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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Mar 24. 2017

#6 Adios, Mexico.

멕시코 - 툴룸, 칸쿤 (Tulum, Cancun)

툴룸에 도착한 어느 바보 여행자


2015년 12월 18일

팔렌케에서 버스가 예정보다 2시간 연착됐다. 기다리는 시간 내내 빨리 버스에 누워(앉아?) 자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제는 버스가 내 집 같다. 역시 꿀잠을 잤다. 아침이 밝아왔고 버스는 여전히 달리는 중. 잠시 눈을 떴는데 뒷자리에 앉은 유쾌한 할아버지가 먼저 말을 건네 왔다.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데 굉장히 젊게 사신다. 얼마 전에는 어느 83세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으며 여행하는 모습을 보셨는데 자기의 83세도 그러하리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여행을 사랑하는 이 할아버지,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를 반복한다고 하셨다. 실례일 수도 있지만 여쭈어봤다.

"아직도 무언가를 배우세요?"

"Yes, I do! I'm learning now, Koreans are nice!" (그럼. 지금 자네랑 대화하면서도 한국인들이 참 멋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있는걸!)

그렇게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서는 다시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버스가 이미 툴룸에 도착했다. 내릴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기사 아저씨께 "Un momento!"(잠시만요!)를 외치고 부랴부랴 내리니 입구에 그 할아버지가 계셨다.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그러고 보니 자네 이름도 못 물어봤네. 이름이 뭔가?"

"제 이름은 원.... 으악! 내 가방!!"

내 소개를 하려던 찰나, 아직 짐칸에서 가방을 채 빼기도 전에 버스가 출발해버렸다. 창문을 두드려 기사님을 부르며 "Mochila, Mochila!" (가방 두고 내렸어요!)를 외쳤다. 가방을 겨우 꺼내고 돌아보니 할아버지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이름도 못 여쭈어봤다.


유카탄 반도에 들어섰다. 확실히 남부지방이라 그런지 햇빛이 세다. 거기다 비까지 오기 시작한다. 나는 이 지역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냥 어느 파워블로거분이 바다 끝에 마야 유적지가 있다고 한 말을 보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여행 계획이 넣은 도시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지! 길가의 어느 렌트 샵 아저씨에게 지도를 받았다. 지도상으로 보니 툴룸 유적지까지 걸어서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비가 꽤 쏟아진다. 달리 방법을 모르겠어서 중남미 여행 최초로 택시를 탔다. 100페소 (7000원)를 부른다. 도둑놈들! 일단 70페소까지는 깎았지만 그래도 손해 보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택시는 이제 남미에서 다시는 이용 안하리라 다짐해 본다. 유적지까지는 택시로 15분 정도 갔다. 걸어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센트로를 벗어나자마자 날씨가 확 개더니 말 그대로 'Hace Sol' (It's sunny)이 되었다.


카리브해 그늘 아래서


툴룸은 카리브 해의 낭만적인 분위기와 유적지 고유의 인생무상(?)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나 같은 여행자들에게는 신선놀음하기 딱 좋은 포인트다. 유적지에 도착은 했는데 배낭은 2개. 얘네들을 메고 1분만 걸어도 온몸에 땀범벅이 된다.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1. 큰 배낭은 풀 숲 안에 숨겨둔다. 별로 중요한 것도 없는데 누가 가져가겠어? 2. 상의는 탈의하고 돌아다닌다. 저질 몸매이긴 하지만 아무도 신경 안 쓸 거다. 여기는 멕시코다. 선탠도 하고 좋지 뭐. 실제로 많은 서양 여행자들은 이 살을 에는 더위에 웃통을 벗고 돌아다닌다. 동양인이라고 안될 게 뭐람?

그렇게 뻘뻘거리며 마야인들의 최후 보루인 툴룸을 감상했다. 다시 한번 마야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왜 이렇게 척박한 곳에만 문명을 개척했나요?"

툴룸은 규모로 치면 이전에 봤던 빨렌께, 떼오띠우아깐과 비교할 건 못 된다. 그치만 카리브해 위에 있던 마야의 마지막 요새라는 광경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 있는 여행지였다. 나무 그늘 아래 잠시 쉬며 캐러비안 해변을 바라봤다. 아름다운 이곳에 몸을 담그지 않는 것은 여행자의 수치, 카리브해에 대한 모독! 사실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물에 빠질지 말지 또 30분은 고민했다. 결국은 풍덩! 그래. 날도 더우니까 옷이야 말리면 되지.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진짜' 캐러비안이잖아? 물에 빠지길 잘했다. 바다에서 올려다보는 툴룸 풍경도 너무 좋았고 물이 차갑지 않아서 또 좋았다. 여행 초반이라 그런지 '결정장애'가 유독 많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문제 해결 상황에서 우유부단하게 대처했다는 뜻이겠지. 배낭여행을 통해 예상지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터득해 간다.



Mexico, makes your dreams come true.


툴룸에서 칸쿤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콜렉티보를 2번 탔다. 툴룸 유적지 - 플라야 델 카르멘 - 칸쿤까지 2시간 좀 더 걸린 것 같은데 버스보다 저렴하고 빠르다. 칸쿤 센트로에 있는 Hostal San Patrico라는 호스텔에 체크인을 했다. 와우! 20인 1실은 또 처음 써본다. 군대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룻밤에 160페소로 10000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다. 화장실은 남녀 각각 1개씩 밖에 없다. 불편함을 싫어하면 비추천이지만 집시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여행을 너무 즐겁게 만들어 줄 호스텔이다.

