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교환학생을 마칠 때 즈음, 하루 2달러로 생활했다. 미국 동부와 남미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계산해도 남은 돈으로 2달 여행은 무리였다.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추어 예매했던 뉴욕의 숙박을 취소했다. 그렇다고 뉴욕에 안 간다는 건 아니다. 노숙을 하려 했다. 당시 브루클린에서 가장 저렴한 호스텔이 1박에 45불이었고, 4박 5일 체류할 예정이었다. 20만 원 넘는 돈이 숙박으로 깨지는 것이다. 그 돈이면 남미에서 10일을 먹고 산다. 고민할 것 없이 뉴욕의 편한 잠자리 대신 남미에서 10일을 선택했다.
그렇다. 이 여행기는 다른 뉴욕 여행기와 조금 다르다. 돈이면 모든 것이 되는 뉴욕에서 최대한 돈을 아껴야했다. 돈이 없어도 그곳에 있는 것 자체로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그 특별한 스토리를 지금부터 나눠볼까 한다.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내려오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탔다. 옆자리에 어떤 할아버지가 앉았다. 나를 보더니 대뜸 '아리가또 고자이마스!'하신다. 일본인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무안해하셨다. 괜찮아요. 근데 제가 일본인처럼 보였나요? 물어보니 패션이 일본 아이돌 같단다. 자기는 한국인을 좋아한다며, '가. 지. 나. 물'을 정확하게 발음하셨다. 김치도 좋아하신단다. 유튜브를 봐가며 한국 음식을 만든 적도 있다고 한다.
변호사이면서 스키강사로 투잡을 뛰신다는 제이미 할아버지. 이분과 함께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 박근혜 대통령,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같은 무거운 얘기와 뉴욕 여행지 추천, 미국의 부자 동네 등 여러 분야로 대화를 나누었다.
전공이 뭐예요?
전기전자 공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근데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왜죠?
공학을 잘 하려면 실험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데 저는 그게 재미없고 잘 안돼요.
누구나 두려움은 안고 살아가요. 그게 대중 앞에서 자기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어요.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물에 대한 두려움, 스키를 처음 타는 사람에게는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죠. 하지만 그 두려움만 이기더라도 엄청난 발전이 있을 거랍니다. 시행착오를 겪는 게 두려워서 공부를 포기하지 마세요. 그 두려움을 이기고서도 공부가 재미없다면 그건 당신의 길이 아니에요. 과감하게 포기하세요.
뉴욕에 들어서자마자 곧 크리스마스의 여파 때문인지 교통체증이 심했다. 버스에서 내려 본 뉴욕의 첫인상은 '압도'였다. 인간의 힘으로 지어 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어 올린 것 같았다. 할 말을 잃었다. 길도 잃었다. 걷다 보니 1달러 피자집이 나왔고 두 조각을 사서 걸으며 먹었다. 슬프게도 바람이 불어 한 조각이 그만 날아가 버렸다. 아무리 가난한 대학생이라지만, 아무리 배가 고프지만, 땅에 떨어진 피자를 주워 먹지 않은것은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아깝다. 어쨌든 식비에서 큰 절약이 가능할 것 같았다.
뉴욕에 수많은 맛집들이 있지만 나의 관심은 오직 쉑쉑 버거. 그 한 번에 모든 돈을 투자하고, 나머지는 다 길거리 음식으로 때우게 되었다. 길거리 음식은 별로 안 비싸다. 5불 정도면 배부르게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다만 메뉴가 제한되어있다. 할랄푸드, 브리또, 피자, 등등.
처음 간 곳은 자유의 여신상을 볼 수 있는 페리였다. 이 페리는 어느 자선가의 기부 덕분에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뉴욕 시민들에게는 출퇴근 수단이라고 한다. 아! 날씨가 이례적으로 따뜻해서 12월 말인데도 가디건에 셔츠, 심지어 반바지만 입고 돌아다녔다. 점퍼를 입으면 매우 덥다.
페리에 올라타서 맨해튼의 야경과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봤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이렇게 대서양 바람을 맞으며 행복할 수 있구나. 굳이 여신상 투어를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늘 잠자리를 찾기 위해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걷다가 배가 고파서 또 다른 조각 피자 집에 갔다. 밤늦은 시간이라 모든 피자가 1불 떨이 중이었다. 와! 피자인지 고무인지 모르겠다. 배가 불렀으니 다행이다. 다운타운을 떠돌다가 24시간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소프트콘을 시키고, 구석자리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뉴욕에서의 첫날밤은 맥도날드의 캐럴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새벽 4시. 꽤나 잘 자고 있었는데 직원이 툭 치며 깨웠다. 영업이 끝났으니 나가 달란다. 그러면서 각종 혐오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 마이 갓. 24시간이 아니었구나! 빨리 나가주어야지. 다시 8th avenue를 방랑했다. 던킨 도넛, 스타벅스, 등 콘센트와 wifi를 동시에 가진 곳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 Port Authority 터미널로 갔다. 새벽 시간에는 입장할 때 티켓이 있는지 체크를 해서 그나마 안전한 곳이다. 바닥에 누워 조금 모자란 잠을 청했다. 바닥이 꽤 차가웠다. 시리다. 어쩌다가 노숙을 할 마음을 먹었을까. 조금 서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어차피 내가 선택한 일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체념했다.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덧. 뉴욕에는 한국분들이 많다. 여기 여행 온, 혹은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패션이 정말 멋지다. 한눈에 한국인임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한국인으로 안 알아본다. 한국인들도 영어로 말을 건다. 안경을 쓰고 있을 때는 일본인으로 보고, 벗고 있을 때는 중국인인 줄 알았다고들 한다.
멋진 롱코트와 5:5 가르마 혹은 단정한 투블럭. 나는 이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짧게 친 촌스러운 스포츠머리, 일주일은 우려먹은 셔츠와 가디건, 멕시코에서 구입한 자메이카 느낌 나는 작은 배낭, 미군 군장처럼 생긴 큰 배낭, 가을 날씨 같은 12월의 뉴욕에 딱 맞는 반바지, 후줄근한 아디다스 신발.
이게 나다!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이 차림이야말로 나를 표현해 주는 것 같아서 도시를 누비는 내내 정말 행복했다. 나는 가난한 대학생이고 거지 여행자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뉴욕을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