 중3이 되어 입시에 전념해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머리를 기를 생각만 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속을 썩여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날, 학생부에 있던 국어 선생님이 방과 후에 나를 부르셨다. 올 것이 왔구나. 그런데 선생님은 차분한 투로 옆에 앉으라고 말하셨다. 내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원희 네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참 멋지다. 반성문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할 줄도 알고, 대단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니? 선생님이랑 한번 두발 자유화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물론 그 뒤로도 우리 학교는 두발 단속을 계속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권위가 아닌 리더십을 이야기하셨다. 이날 나는 선생님의 말을 따라 규정에 맞춰 아주 예쁘게 머리를 깎았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공감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감사했다.
벌써 10년이 지난 이야기들이다. 기억이 희미해져서 조금 왜곡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인생에서 키팅 같은 캡틴을 만나고 싶다. 각박한 세상에서 너의 목소리를, 너의 신념을 찾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시,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 세상의 흐름을 따라 입시공부에 매진하려는 학생들을 두고 “이건 전투다. 여기서 지면 네 마음과 영혼이 다친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시를 평가하는 기존의 교육을 ‘쓰레기’로 규정하고 학생들이 직접 시를 느끼고 시를 써보게 하는 사람. 모두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예술성을 깨워주는 사람, 그러나 예술가가 아닌 자유로운 사색가를 키워내는 사람.
아.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캡틴이고 싶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말고, 주체적인 인생을 살라고 말하는 캡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