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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Nov 08. 2017

남이사

나 있잖아. 요즘 이해 안 되는 게 하나 있어. 왜 흰 신발이 유행하는 거야? 뭐, 흰색이 어느 옷에든 잘 어울리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는 건 인정. 근데 솔직히 관리하기 귀찮잖아. 세탁소에 주기적으로 맡겨야 하고, 적어도 검정 신발보다는 자주 빨아야 하니까.


이렇게 말하는 나도 웃긴데, 사실 내가 지금 신고 다니는 신발 두 개도 다 흰색이야. 하나는 길거리에서 겟한 만 원짜리 스니커즈. 1년 넘게 신고 있거든? 밑창 다 헤졌어. 이제는 아무리 빨아도 때가 안 져서 회색이나 다름없이 꼬질꼬질해. 다른 하나는 아디다스 할인할 때 샀어. 깔끔한 스니커즈 39000원, 흔한 가격 아니잖아? 어느 옷에나 잘 받긴 하더라.. 근데 이 신발은 특별한 날에만 신어. 결혼식이나, 갑자기 꾸미고 싶어 지는 그런 날. 나머지는 집에 고이 모셔놓고 있어. 산지 3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새하얀 색이 남아있을 정도야.


오늘도 나는 꼬질꼬질한 스니커즈를 신고 학교에 왔어. 오늘은 평범한 수요일이니까. 솔직히 좀 부끄럽긴 했거든? 요즘 대학생들 얼마나 스타일 좋냐.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위축해지더라. 아..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는 삼선 슬리퍼에 농구 바지 차림으로도 그냥 수업 들으러 가고 그랬는데. 그때 진짜 좋았는데. 한국에서는 왜 그게 안되는 걸까? 2년 전에 교환학생을 마칠 때쯤에는 한국에 가서도 다른 이들 눈치 안 보고 자존감 갖고 살아야지 결심했거든. 근데 2년이 지나 보니, 외모 때문에 자존감이 무척 낮아진 거 있지.


내 얼굴에 만족 못하는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너무 잘생겼어. 옷도 잘 입어. 피부는 또 왜 그렇게 좋니. 나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박박 긁어 모아도 옷 사는데 돈 투자하는 게 쉽지 않던데. 새 신발 하나 사는 게 그렇게 아깝던데. 사실 나는 외모가 아니라 다른데 더 많이 투자해. 여행 경비를 모은다거나, 책을 사거나.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있다는 거야. 돈을 모아서 원하는 데 썼으면 하지 못한 다른 걸 두고 후회하면 안 되는 건데. 한정된 돈으로 모든 걸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해. 왜 나는 저들처럼 잘 꾸미지 못할까, 20대는 한 번뿐인데, 인생에서 외적으로 가장 멋진 시기인데, 왜 나는 별처럼 빛내지 못하고 고지식하게 살아가는 걸까.


모두가 만들어 낸 사회현상이라고 합리화하고 싶어. 1년 전에 들었던 어느 수업에서 교수님이 그랬거든. “누구나 옷을 잘 입을 필요는 없지만, 어느 곳을 가든 깔끔한 인상을 풍기는 건 중요합니다. 자기한테 맞는 스타일을 찾아야 해요.” 근데, 1년 넘게 신어서 다 헤지고 때탄 흰 운동화랑 잘 맞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자기한테 맞는 스타일? 그거도 결국 다른 사람들의 의식을 완전 배제할 수 없는 거 아니야? 꼭 옷 입는 품새를 보고 사람을 판단해야 돼?


말나온 김에 하나 더 할게. 그런 법이 생겼으면 좋겠어. 아니면 암묵적으로 사람들끼리 합의라도 했으면 좋겠어. 비 오는 날에는 회사에도 슬리퍼를 신고 출근하는 거지. 구두나 운동화를 신었는데 쏟아지는 비에 쫄딱 젖거나 물웅덩이에라도 한번 빠져봐. 나도 하루 종일 찝찝하거니와 발냄새는 또 주변 사람들한테 얼마나 민폐야. 그런데도 사람들 시선이 두려워서, 삼선 슬리퍼 신고는 차마 못 나가겠더라. 비 오는 날만 신으려고 스타일리시한 슬리퍼를 사자니 또 돈 아깝고. 폭우가 내릴 때마다 내 운동화는 수난을 당하곤 해.



내 얼굴에는 인중에 큰 점이 하나 있거든. 되게 꼴 보기 싫어. 그래서 점을 뺐어. 근데 이게 2주 지나니까 다시 자리 잡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생기는 거야. 어느 날 내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물 옥상에서 아끼는 후배랑 셀카를 찍었어. 그걸 프사로 해놓았거든. 사진 분위기도 너무 좋아서. 그랬더니 누나한테 카톡이 오더라.

다 좋은데 점이 너무 거슬리니 자기가 포토샵을 해주겠대. 그러더니 진짜 점을 싹 지운 버전으로 사진을 보내주더라. 그거로 프사를 바꾸라고. 내가 바꿨게 안 바꿨게?


안 바꿨어. 물론 그 점이 상당히 거슬리는 건 사실이야. 그래도, 적어도, 나만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었어. 얼굴에 점이 있든 말든, 운동화가 낡았던 새거든, 무슨 신발을 신던, 무슨 바지를 입던, 무슨 머리 스타일을 하던.


이제부터는 낡아빠진 운동화도 당당하게 신고 다닐게. 조금이라도 잘생겨 보이겠다고 렌즈를 12시간 넘게 끼고 있다가 눈에 눈곱이 껴서 주위 사람들을 민망하게 하는 일도 없게 할게. 그러려면 나부터 다른 사람들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야겠지? 한국 사회가 어쩌니 저쩌니 불평하기 전에. 야, 너 오늘 입은 그 티셔츠 참 예쁘다. 너랑 잘 어울려.



되게 논리도 없는 이야기를 앞뒤 없이 지껄여서 미안해. 그냥, 푸념이라고 생각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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