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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Jul 20. 2017

저는 관종입니다.

관심종자, 용어의 불편함에 대해

안녕하세요. 저는 관종입니다. 오늘은 이 말을 제 식으로 풀어볼까 해요.


저는 남들과 다르게 살고 있다고 느낄 때 행복합니다.

저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 행복합니다. 원래 책을 좋아하긴 합니다만, 모두들 핸드폰 속 영상이나 SNS에 집중하고 있을 때 홀로 책을 보고 있는 그 장면이 좋달까요. 아, 물론 저 말고도 책 읽는 분들이 계실 때는 더 즐겁습니다. 핸드폰은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책 읽을 짬을 내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저는 버스 타고 지하철 탈 때 책부터 꺼내 드는 제 모습이 썩 마음에 듭니다. 그렇다고 핸드폰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고 돌아가는 퇴근길에라도 친구들과 SNS로 수다 떨며 즐거움을 누리는 그 시간, 그 행복을 저도 아니까요.

(이미지출처 - 구글 검색)

제 스타일은 유행과 거리가 멉니다. 한때는 길거리 나가면 위축이 됐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 스타일이 너무 멋있어진 거 있죠.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말도 많이 들었죠. 2014년 여름에는 페이크 삭스가 유행이었어요. 저는 싸게 구입한 초록색 신발에 양말은 회색과 핑크색이 번갈아 나오는 체크무늬를 신었었죠. 이거를 신고 강남 영어학원에 가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 옷 살 돈이 넉넉지 않아서 같은 옷을 3년 넘게 우려먹는 저로서는 유행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히 유행보다는 내 몸에 잘 맞고 내 체격과 피부색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모두 입는 옷을 나도 입고 스스로 획일화된 젊은이들의 대열에 합류할 필요는 없잖아요? 또 그, 패션이라는 게 억지로 흉내 낸다고 멋있어지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아무리 유행하는 옷도 내가 입으면 촌스러워지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배낭여행도 그랬어요. 제 또래들은 으레 대학에 왔으면 유럽에 가야지! 하고 방학이면 하나둘씩 유럽에 다녀왔는데요. 물론 저도 유럽 가고 싶죠. 근데 딱히 끌리지 않았어요. ‘모두 가는 곳이니까’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선택한 곳이 라틴아메리카였죠. 한국 사람들에게 아직까지는 미지의 대륙이니까요. 갔다 오면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으니까요. 평소 저를 잘 몰랐던 사람들도 위험하진 않았니? 언어는 어땠니? 비용은 얼마나 들었니? 하며 대화의 소재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의대생 체 게바라의 인생을 혁명가로 이끌었던 계기가 남미 여행이었다죠. 저 역시 남들과의 차별점을 둘 수 있는 가장 큰 터닝 포인트가 남미 여행이었어요.

볼리비아 어느 마을에서, 개와 함께 낮잠 자는 사진이에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진 중 하나랍니다.


저는 공대생이에요. 일반적으로 공대생 하면 순수하고, 기계 잘 다루고, 컴퓨터 잘 다루고, 이런 이미지잖아요? 저는 안 순수해요. 기계치구요. 만지는 기계마다 다 고장이 나요. 또, 글쓰기를 좋아하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공대생입니다. 학교에서 공대생들에게 이런 걸 안 가르쳐 주니까 화가 나긴 합니다만,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겪어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하죠 뭐. 예전에 공대생끼리 조모임을 한 적이 있어요. 저는 발표 주제가 너무 딱딱해지는 게 싫어서 제가 좋아하는 시라던가, 영화, 책 따위를 발표 내용에 많이 넣으려고 했죠. 팀원들이 대놓고 싫어하더군요. 공대생의 가방에서 웬 시집이 나오냐며,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나중엔 아예 제 의견을 듣지도 않던데요. 포기했습니다.


