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7월 7일. 곡성
때는 2014년 7월. 육군 병장으로 전역하고 2주쯤 지난 후였다. 군인 시절 제대 후 계획을 많이 세워놓았지만 전역과 함께 발동된 귀차니즘이 현실의 벽과 만나 좌절하고 있던 차였다.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도 없었다. 전역 기념 여행을 가고 싶긴 한데 돈이 없었다. 남들 하는 거한 여행은 못하겠으니 무전여행이나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 남아있는 거라곤 군 시절 다져진 멘탈과 뭐든 되겠지라는 패기밖에 없었다. 생각이 들자마자 계획을 짰다. 평소에 너무 가고 싶었던 섬진강과 지리산으로.
7월 6일 일요일 밤, 당장 내일 떠나야지라는 마음으로 섬진강 유역을 물색해봤다. 가장 먼저 다음날 아침 곡성역까지 가는 무궁화호 티켓을 예매했다. 특별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다. 네이버 위성 지도를 보고 마을이 있는 곳들을 체크했다. 그냥 섬진강 변 따라 걷다 보면 적어도 길을 잃지는 않겠거니 했다.
7월 7일 월요일, 열차는 영등포역을 출발했다. 무전여행을 처음 꿈꿨던 것 역시 군 시절이다. 21개월이 언제 흐르나 막막하던 논산훈련소 훈련병 시절이었다. 9월 군번이었는데 10월이 되자 행군을 시작했다. 다녀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논산 훈련소는 막사에서 훈련장까지 거리가 꽤 된다. 그 먼 길을 행군으로 왕복했다. 행군하는 동안은 모두 고요하다. 핸드폰도 없으니 시간을 달래려면 생각, 또 생각이다. 10월의 논산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아름답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고 땅에는 노란 곡식들이 익어가고 있었다. 세상에는 노랑과 파랑, 두 색깔밖에 없었다. 소똥 냄새나는 논산 길을 지나며 마음먹었다. ‘전역하면 꼭 무전여행을 해야지.’ 사실 이 생각의 메인은 ‘무전여행을 해야지’가 아닌 ‘빨리 전역하고 싶다’였겠지만. 아무튼 그날 이후로 내 머릿속에 무전여행은 언젠가 꼭 해야 하는 버킷리스트였다.
무궁화호를 타고 남쪽으로 쭉 내려오는데 후반기 교육을 받았던 조치원역을 지났다. 분명 1년 반쯤 전에도 무궁화호를 타고 논산에서 조치원에 도착했었는데. 그때 열차 안에는 군인들이 가득 차 있었다. 민간인으로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군대라는 마지막 보호막이 없어지고 정말 사회로 내쳐진 느낌이었다.
무전여행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옆자리 앉은 할머니께서 빵을 꺼내시더니 하나를 나누어줬다. 고맙게 인사드렸다.
“어디까지 가세요?”
“임실까지 가요. 학생은 어디 가요?”
“곡성이요. 무전여행이나 할까 해서요. 임실은 어때요? 소문대로 치즈가 맛있나요?”
“그럼 맛있고말고. 아이구, 서울에 오래 있으니까 공기가 안 좋아서 못살겠어. 임실은 공기도 얼마나 맑고 좋은데.”
열차가 곡성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기차마을이 나온다. 무전여행 중에 관광지 투어는 사실 꿈도 못 꿨다. 입장료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래 철덕 기질이 있는 나는 기차마을을 포기할 수 없었다. 문 앞에서 30분가량 고민했다. 저기 계신 직원분께 한번 빌붙어볼까? 웃으면서 애교 부리면 좀 봐주시지 않을까? 아 이런 거 너무 싫은데 그냥 갈까? 결국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매표소 직원에게 여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무전여행중인 청년인데요. 이 기차마을을 너무너무 구경하고 싶어서요. 하하.. 안에 있는 쓰레기들을 모조리 주워 올 테니 무료표 한 장만 얻을 수 없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참 민폐긴 하다. 그런데 직원분께서 젊은이의 애교가 귀여웠는지 피식 웃으시며 표 한 장을 끊어주셨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곡성 기차마을 홍보 많이 할게요.
무료로 입장한 게 미안할 만큼 기차마을의 퀄리티가 좋아서였을까. 이 후로는 모든 관광지에 무료입장하는 것을 포기했다. 하동에서 쌍계사 문턱까지 갔다가 절 안을 못 보고 돌아온 게 아쉽긴 하지만, 빌붙을만한 깜냥이 없기도 했고 무전여행의 안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지도 않았다. 좋은 관광지는 제 값 주고 경험하는 게 최고다.
곡성역에서 지도를 받아 든 뒤 본격적으로 섬진강을 향해 걸어갔다. 한참을 걷다가 무거운 짐을 이고 가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구부정한 허리로 홀로 가시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가시는 곳까지 짐을 들어드렸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무전여행을 하러 왔다고 하니 “뭣하러 사서 고생 혀. 당장 차 타고 다시 올라가.”라고 하셨다. 약 30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산속에 있는 조그만 밭이었다. “뭐라도 도와드릴까요?” 했는데 내가 농사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그냥 돌아가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숨겨둔 소주병을 꺼내시더니 가지고 온 나물을 안주 삼아 약주를 하셨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하는 수 없이 사진만 남기고 돌아갔다.
