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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Feb 07. 2018

나의 시간 여행법

새로운 환경을 만나면 그 시기가 끝날 때 즈음의 나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이 방법으로 당장 갖고 있는 불안감이 해소 되고, 무엇 위해 이곳에 왔는지 분명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쓰는 당시에는 오그라들지만, 끝나갈 때 다시 읽어보면 과거의 나를 만나 시간여행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등병 시절 불침번을 서면서 병장이 된 나에게 편지를 썼던 게 시작이었다.


문득. 2014년 6월, 23살의 말년 이원희 병장님께

충성! 안녕하십니까. 저는 OOO여단으로의 배출을 1주일 앞둔 XX학교 특기병 이병 이원희입니다. 지금 저는 이곳 XX학교의 조교 자충에서 떨어지고 새롭게 배치받은 OOO여단이 어떤 곳인지 매우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이원희 병장님은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기쁘시지말입니다. 이등병의 생활이 어떨지 너무 궁금합니다. 병장님도 분명 서럽고 힘들었던 이등병의 시절이 있었겠지요. 그런 시절이 있더라도 시간은 분명히 흘러가기에, 벌써 말년이십니다. 예. 저도 그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아직까지 군생활 동안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옵니다. 병장님께서는 어떤 군생활을 보내셨습니까? 계획했던 영어, 일본어 공부, 책 읽기, 운동은 다 성공 하셨습니까? 찬양팀에서는 열심히 건반을 치고 계십니까?

성공하지 않았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이원희 병장님은 분명 사회에서 더 잘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제대 후 진로는 막막하지 않으시지 말입니다. 분명 갈 길을 정해놓으셨을겁니다.     

21개월의 시간동안 많이 변했을 겁니다. 군대에서 사회생활 하는 법, 사람 상대하는 법은 많이 배우셨습니까. 입대한지 딱 2개월이 지난 이 시점, 저의 심경은 어떤지 아십니까? 병장님께서도 2012년 이맘때 쯤 그러셨듯이 막막하고 아쉽고 답답합니다.     

스무살을 이루어놓은 것 하나 없이, 뜨거운 사랑도 한 번 못해본 채 흘려보냈습니다. 그래서 더 알차고 바쁘게 보내겠다고 다짐한 스물한 살 이었건만.. 연말이 된 지금, 저는 작년 이맘때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빠르고, 그렇게 나의 20대는 지나가고 있다. 나의 스물한 살은 결국 이렇게 제대로 일구어놓은 것 없이 지나가는구나. 스물두 살엔 또 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 이런 것 말입니다.     

제 젊음은 모두에게 그렇듯 아주 짧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역 후에는 정말 앞뒤 가리지 않고 해보고 싶은 모든 것들에 제 몸을 던지고 시행하고 깨지고 변화되어 볼 생각입니다. 병장님도 분명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서툴고 어색하더라도, 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실 거라 믿습니다. 저 역시, 병장이 될 때 쯤엔 분명 그렇게 변화되어 있을 겁니다.     

곧 전역하시는 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회로 다시 두 번째 발을 내딛는 병장님께.

2012년 11월 28일 늦은 밤.





미국에서 한 학기를 시작하던 시점에, 교환학생을 마친 뒤 나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2015년 9월 17일.

그럴 줄 알았어! 너를 미국으로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당연히 모든 것 책임져 주시지. 미국에서 시간은 어땠어? 벼르고 벼르던 남미 여행은 당연히 했겠지? 너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이루어내고 마는 그런 신기한 애니까. 가끔 보면 딱하기도 해. 무엇을 위해 저렇게 달릴까? 이유를 알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달리기만 했던 10대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 누구보다 아름다운 20대를 꽃피우고 싶은 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 해. 그래서, 6개월의 시간 끝에 왜 달리는가에 대한 이유는 충분히 찾았니? 계속 달리기만 하면 왜 달려야 하는지 생각 할 시간조차 없잖아.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또 다른 너를 많이 만났을거야. 지금의 나와는 분명 다르겠지. 네가 갖고 있는 약점 (운동, 소심함, 목적 없는 레이스, 열등감)은 극복하고 장점 (추진력, 곧음, 미소, 인문적 소양)은 더 극대화 되었을 거라고 믿어. 나도 그렇게 변화된 너를 위하여 늘 기도하고 있어.

(잠깐. 2016년이면 25살이니까 나보다 형인가? 여긴 미국이니까 그냥 반말로 쓸게.)

그 마음 그대로 한국으로 가서도 잘 살길 바라. 꿈을 잃지 말고. 나는 슬슬 전공 과제 하러 가야돼. 일기 쓰고 너한테 편지 쓰느라 1시간 가까이 지났거든. 자. 그럼 한국에서 새 삶에 건투를 빈다. 그리고 확신하건데, 너는 늘 내가 그리울 거야. 스물네 살. 세상과 부딪히며 자기를 찾아가던 젊은 나를. 잊지 말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2012년의 이등병이 병장에게 쓴 편지는 다음날이 되자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까먹었다. 기억에서 완전히 묵혀 있다가, 전역 전날 편지를 다시 읽었다. 신기한 것은, 군생활이 그때 당시 그렸던 모습대로 흘러갔다는 사실이다. 학창시절 체육을 가장 싫어할 정도로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는데 군대에서 축구와 농구를 배웠다. 부족한 실력으로 군 교회 찬양팀에서 피아노 반주도 섬겼다. 전역할 때 쯤 일본어 자격증이 생겼고, 100권 정도 책을 읽었다. 적어도 21개월이 시간낭비는 아니었구나 싶었다.


2015년 9월에 쓴 일기도 2016년 2월, 한국에 다시 돌아 와서야 읽었다. 한 학기의 교환학생과 2달의 남미 배낭여행을 마친 뒤였다. 한국에서 누릴 수 없었던 여유로운 생활을 6개월간 한 뒤에 나는 분명 방향성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자기개발과 성공을 위해 달리던 20대 초중반과 달리, 25살 이후의 나는 늘 방향성을 갖고 천천히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스물 네 살의 내가 했던 예언은 적중했다. 오늘 이 일기를 다시 읽어보니 세상과 부딪히던 스물 네 살의 내가 무척이나 그립다.



이제 대학을 졸업한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된다. 군대를 전역할 때, 시원섭섭한 마음이었다. 나를 가리고 있던 보호막이 하나 걷힌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비슷하다. 사회라는 새로운 문 앞에 섰다. ‘학생’ 타이틀은 더 이상 나를 보호해 주지 못한다. 운이 좋게도 첫 직장을 그토록 바라던 남미에서 얻었다. 비록 6개월의 짧은 인턴십이긴 하지만 분명 지금 나에게 과분한 기회이며, 좋은 출발이고, 꽤나 마음에 드는 방향이다. 한편으로는 두렵다. 아직 스페인어로 의사소통도 불가능 한데 일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면접때 엑셀 잘 한다고 말했는데 사실 함수같은거 하나도 모르고 그냥 더하기빼기만 할 줄 아는 수준인데. 타지에서 얼타느라 외롭진 않을까.


늘 그랬듯이 새로운 시작 앞에 두려움과 설렘의 비율이 51:49로 공존한다. 오늘 밤, 일기장에 새로운 편지를 하나 써야겠다. 인턴십이 끝난 6개월 뒤 나에게 쓸지, 아니면 곧 서른이 될 2020년 12월의 나에게 쓸지는 모르겠다. 내친김에 둘 다한테 쓸 수도 있겠지. 그러면 이 불안한 마음이 좀 다잡아져서 49:51로 바뀔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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