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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Mar 16. 2018

이방인

퇴근길에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난다. 숯불구이다. 첫주에는 아직 길거리 음식이 겁나서 먹지 못하다가 이번주에 용기를 냈다. 그리고 바로 단골이 됐다. 소세지, 닭가슴살, 닭날개, 소고기 4가지 메뉴가 있다. 꼬치에 고기와 알감자, 작은 소세지를 꽂아서 튀긴 바나나와 함께 일회용 접시에 준다. 가격은 1달러 50센트. 밥까지 시키면 2달러.


처음 뜯었던 고기의 맛을 잊지 못한다. 무한으로 제공되는 야채와 이름 모를 초록색, 노란색 소스의 조합도 완벽하다. 간이 의자를 하나 잡고 앉아 고기를 시킨다.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처럼 고기를 뜯다 보면 주인 없는 개들이 연기를 맡고 다가온다. 누군가는 먹다 남은 뼈다귀를 던져준다. 출근할 때 그늘에 누워 세상 편하게 자고 있던 이 개들은 저녁이 되자 주린 배를 채우려 어슬렁거린다. 이 때, 개와 눈이 마주치지 않는 게 좋다. 어찌나 불쌍하게 쳐다보는지. 계속 보고 있으면 고기 한 점 던져줘야 할 것만 같다.


잔인한 짓을 한번 해 본다. 마지막 한 점 남은 시점에서 개와 눈이 마주쳤다. 이걸 줘, 말어? 그러곤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표정으로 마지막 남은 고기를 꼬치에서 빼낸다. 스윽. 잘근 잘근 씹어 먹는다. 개는 똑똑하다. 자기에게 돌아올 몫이 없다는 걸 알고는 다른 사람에게 접근한다.


원래는 아저씨 1명과 아들로 추정되는 젊은 남자가 같이 영업을 한다. 아저씨가 꼬치를 굽고 젊은이가 밥을 푸고 돈을 받고 빈 꼬치를 채운다. 짧은 스페인어지만 아저씨와 금새 친해져서 매일매일 오겠다고 했다. 오늘은 아저씨는 없고 젊은 친구 혼자 영업을 하고 있었다. 먼저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한다.


오늘은 혼자네? 힘들겠다. 나 닭가슴살 하나만 줘.

그래. 여기 여행 온거야?

아니 난 저기, 저 회사에서 일해.

그래? 온지 얼마나 됐어? 키토는 마음에 들어?

다 좋아. 특히 이 꼬치 집은 최고야.



잠시 후 닭가슴살 구이가 나왔다. 1500원에 이 크기면 정말 푸짐하다. 굳이 밥을 안 시켜도 배가 찬다. 한입 베어 문다. 기본적으로 양념이 맛있어서 괜찮지만 확실히 아저씨가 구울 때 보다 숯불의 맛은 덜하다. 조금 아쉽지만 이 젊은 친구는 감자를 2개, 튀긴 바나나를 3개나 줬다. 서비스가 두둑하다. 이 바나나에선 항상 한국의 쌈장 맛이 난다. 그래서 좋다.


1.5불짜리 꼬치를 사먹는 일이 일상이 된 이유는 고기 맛도 맛이거니와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어서였다. 현지인들이 맛있게 먹는 곳에 나도 앉아서 같이 맛있게 먹으면 에콰도르 사람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종종 찾아오는 이 외로움을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하다. 그 시선을 즐기는 한편, 그 시선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사람들한테 그렇게 관심 받고 싶어 했으면서 정작 여기서 받는 일회성 관심은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든다. 쓰고 보니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웃기고 있다.


내일도 나는 냄새를 핑계로 꼬치집 앞에 앉아 닭고기를 뜯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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