돌아가려는 나에게 여행 잘 하라며 격려해 주셨다. 잘 곳이 없거든 곡성 곳곳에 있는 정자를 잘 활용하라고, 여름인데 산 속이라 밤에 시원하게 잘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할머니 걸음걸이에 맞추어 걸으니 30분이 걸렸던 길인데 혼자 돌아갈 때는 10분도 안 걸렸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던데 이런 이유 때문일까? 젊고 팔팔한 것이 좋기는 하다만 상대적으로 긴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진 않은지 늘 점검해 볼 일이다.
기찻길을 따라 죽 걸었다. 두 가지를 느꼈다. 조각돌이 가득 찬 기찻길을 걸으면 발이 무지 불편하다는 것. 또 건축학개론에 나오는 것처럼 수평 맞춰가며 기차 레일 위를 걷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
기찻길이 끝나자 너른 품의 섬진강이 나타났다. 앞에서 보던 실개천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멋지다. 여름의 신록과 강의 짙푸른 색감이 조화로웠다.
계속 걷다 보니 시간이 어느덧 6시를 넘어갔다. 슬슬 배도 고픈데 오늘 잠은 어디서 자야 하나 걱정되기 시작했다. 무전여행 내내 가장 힘들었던 게 이거다. 오늘 잠자리는 어떡하지? 밥은 어디서 먹지? 이런 기본적인 것을 항상 걱정해야 한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거다. 곧 ‘심청이야기마을’ 이 나왔다.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마을 초입부에 심청이 벽화가 예쁘게 그려져 있었다. 마을로 난 길을 따라 쭉 걷고 있는데 젊은 청년이 신기했는지 어머님 한 분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셨다.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드리고 무전여행 중이라고 했더니 어디서 왔니, 잘 곳은 있니, 밥은 먹었니 먼저 물어보셨다. 안 먹었다고 하니 들어와서 저녁 먹으라고 하셨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세운 여행 원칙이 있어요 어머님. 절대 밥은 공짜로 얻어먹지 말자는 거예요. 제가 밭일 도와드릴 거 없나요?”
“밭일은 됐고, 마음 같아선 일 안 시키고 그냥 밥 주고 싶은데.. 뭐든지 받은 만큼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를 청년도 배워야 하니께. 마당이라도 한 번 쓸어줘.”
“에이, 그런 거 말구요. 뭐 무거운 거 들거나, 힘 좀 써야 되는 일 없어요? 이 기회에 아들이다 생각하시고 부려먹으세요.”
“허허. 없다니까 그러네. 일단 들어와서 밥이나 같이 먹자.”
양파 부추전, 고추 조림, 콩자반, 가지볶음, 김치, 무채, 붉은 감자, 다슬기국. 이게 어딜 봐서 무전여행자의 밥상이란 말인가? 평소에 집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맛있다. 역시! 남도의 음식은 달랐다. 염치 불고하고 그 자리에서 두 그릇을 뚝딱 했다. 잘 먹어주어서 고맙다고 하셨는데 고맙긴요! 제가 훨씬 감사하죠. 너무 감사하게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내가 먹은 이 음식에 비하면 마당 쓸기는 너무 초라했다.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었다. 알고 보니 이 집 내외분은 심청마을 이장님 댁 이셨다. 오랜만에 찾아온 젊은 사람이 반가우셨나 보다. 아들이라고 불러주셨다. 아들 성공하거든 꼭 다시 이 마을에 찾아오라며 아침에 먹으라고 붉은 감자와 자두, 콩 두유를 한봉지 싸주셨다. 붉은 감자가 일반 감자보다 훨씬 건강에 좋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소름 돋는 인심이었다.
첫날 잠자리는 이장님 댁 옆의 교회에서 해결했다. 목사님이 안 계셔서 전화를 드려 “안녕하세요, 저는 무전여행 중인 청년인데요.” 이런 식으로 사정을 잘 설명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내가 예수 믿는 청년이라고 하니 격려해 주시며 전화 끊기 전 기도까지 해 주셨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젊은이에게 이렇게까지 관대하셨다. 잠자리가 불편하진 않을지, 오히려 걱정해 주셨다.
교회 장의자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며 기도 하고 일기를 쓰고 있는데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할머니 한분이 들어오셨다. 여행 중에 몸조심 하라며 오이와 토마토를 주고 가셨다. 첫날부터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무전여행을 통해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삶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하게 됐는데 날이 갈수록 받는 사랑이 점점 더 커진 것 같다. 그에 비해 나는 사랑을 줄 만큼 가진 것이 없었다. 조금이나마, 비상금의 일부를 떼어 교회에 헌금하고 다음날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