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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Aug 14. 2017

INSERT COIN

나는 선천성 게임 장애가 있다. 안 해본 사람이 없을 스타크래프트도 테란밖에 다룰 줄 모른다. 그마저도 바이오닉이니 메카닉이니 구분하지 않고 끌리는 대로 막 플레이한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다 하던 던파(던전 앤 파이터)도 못했다. 한번 해 봤는데 이런 류의 싸움 게임이 너무 어려웠다. 서든어택은 1시간 이상 하니 속이 메스껍기까지 했다. 겟앰프드라는 파이터 게임이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가장 낮은 레벨인 ‘계란’을 못 벗어나서 접은 기억이 난다.

이런 나도 한때는 즐겨했던 게임들이 있었으니. 바로 온라인 게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이전에 길거리를 주름잡던 오락기 게임들이다. 주로 구멍가게 앞에 즐비해 있었다. 더 어렸을 때는 어느 단계까지 깨면 동그란 모양의 갈색, 노란색 불량과자가 나왔던 기억이 있다. 나는 주로 범버맨, 메탈슬러그, 텐가이, 스노우맨 따위를 했다.


범버맨은 내 전공이었다. 정말, 100원만 가지고 가서 1탄부터 4탄까지 모든 맵을 다 깨고 명단의 맨 꼭대기에 내 이름을 새겨야 직성이 풀렸다. 범버맨은 구슬 동자처럼 생긴 캐릭터들이 폭탄을 주고받으며 터뜨려 죽이는 게임이었다. 상자를 터뜨릴 때마다 아이템이 나왔고 신발을 먹으면 빨라지고, 새를 먹으면 일명 짭새에 올라타서 속도가 엄청 빨라지고, 해골을 먹으면 조이스틱이 반대로 먹히고, 폭탄을 먹으면 설치할 수 있는 폭탄 개수가 늘어나는 그런 게임이었다. 조이스틱을 움직이며 공격 버튼을 탁, 탁, 탁, 눌러서 폭탄을 설치한다. 그 폭탄에 상대편 캐릭터가 죽는다.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원조라고 보면 된다. 내 주캐는 닌자였다. 조이스틱을 위로 함과 동시에 (아래였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필살기 버튼을 누르면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 폭탄이 눈 앞에 있어 사면초가요, 3초 후 죽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순간이동을 하면 살아남는 거다. 가끔 운 안 좋게 순간이동해서 도착한 곳에 1초 뒤 폭탄이 터져 죽을 때도 있었다.

“이 구역의 폭탄맨은 나야!”라는 생각으로 컴퓨터와 잘 싸우고 있자니 내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한참 이기고 있는데, 4학년 형이 오더니 100원을 쏙 하고 넣는다. 전문 용어로 ‘잇기’다. 2p자리에 앉더니 대결을 신청했다. 100원을 또 넣는 순간 진행 중이던 게임은 잠시 정지되며 1p vs 2p 대결 모드로 바뀐다. 와. 이 형도 주케가 닌자다. 닌자대 닌자! 계속되는 순간이동, 혼란의 연속이다. 손에 땀을 쥐는 대결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형은 한껏 욕을 하며 떠났고 주변 아이들은 다시 내 플레이에 집중했다. 훗. 이날도 결국 오락기 맨 위에 내 이니셜을 박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뭐, 매번 이렇게 쉽게 클리어했던 건 아니다. 한 300원쯤 들고 와야 겨우 3번 만에 성공하기도 한다. 게임을 하다 죽으면 ‘GAME OVER’ 문구와 함께 카운트가 나타난다. 10 9 8 7.. 10초 안에 동전을 안 넣으면 화면은 다시 게임 샘플 영상으로 전환된다. 그 가운데에는 게임하고 싶으면 동전을 넣으라며 ‘INSERT COIN’이라는 문구가 깜빡인다. 가지고 온 돈을 다 썼을 땐 그 인서트 코인만큼 야속한 영어가 없다.

