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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Mar 12. 2018

키토 버스

un día normal

에콰도르에 온지 1주일 조금 넘었나,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게 여기 버스 시스템이다. 도로 한가운데를 다니는 메트로 버스도 있지만 출퇴근 할 때 주로 일반 파란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를 타면 기사님과 함께 안내원이 앞에 앉아 있다. 가끔 기사석 옆 소파같은 자리에 편하게 앉아(거의 누워있다싶이)있는 사람도 있는데 정체를 모르겠다. 교대하는 안내원인지 기사님 친구인지, 아무튼 셋이서 되게 재밌게 떠들고 논다.


승차 방법도 신기하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탑승할 때 안내원에게 돈을 내면 영수증을 준다. 확인용인 것 같은데 지금까지 확인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둘째, 돈을 내지 않고 일단 타서 앉아있으면 안내원이 친히 돈을 걷으러 돌아다닌다. 역시 영수증과 교환해준다. 셋째, 승차할 때 돈을 받지 않는 대신 하차시 안내원이 뒷문으로 먼저 내린다. 그 뒤 사람들이 내리고 밖에서 돈을 낸다. 넷째, 환승 터미널 같은 곳이 있는데 25센트짜리 동전을 넣고 바를 밀고 들어가면 버스를 탈 수 있다.


또 잡상인들이 많이 타고 내린다. 사람들이 종종 물건을 구입한다. 심지어 싸다. 과일, 문구류, 초콜렛, 과자 등 다양한 품목을 판다. 출퇴근 시간에 교통체증이 심할 때면 길거리마다 잡상인은 물론 광대(?)들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신기한건 온 몸을 금색으로 분장 하고 동상처럼 서 있으면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굉장한 실력으로 저글링을 하고, 누군가는 불이 붙은 막대로 불쇼를 한다. 교통체증에 지친 사람들에게 괜찮은 볼거리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돈을 지불 해 봐야겠다.


키토 버스의 가장 난해한 부분은 ‘번호’가 있기도 없기도 하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길을 구글맵에서 검색 하면 134번 버스를 타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뭐가 134번 버스인지는 모른다. 각 버스마다 지나는 대로, 랜드마크가 적혀있는데 그걸 보고 추론 해야 한다. 아직 길 이름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고역이다. 매번 버스를 탈 때마다 버스 행선지가 맞는지 물어보고 타야 한다.


첫 퇴근 때는 구글을 믿고 2번 환승하는 길을 선택했는데 몇 번인지 몰라 그냥 일단 오는 버스를 잡아탔다. 같이 탄 아저씨에게 “이게 끼쎈뜨로까지 가요?” 물어봤더니 안 가는데, 중간에 갈아타야 한다고 하셨다. “엘보스께에서 내리면 돼. 내가 알려줄게!” 역시 친절하다. 내리라길래 일단 내렸지만 결정적으로 그 다음에 뭐 어떻게 어떻게 하라 하셨는데 그걸 못 알아들었다. 민폐될까봐 그냥 알아들은 척 하고 내려버렸다. 뭘 어떡하긴 어떡해. 다시 구글을 믿어봐야지. 구글은 다시 두 번 환승하는 길을 알려준다. 또 아무 버스나 잡아탔다. “아베니다 뽀르뚜갈?” 가냐고 물어봤더니 간다길래 탔다. 오. 그런데 구글맵스가 말한 경로와 다르게 간다! 무한히 남쪽으로 내려간다. 키토의 남부는 꽤나 위험하다던데. 무섭다. 점점 사람이 없어진다. 결국 중간에 또 내렸다. 다시 구글링.

이렇게 해서 총 4번 환승을 해 집으로 돌아왔다. 총 두시간 반이 걸렸다. (참고로 출근은 한시간 좀 넘게 걸린다.) 


그럼에도 키토 버스를 애용하는 이유는 요금 때문이다. 고작 25센트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복지를 해줘도 되는 건가? 걱정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에콰도르 산유국이다. 허허. 괜한 걱정을. 아무튼 아무리 돌아다녀도 하루 교통비가 1000원을 안 넘는다고 생각하면 행복하다.


스페인어도 공부할 겸 버스에서는 중남미 시사 팟캐스트를 듣는다. 이제 절반정도 귀가 트인 것 같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느낌의 프로그램인데 기자로 예상되는 진행자가 각종 정치인들과 전화 연결을 한다. 오늘은 에콰도르 야당 정치인 인 것 같은데 지금 여당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며 마구 까고 앵커는 오히려 야당의 파행을 지적하며 소리를 높인다. (이게 여야가 맞는지도 사실 모르겠다.) 야당의 정권 심판 프레임은 어딜 가나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 소리를 높인다. 뻬르난도! 잠깐. 내 말좀 들어봐요. 빠블로! 헌법 00조 0항에 이렇게 나와 있는데, 뻬르난도! 뻬르난도!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빠블로! 질문을 간단히 하면 이거에요. 뻬르난도! 미안한데 잠깐 내 말, 당신은 에콰도르 국민을 생각하기나 하는겁니까! 빠블로! 빠블로! 뻬르난도! 내 말좀, 아니 그게 아니고! 빠블로!.....


그러다보면 팟캐스트는 안중에 없고 어느덧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한국에서의 여느 날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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