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넘어가면 시급이 1.5배가 된다. 손님은 줄어든다. 햄버거를 먹는 손님은 줄어들지만 배달을 많이 시키고, 아이스크림이나 음료를 구입하는 분들은 여전히 많기 때문에 바쁜 거는 비슷하다. 계속 햄버거만 만들면 지루한데 때 마침 매니저님이 1층 청소를 지시할 때가 있다. 1층 청소를 하려면 우선 손님들을 지하로 안내해야 한다. 1층에 있는 의자를 테이블로 모두 올려서 바닥 정리 준비를 한다. 이 과정이 좀 짜증 난다. 아무리 지하를 안내해 드려도 굳이 테이블 위에 올린 의자를 내려서 앉는 분들이 계신다. 의자를 올리고 나서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와보면 누군가 또 거기 앉아있다. 끝까지 안 가시는 분은 주로 밤 11시쯤 찾아오시는 노숙자 할머니다. 할머니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그러면서도 직원의 말은 정확하게 알아듣고, 주문은 정확하게 하신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릴게요.”
“커피 하나, 천 원짜리. 주저리주저리~ 태백산이 주저리주저리 ~”
“차가운 거 맞으세요?”
“뜨거운 거로 줘. 여기 대한민국에서 주저리주저리~ 대통령이 주저리주저리 ~”
따로 가격을 말씀 안 드려도 천 원을 먼저 내민다.
내가 1층 청소할 때 할머니가 계시면 나는 그냥 그분 계신 자리를 빼고 청소한다. 한 번은 바닥을 쓸면서 할머니가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주의 깊게 들어 봤는데, 도무지 들을 수 없었다. 주문을 할 땐 정확한 발음이 혼잣말을 하실 땐 다 새어버린다. 분명 손동작과 고갯짓을 사용하시는데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루는 매니저님이 오시더니 주무시는 할머니를 깨웠다. 역시나, 할머니가 늘 앉으시던 구석 자리 테이블 위에는 뜨거운 커피가 담긴 일회용 컵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 여기서 주무시지 말라고 했잖아요. 얼른 나가세요! 얼른요. 청소해야 돼요.”
그 등쌀에 못 이겨 할머니는 밖으로 나갔다. 사실 노숙자인지 집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주기적으로 밤이 되면 우리 매장으로 오시기에 집이 없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1층 청소를 하는 시간이 매장 밖에서 버스킹을 많이 하는 타임이다. 바닥을 쓸고 닦는 일은 꽤나 지루하고 많은 힘이 들지만 창 너머에 노래하는 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버스커버스커의 정류장을 듣고는 싱글벙글한 미소로 걸레를 빨러 다시 직원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한 마디씩 장난을 던졌다.
“원희 또 꿀 빠네?”
“하하. 오늘은 더 달콤하네요. 버스킹을 들어서 그런가.”
“어쭈. 우린 여기서 열 일하는데 버스킹까지 들어?”
“열일은 무슨요. 주문 5분째 안 들어와서 할 거 없는 거 다 보이는구먼.”
“ㅋㅋㅋ”
청소해야 하는데 자리에 오래 앉아계신 손님이 있으면 사실 일 하는 척하며 손님이 빠지기까지 적당히 시간을 때워도 된다. 근데 그건 좀 심심하다. 그래서 평소 바빠서 안 알려주던 아이스크림 기계 다루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아이스크림을 뽑는 기계는 컨트롤이 어렵다. 정확하고 예쁜 모양으로 나와야만 손님께 낼 수 있다. 콘을 잡고, 기계의 바를 살짝 누르면 소프트콘이 죽 죽 나온다. 초보자들은 힘을 너무 세게 주면 속도 제어가 안 돼서 모양이 바로 망가진다.
이날 나는 소프트콘을 15개째 버리고 나서야 제대로 된 모양의 콘을 하나 만들어냈다. 이 하나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던가! 3개쯤 만들었을 때, 잘못을 찾았다. 아. 내 손의 스냅 반경이 너무 컸다. 살짝씩만 돌리되, 콘 모양에 맞추어 돌리면 되는 것을. 10개쯤 버렸을 때, 큰 잘못을 찾았다. 콘이 뽑아져 나오는 방향과 동일하게 시계 방향으로 손을 돌려야 하는데 지금까지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 멍청한 것.
오기가 생겼다. 콘을 뽑고 있는 직원 동생에게 말했다.
“야, 콘 뜨면 무조건 나부터 불러. 알았지?”
“예 형님.”
청소를 하다가도 “형, 콘 들어올 거 같아요 ~”
하면 잽싸게 들어와서 콘을 뽑았다. 누가 봐도 실패작인 콘을 버리기 아까워서 직원들에게 징징댔다. “이 정도면 손님한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나 또 버려야 되니..?”
“오빠.. 미련을 버리세요.”
잘 만들었어도, 쵸코콘을 만드는 건 어렵다. 쵸코콘이 들어오면 소프트콘을 뽑고 바닥을 한번 탁 탁 쳐준 뒤 디핑소스에 1초간 담가야 한다. 이때 바닥을 쳐 주지 않으면 소프트콘이 그대로 디핑소스에 풍덩 해 버린다.
드디어 교과서 모양대로 콘을 뽑았을 때 그 희열을 잊지 못한다. 모두에게 이것 좀 보라고, 자랑했다. 자랑하다가 그만 콘 부분을 세게 눌렀는지, “빠직”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또 다들 한바탕 빵 터졌다. (그 부분이 부서진 건 종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도.) 쵸코 디핑까지 완벽하게 찍어 내고는 너무 기분이 좋아 “성공!!!”을 외치며 손님께 내어드렸다. 손님도 기분이 좋았는지 “성공 축하드려요~”하며 맛있게 콘을 드셨다.
10시가 넘어가면 생기는 빅재미 중 하나는 가위바위보다. 카운터, 감자튀김, 음료수, 디저트, 햄버거 서빙은 보통 3명 정도가 하는데, 10시 이후에는 좀 한가해진다. 셋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5분 동안 이 모든 걸 혼자 하는 것이다. 아무리 한가해도 갑자기 바빠지는 타임이 오는데, 이때 진 사람은 매장을 막 뛰어다니며 일을 해야 한다. 주문도 받고, 감자도 튀기고, 음료수도 뽑고, 아이스크림도 뽑고, 혼자 다 해야 한다. 그럼 나머지 이긴 두 명은 깔깔대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거다. 호호. 한 손을 엄지 척하며 하늘 방향으로 쭉 뻗고 큰 목소리로 “감자!”를 외치면 감자라도 좀 도와달라는 신호다. 이 신호가 올 때까지는 이긴 사람들이 절대 도와주면 안 된다. 카운터에 손님이 기다리고 계셔도, “OO야 ~ 손님 왔다 얼른 주문받아!”라고 지시할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는 다 이겨서.. 이게 얼마나 힘들지는 잘 모르겠다. 하. 이게 뭐라고. 참. 이런 소소한 재미가 없었다면 아마 이 일을 2년 넘게 하지는 않았을 거다.
10시가 넘어가면 6470*1.5 = 9,705원이다. 내년 법정 최저임금이 확정되었단다. 1,060원이 오른 7,530원. 내년까지 아르바이트를 할지 모르겠다만, 내년에 야간 근무를 하면 무려 11,295원을 받겠구나. 꽤 쏠쏠하겠다. 아. 말 안 했나? 시급으로 모든 소비품들을 따지게 되는 건 알바 경력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