아, 저는 수업시간에 질문하는 걸 좋아해요. 관심받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요. 제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또 하나, 저는 일방적인 걸 못 참아요. 수업을 그냥 들으면 바로 잠이 와요. 관심 없는 주제가 나오면 뇌가 신기할 정도로 바로 반응을 해요. 졸리다고. 그래서 교수님의 말 하나하나를 내 생각과 비교하며 곱씹어 보는 거예요. 잠을 쫓으려고.(공대 전공수업은 이해하느라 바빠서 질문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는 것은 비밀이랍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중소기업, 스타트업의 CEO들이 와서 2시간 동안 강연을 하는 수업이었는데요. 어느 날은 우리 과 30년 선배가 와서 자신이 만든 기업이 어떻게 성공했으며, 지금 어느 위치이며, 어느 나라에 수출을 하며, 연 매출이 어느 정도며, IMF를 어떻게 극복했으며, 어떤 도전 정신과 어떤 열정으로 회사를 여기까지 성장시켰는지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어요. 매주 이런 사람들이 오긴 했는데, 원래는 그냥 잤거든요. 들을 가치가 없어서. 근데 이날따라 유독 더 심한 거예요. 강연이 끝나자마자 번쩍 손을 들어서 질문을 했지요.


“같은 과 선배님의 강연을 듣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런데 강연을 들으며 몇 가지 이해 안 되는 점들이 있어서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저는 대표님의 말씀을 부의 분배라는 관점에서 다시 보았는데요. 7-80년대 세대는 가난에서 벗어나 나라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는 일이 시대의 사명이고 분위기였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계층 이동이 자유로웠다고 들었고요. 그런데 지금 젊은 세대가 보고 자란 세상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경제 성장의 윤리적, 경제적 문제점들이 터져 나온 곳이에요. (때마침 국정농단 사건이 절정에 이를 때였네요.) 반면에 기성세대들은 쌓은 부를 재분배하지 않고 기득권을 유지하려고만 하죠.

대표님께서 요즘 대학생들이 도전의식이 없고 열정이 없어서 공무원 준비를 그렇게 많이 한다고 말씀하셨나요? 그런데 왜 젊은 세대들에게 고스펙이 필요하게 되었는지, 왜 공무원 경쟁률이 점점 높아지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셨는지요. 그걸 마냥 젊은 세대의 탓으로 돌리는 게 과연 맞는 걸까요. 견고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분배의 책임을 회피하려 나온 담론이 “요즘 젊은이들은 도전 정신이 없어” 아닌가요. 저는 이런 분들에게 지금 대학생들처럼 한번 살아 보라 하고 싶어요. 주변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밟아서 스펙을 쌓아야만 내가 살아남는 이런 세상 속에서, 과연 무언가에 도전할 생각이 쉽게 들까요?

저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젊은 사람 이어서요. 쉽게 말할 수 있는 거겠죠. 저같이 철없는 젊은 사람들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까 별 논리도 없이 그냥 감정적으로 질문했었네요. 덕분에 돌아온 답변은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마세요’ 였으니까요. 아무렴 어때요. 궁금한 걸 참지 않고 물어봤으니 됐죠.


본론으로 돌아올게요. 저 관종 맞습니다. 그런데 관종이라는 단어가 조금 불편합니다. 그냥 남들과 다른, 조금 특별한 삶을 살고 싶을 뿐입니다. 평범함에 저항하고 싶을 뿐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꿈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 두고 관심종자라구요. 그래요. 제 모든 행동들에 ‘관심을 좀 가져주세요’라는 생각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에요. 그렇다고 마냥 마이웨이는 아니에요. 이렇게 살아보니 좀 즐겁고 좋던데, 같이 한 번 해보는 게 어때요?라고 조심스러운 제안을 하는 거랍니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말고 책을 한 번 펴보는 게 어때요. 수업 시간에 주입식 교육을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질문을 해보는 건 어때요.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담론을 그냥 수용하지 말고 한 번쯤 의심을 품고 도전해 보는 건 어때요. 모두 가는 여행지 말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 보면 어때요. 이런 제안을 소심한 방식으로 하는 게 제 삶이에요. 그러니, 관심을 주려거든 좀 많이 주세요.


관심이 없으시거든 응원은 못할망정 비난하지 마세요. 관심 줄 생각이 없으시거든 그냥 아 쟤는 그렇구나, 하고 지나치시면 됩니다. 평범하기로 선택한 당신이든, 평범함을 벗어나고자 선택한 나든, 누가 옳고 그른 문제도 아니구요. 누구를 비난할 권리 따위 아무에게도 없으니까요.


이 지루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도 평범한 분 같지는 않네요. 하하. 끝으로 제가 참 좋아하는 고흐의 편지에 나오는 구절 하나를 옮기고 마무리할까 합니다.

너는 아직도 네가 평범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했지. 그러면서 너는 왜 네 영혼 속에 있는 최상의 가치를 죽여 없애려는 거냐? 그렇게 한다면, 네가 겁내는 일이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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