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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Jul 16. 2017

밤 10시 이후의 아르바이트

밤 10시가 넘어가면 시급이 1.5배가 된다. 손님은 줄어든다. 햄버거를 먹는 손님은 줄어들지만 배달을 많이 시키고, 아이스크림이나 음료를 구입하는 분들은 여전히 많기 때문에 바쁜 거는 비슷하다. 계속 햄버거만 만들면 지루한데 때 마침 매니저님이 1층 청소를 지시할 때가 있다. 1층 청소를 하려면 우선 손님들을 지하로 안내해야 한다. 1층에 있는 의자를 테이블로 모두 올려서 바닥 정리 준비를 한다. 이 과정이 좀 짜증 난다. 아무리 지하를 안내해 드려도 굳이 테이블 위에 올린 의자를 내려서 앉는 분들이 계신다. 의자를 올리고 나서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와보면 누군가 또 거기 앉아있다. 끝까지 안 가시는 분은 주로 밤 11시쯤 찾아오시는 노숙자 할머니다. 할머니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그러면서도 직원의 말은 정확하게 알아듣고, 주문은 정확하게 하신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릴게요.”

“커피 하나, 천 원짜리. 주저리주저리~ 태백산이 주저리주저리 ~”

“차가운 거 맞으세요?”

“뜨거운 거로 줘. 여기 대한민국에서 주저리주저리~ 대통령이 주저리주저리 ~”

따로 가격을 말씀 안 드려도 천 원을 먼저 내민다.


내가 1층 청소할 때 할머니가 계시면 나는 그냥 그분 계신 자리를 빼고 청소한다. 한 번은 바닥을 쓸면서 할머니가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주의 깊게 들어 봤는데, 도무지 들을 수 없었다. 주문을 할 땐 정확한 발음이 혼잣말을 하실 땐 다 새어버린다. 분명 손동작과 고갯짓을 사용하시는데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루는 매니저님이 오시더니 주무시는 할머니를 깨웠다. 역시나, 할머니가 늘 앉으시던 구석 자리 테이블 위에는 뜨거운 커피가 담긴 일회용 컵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 여기서 주무시지 말라고 했잖아요. 얼른 나가세요! 얼른요. 청소해야 돼요.”

그 등쌀에 못 이겨 할머니는 밖으로 나갔다. 사실 노숙자인지 집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주기적으로 밤이 되면 우리 매장으로 오시기에 집이 없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 본 글과 상관 없는 이미지입니다.

1층 청소를 하는 시간이 매장 밖에서 버스킹을 많이 하는 타임이다. 바닥을 쓸고 닦는 일은 꽤나 지루하고 많은 힘이 들지만 창 너머에 노래하는 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버스커버스커의 정류장을 듣고는 싱글벙글한 미소로 걸레를 빨러 다시 직원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한 마디씩 장난을 던졌다.

“원희 또 꿀 빠네?”
“하하. 오늘은 더 달콤하네요. 버스킹을 들어서 그런가.”
“어쭈. 우린 여기서 열 일하는데 버스킹까지 들어?”
“열일은 무슨요. 주문 5분째 안 들어와서 할 거 없는 거 다 보이는구먼.”
“ㅋㅋㅋ”


청소해야 하는데 자리에 오래 앉아계신 손님이 있으면 사실 일 하는 척하며 손님이 빠지기까지 적당히 시간을 때워도 된다. 근데 그건 좀 심심하다. 그래서 평소 바빠서 안 알려주던 아이스크림 기계 다루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아이스크림을 뽑는 기계는 컨트롤이 어렵다. 정확하고 예쁜 모양으로 나와야만 손님께 낼 수 있다. 콘을 잡고, 기계의 바를 살짝 누르면 소프트콘이 죽 죽 나온다. 초보자들은 힘을 너무 세게 주면 속도 제어가 안 돼서 모양이 바로 망가진다.


이날 나는 소프트콘을 15개째 버리고 나서야 제대로 된 모양의 콘을 하나 만들어냈다. 이 하나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던가! 3개쯤 만들었을 때, 잘못을 찾았다. 아. 내 손의 스냅 반경이 너무 컸다. 살짝씩만 돌리되, 콘 모양에 맞추어 돌리면 되는 것을. 10개쯤 버렸을 때, 큰 잘못을 찾았다. 콘이 뽑아져 나오는 방향과 동일하게 시계 방향으로 손을 돌려야 하는데 지금까지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 멍청한 것.

오기가 생겼다. 콘을 뽑고 있는 직원 동생에게 말했다.

“야, 콘 뜨면 무조건 나부터 불러. 알았지?”
“예 형님.”

청소를 하다가도 “형, 콘 들어올 거 같아요 ~”

하면 잽싸게 들어와서 콘을 뽑았다. 누가 봐도 실패작인 콘을 버리기 아까워서 직원들에게 징징댔다. “이 정도면 손님한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나 또 버려야 되니..?”

“오빠.. 미련을 버리세요.”

잘 만들었어도, 쵸코콘을 만드는 건 어렵다. 쵸코콘이 들어오면 소프트콘을 뽑고 바닥을 한번 탁 탁 쳐준 뒤 디핑소스에 1초간 담가야 한다. 이때 바닥을 쳐 주지 않으면 소프트콘이 그대로 디핑소스에 풍덩 해 버린다.


드디어 교과서 모양대로 콘을 뽑았을 때 그 희열을 잊지 못한다. 모두에게 이것 좀 보라고, 자랑했다. 자랑하다가 그만 콘 부분을 세게 눌렀는지, “빠직”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또 다들 한바탕 빵 터졌다. (그 부분이 부서진 건 종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도.) 쵸코 디핑까지 완벽하게 찍어 내고는 너무 기분이 좋아 “성공!!!”을 외치며 손님께 내어드렸다. 손님도 기분이 좋았는지 “성공 축하드려요~”하며 맛있게 콘을 드셨다.

10시가 넘어가면 생기는 빅재미 중 하나는 가위바위보다. 카운터, 감자튀김, 음료수, 디저트, 햄버거 서빙은 보통 3명 정도가 하는데, 10시 이후에는 좀 한가해진다. 셋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5분 동안 이 모든 걸 혼자 하는 것이다. 아무리 한가해도 갑자기 바빠지는 타임이 오는데, 이때 진 사람은 매장을 막 뛰어다니며 일을 해야 한다. 주문도 받고, 감자도 튀기고, 음료수도 뽑고, 아이스크림도 뽑고, 혼자 다 해야 한다. 그럼 나머지 이긴 두 명은 깔깔대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거다. 호호. 한 손을 엄지 척하며 하늘 방향으로 쭉 뻗고 큰 목소리로 “감자!”를 외치면 감자라도 좀 도와달라는 신호다. 이 신호가 올 때까지는 이긴 사람들이 절대 도와주면 안 된다. 카운터에 손님이 기다리고 계셔도, “OO야 ~ 손님 왔다 얼른 주문받아!”라고 지시할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는 다 이겨서.. 이게 얼마나 힘들지는 잘 모르겠다. 하. 이게 뭐라고. 참. 이런 소소한 재미가 없었다면 아마 이 일을 2년 넘게 하지는 않았을 거다.


10시가 넘어가면 6470*1.5 = 9,705원이다. 내년 법정 최저임금이 확정되었단다. 1,060원이 오른 7,530원. 내년까지 아르바이트를 할지 모르겠다만, 내년에 야간 근무를 하면 무려 11,295원을 받겠구나. 꽤 쏠쏠하겠다. 아. 말 안 했나? 시급으로 모든 소비품들을 따지게 되는 건 알바 경력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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