이곳 사람들이 다 너무 좋았다. 한국인처럼 생긴 멕시코인 오수,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흥을 돋운 피델, 한국어 욕을 찰지게 잘 하는 홍콩인 크리스. 내 자리는 2층 침대의 2층이었는데, 마주 보고 있는 침대의 2층에 있던 미국 여자애 크리스틴이 기억난다. 내가 영어로 스페인어를 배웠다고 자랑했더니 "Awesome!"을 연발하며 "너랑 이웃이 돼서 진짜 좋다"라고 말했다. 하하. 이웃은 이웃이지.


저녁을 먹기 위해 바로 앞에 노점상들이 모여있는 라스 팔라파스 광장으로 갔다. 가장 줄이 긴 첫 번째 집에서 17페소짜리 께세디야와 15페소 엠빠나다를 시켰다. 우와. 겨우 32페소 (2100원)인데 두 끼를 굶은 내가 다 못 먹고 남겼다. 가성비 너무 좋다. 중남미 여행 중 최고의 엠빠나다였다. 올챠타 한 개와 이름 모를 스틱과자 (팬에 반죽을 얇게 펴서 누텔라 + 치즈를 토핑으로 얹고 돌돌 말아 그 위에 치즈를 더 얹음)를 후식으로 먹었다. 잘 먹고 있는데 이방인 3명이 합석을 했다. 너무 예뻐서 계속 쳐다보게 되는 아르헨티나 미녀 안토, 멕시코 현지인 깨제, 그리고 유럽에서 온 필립. 처음엔 그냥 셋이서 왔구나 정도밖에 생각 안 하고 혼자 조용히 밥 먹고 있었다. 여자애가 올챠타를 마시더니 "이거 맛이 왜 이래?" 하길래 "이거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음료순데. 엄청 맛있지 않아?"라고 하면서 말을 텄다.

아름다운 아르헨티나 여자 안토가 공원에 있는 범퍼카를 보며 말하길, 자기 어렸을 때 꿈이 범퍼카를 타보는 거였는데 아빠가 위험해서 못 타게 했다고 한다. 그러자 깨제가 하는 말. "지금 해봐. 너의 꿈을 이루어주는 나라, 이곳은 멕시코!" 그렇게 한참을 깔깔대는데 깨제가 치첸잇사를 꼭 가보라고 한다. 아쉽지만 기회가 안됐다. 나도 여기 칸쿤에 하루밖에 머물 수 없는 게 너무 아쉽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의 운명이라니.

헤어지기 전에 사진을 찍으려는데 1인당 10달러라며 텍스 포함해서 45달러를 달라는 깨제. 마지막까지 빵빵 터진다. 만난 지 1시간밖에 안 됐지만 아주 오랜 친구 같았던 유쾌한 사람들과 포옹을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엔리케, 우리 형 하면 안 돼?

숙소로 돌아가니 여전히 호스텔 앞에서 테라스를 펴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 오수, 피델. 요 히피들과 또 한바탕 웃었다. 그들이 말하는 스페인어의 약 90%는 못 알아 들었는데 손동작이며 가끔씩 섞어 쓰는 영어며, 모든 게 그냥 웃겼다. 갑자기 엔리케라는 키 크고 잘생긴 친구가 왔다. K-POP과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다는 이 친구. 영어도 수준급으로 잘 한다. 그러면서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 칸쿤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기자며 바로 클럽으로 데려갔다. 내가 돈이 없다고 하니 (진짜 없었다.) 자기가 내주겠으니 가잔다.

가는 길에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엔리케는 취미가 다양하다. 비디오 게임, 농구, 독서, 글쓰기(자기 책을 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시 쓰기, 춤추기, 춤 가르치기, 전직 유치원 영어 교사 등등. 팔방미인이다. 지금은 칸쿤 주변을 떠돌아다니며 돈을 벌고 있단다. 클럽에 갔는데 역시 난 클럽과 맞지 않는다. 멀뚱멀뚱 서있다 왔다. 내가 술과 댄스를 둘 다 안 좋아하니 말이다. 그렇게 새벽 2시가 넘어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이 형, 진짜 착하고 좋다. 꼭 칸쿤으로 돌아오라며 그리울 거라고 계속 말한다. 그냥 자기 아쉬워서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같이 찍은 사진이 엔리케 폰으로 찍은 건데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너 핸드폰으로 다시 찍자"고 말한 엔리케. 내일 아침 9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떠나야 하는데.. 아마 다시 사진 찍기는 힘들겠지? 엔리케, 우리 친형 해주면 안 돼?


2015년 12월 19일

Adios, Mexico!

그래. 결국 우리는 다시 사진을 못 찍었다. 나는 떠나야 했고 엔리케는 단잠에 빠져 있었다. 아쉬우나마 한국 고궁 사진이 있는 엽서에 편지를 쓰고 기념품과 함께 엔리케의 침대 위에 올려두고 나왔다. 아침으로 그 맛있던 께세디야를 다시 먹었다. 공항까지 가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엔리케가 계속 생각났다. 어젯밤에 괜한 약속을 했나 보다. 멕시코에 꼭 다시 오겠다고. 칸쿤에 오거든 연락 주겠다고. 어쩌면 평생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데..

요즘도 가끔 엔리케에게 페이스북 메시지가 온다. 답장을 하고 싶은데, 못 하겠다. 답장하면 진짜 비행기 티켓을 끊어버릴 것만 같다. 중남미를 어떻게 다시 가야 하나 벼르고 있는 요즘, 엔리케 형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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