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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Mar 11. 2018

편견에 관한 고찰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두어 번 인종차별을 겪었다. 샌프란시스코로 여행 갔을 때 일이다. 버스에서 한창 미국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있을 때 현지인이 강아지를 안고 탔다. 개가 참 순하고 귀엽길래 웃으며 “쏘 큐트!” 한마디 했더니 썩소를 지으며 입으로 ‘뿍’하는 방구 소리와 함께 가운데 손가락을 내미는 게 아닌가. 이 수치는 당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 백인 여성은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지만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얼굴만 빨개진 채로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그 뒤로 만난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친절했다. 두 달 뒤, 뻑큐 사건을 까맣게 잊을 때 즈음 크리스마스 파티로 현지 친구 집에 갔었다. 내가 가져온 호떡을 모두 맛있게 먹어서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한창 자전거를 달리는데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왔다. 차 뚜껑이 열리며 잠시 후 술에 취한 백인 남자가 고개를 쓱 내밀고는 나를 향해 계란을 던졌다. “Fuck You!"를 외치며. 그러자 차 안에 사람들이 껄껄 웃으며 경적을 울리고는 달아났다.

알코올 때문인지 계란은 엉뚱한 곳에 떨어졌고, 나는 그들을 향해 “Thank You!"를 외쳤다. 나름 침착하게 대응한 것 같았다. 그런데, 집에 가는 길이 무서웠다. 차가 한 대 지나갈 때마다 혹시 저기서 또 나타나 계란을 던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10분 거리가 1시간처럼 느껴졌다. 떨린 마음을 진정시키며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분명 인종차별이었다. 그들은 백인, 나는 아시아인이었다.


물론 이 사건을 페이스북에 올리니 미국 친구들이 괜찮냐, 뭐 그런 놈들이 다 있냐, 무시하라, 모든 아메리칸이 그렇지는 않다며 위로를 해줬다. 나도 이런 사건 때문에 내 교환학생 시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백인들에 대한 편견을 갖기도 싫었다.



지금 에콰도르에서 살고 있는 호스텔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유럽, 미국, 호주, 라틴계 백인들이다. 무슨 자신감으로 여기 살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다. 저번에 말했듯이 그냥 뷰가 너무 좋아서 거기에 꽂히고 만 거다. 그런데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 경험은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집에 들어오면 바로 있는 커다란 식탁에 백인이 앉아있으면 일단 쫄았다. 하이, 하우아유. 정도는 하겠지만 무언가 더 대화를 나누기가 무서운 거다. 백인은 아시아인을 무시할 거야, 나를 아시안 몽키라고 생각하겠지, 지레짐작하고는 피하게 됐다.

그들끼리 모여서 저녁을 먹을 때도 낄 생각을 하기보다는 “나는 그냥 샌드위치 먹을래”라며 혼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방에서 먹기도 했다. 서러웠다. 그들이 나한테 뭘 했길래 나는 저들을 피하고 있는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나 말고 모두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다. 여행을 하며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을 당당하게 표현하던 라틴의 문화에 빠져서 꿈처럼 다시 남미에 왔지만 나는 아직 골수 한국 사람이었다. (물론 이것도 편견이다.) 이성 간에 볼 키스(소리만)를 하는 것도 어색하고, 악수를 건네는 특유의 강한 손짓도 아직 어색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모두가 나에게 친절한 건 아닌데 뭔가 나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한껏 움츠러들었다. 내가 그렇게 찌질해 보이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것 마저도 그들이 아시아인을 향해 안 좋은 편견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트라우마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편견을 가진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거실 소파에 새로운 사람들이 앉아있길래 ‘하이, 하우아유’ 만 하고 끝났다. 그들의 반응과 상관 없이 내가 먼저 그들을 피했다. 그리곤 곧장 2층 내 방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룸메들과 저녁을 먹으며 손님들과 통성명을 했다. 쏠이라는 친구가 말하길, 내가 자기들한테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고 했다. 나는 그게 아니라 피곤해서 그랬다며 다음부터는 웃으며 맞아주겠다고 변명을 했다.


백인들은 아시아인들을 무시할 거라는 편견과 다르게 하우스메이트들은 모두 친절했다. 요리를 하면 “너도 같이 먹자!”가 자연스러웠고, 영화도 같이 보러 갔다. 도대체 편견? 인종 차별?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굳이 찾자면 같이 대화할 때 적극적으로 끼기 어렵다는 건데 그것도 내 영어를 탓해야 한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만 있는 나에게 “한국에서는 어때?”라며 먼저 질문까지 해준다.


오늘은 알렉스라는 메이트와 점심을 먹었다. 이 집에서 가장 먼저 안면을 튼 친구인데 일하는 건 어떻냐며 내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이어갔다. 아직은 이곳의 문화가 낯설어서 회사에 가도 “네, 아니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만 반복하게 돼서 서럽다고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알렉스는 여기서는 부끄러워할(Shy) 필요 없다며, 자신 있게 문화에 적응하라고 말해줬다. 그러고는 먼저 밥을 다 먹고 부엌에서 아무 말 없이 내 것까지 다 설거지를 해줬다. (아.. 불고기 만든다고 여기저기 난리 쳐 놓고 냄비며 그릇이며 진짜 많이 썼는데.)


쁘리따다 라는 에콰도르 전통 음식이다. 근데 저 튀긴바나나에서 우리 쌈장맛이났다.

회사 직원들은 또 어떻고. 첫 출근 때 너무 떨린다고 말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그럴 필요 없다고, 도와줄 테니 걱정 말라고 친절하게 대해줬다. 업무나 문화에 대해 질문이 있어 찾아가면 짧은 스페인어도 참고 끝까지 들어주며 적절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엊그제는 출근하면서 “모든 사람의 이름을 외우고 먼저 인사하자!”는 다짐을 했다. 물론 나는 쫄보여서 다 하지는 못했지만 몇몇 사무실의 문을 먼저 두드렸고 그들과 통성명을 했다. 외국에서 온 말단 인턴이기에 별 교류 없이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먼저 내민 손길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겨주면서 스페인어 연습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자기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국적이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인 경계를 허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편견은 갖지 말자. 내가 편견을 갖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순간 나의 불편함을 눈치챌 것이고 관계는 더 어색해진다. 이 사람들이 오히려 내 과거의 상처를 덮을 만큼 좋은 사람들이었으면 좋겠고, 나도 노력해야지.


그러니 부정적인 편견이거들랑 나부터 버려두자. 아시아인이라고 해서 주눅 들지 말자. 한때는 그들(미국)의 문화를 따라 하려고 무심한 듯 '왓썹'이나 고개를 까닥거리는 모션을 자주 취했는데 그게 현지에 올바르게 적응하는 방법인 것 같지는 않다. 나 먼저 스스로를 아시아인, 한국인으로 규정하는 순간 개인의 장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오히려 특유으 표정으로 밝게 웃으며 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직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한 건 아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일은 하우스메이트와 그 친구들을 위해 한식을 해주기로 했다. 잡채와 불고기. 오늘 시장에서 장을 보는데 어찌나 설레던지. 연습 겸 야식으로 먹으려고 잡채를 만들어 봤다. 맛을 본 에콰도르 친구 세 명이 금세 접시를 비웠다. 설거지는 덤이다.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좋은 편견을 심어주고 있는 걸지도. 한국 음식은 맛있어! 한국인은 친절해!


그야말로 다양성의 대륙 남미! 다양한 인종, 다양한 음식, 다양한 기후, 다양한 지형. 스물일곱에 맞은 최고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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