10살 어린이에게는 가혹했던 자본주의의 현실, insert coin. 심지어 명령형.


두 번째로 자주 했던 게임은 텐가이(TENGAI)다. 공중을 날아다니며 적들이 쏘는 포탄을 피하고 공격해서 적을 섬멸하는 게임이다. 그땐 영어를 읽을 줄 몰랐으니 게임 이름도 몰랐다. 캐릭터를 고를 때?(랜덤)에 갖다 대고 조이스틱을 위로 3번, 아래로 3번, 다시 위로 7번 하면 숨겨진 ‘왕’ 캐릭이 나온다. 가장 강력하다. 이 캐릭터는 필살기를 쓸 때 ‘사무라이 포!’라고 외치며 분신술처럼 몸이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데, 이 장면이 꽤나 멋있다. 그래서 이 게임을 텐가이 대신 ‘사무라이 포’라고 많이들 불렀다. 사실 캐릭터 선택하는 시간이 10초밖에 주어지지 않는데, 그 안에 3-3-7을 시도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잘못해서 박자를 놓쳐 3-3-7이 아닌 3-4-6 혹은 3-2-8이 돼버리거나 조이스틱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버리게 될 때가 있다. 그럼 3-3-7을 다시 시도 하기도 전에 10초가 끝나버린다.

사무라이포 너 이자식, 나름 이름도 있었구나!

마찬가지로 각 스테이지마다 왕이 있다. 배경은 일본 전국시대 거나 막부시대쯤 돼 보이는데 요상한 괴물도 많이 나온다. 5탄의 왕은 거대한 철갑 손이었다. 4탄의 왕은 총알을 미친 듯이 쏟아낸다. 마치 곰플레이에서 F1을 누르면 플레이할 수 있는 ‘닷지’ 느낌으로. 이 왕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왕’ 캐릭터로 3번을 꼬라박고, 사무라이 포를 날리는 거였다. 역시나. 이 게임을 플레이할 때 주변에 동네 아이들이 있으면 4탄에서는 모두 숨 죽이고 이 장면을 지켜봤다. 너나 할 것 없이, 왕이 등장하면 “세 번 꼬라박고, 아! 아! 아! 사무라이~~ 포!!”를 생중계했다.

P를 먹으면 파워가, B를 먹으면 필살기가 하나 늘어났다.


요즘에야 오락실 하면 코인 노래방과 인형 뽑기가 메인이지만 그 시절엔 참 다양한 게임을 저렴한 가격에 즐겼다. 나는 주로 ‘빠샤 빠샤’를 했다. 빨간, 파란, 초록색 동그란 버튼이 있어서 이 버튼을 규칙에 맞게 마구마구 누르는 게임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미니게임천국’이다. 500원을 넣으면 시작하는데 게임을 고른다. 가장 쉽고 잘했던 건 ‘샤프심 뽑기 한! 판! 승부’였다. 아직도 그 나레이션의 톤은 잊을 수 없다.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 빨파초 부저를 구분 없이 마구, 최고의 속도로 눌러댄다. 그러면 그 속도에 맞게 샤프에서 샤프심이 빠져나온다. 샤프심을 최대한 많이 뽑아내야 이기는 게임이었다. 그 외에도 햄버거 만들기, 도둑 찾기, 옷입히기, UFO등등 많은 소게 임들이 있었는데 빨 파초 버튼 3개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이 화면이 기억나는 당신은 아재..



아. 글을 쓰다 보니 그 시절이 갑자기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다. 나도 게임을 곧잘 하던 시절이 있었구나. 요즘은 소하동 길거리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저런 게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들이 동네를 많이 떠난 탓도 있고, 출산율이 줄어든 탓도 있고, 굳이 스트릿 게임이 아니어도 훨씬 재밌는 게임을 집에서 핸드폰으로 만나볼 수 있으니 세상이 참 편해진 탓도 있겠다. 그래도 한켠에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대양수퍼는 그대로 남아있는데 게임기만 쏙 사라진 그 자리가 어쩐지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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