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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Mar 20. 2018

과일 가게

집앞에 과일가게가 있다. 바나나 50원 망고 100원 아보카도 250원 계란 120원 갓 짠 무과당 오렌지주스 1000원.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저녁 7시에 닫는다는 것이다. 처음 이 동네로 이사오고 지리도 익힐 겸 돌아다니는데 바로 이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익어 물러보이는 망고. 망고가 겨우 백원이다. 나는 스페인어도 연습할 겸 아저씨에게 먼저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이 동네에 동양인이 올 일은 거의 없어서인지 나를 신기해하신다.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니 역시나,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묻는다. 그 뒤로도 이틀에 한번 꼴로 이곳에 들러 과일을 사기 시작했다.


지난 금요일 밤에 과일가게에 들렀다. 일주일 치 아보카도와 바나나를 사고 싶었으나 당장 바뇨스로 떠나야 했다. 좀 더 신선한 제품을 사기 위해 일요일에도 여냐고 물어봤다. 똑같은 시간에 열고 닫는다고 했다. 나는 일요일에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바뇨스에서 돌아오는 버스가 길이 막혀 저녁 8시에 도착했다. 집에 돌아온 시간은 9시 쯤이었다. 일부러 과일가게를 거쳐 집에 들어갔으나 역시 가게는 닫혀 있었다.


오늘 일 끝나고 과일가게에 들렀다. 역시나, 주인 아저씨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했다. 어제 아내가 빨리 닫자는 걸 만류하고 치노(중국인)가 일요일에 오기로 했다며 가게를 8시까지 안 닫았다고 했다. 약간은 투정이 섞인 투로 왜 안 왔냐고 물었다. 나는 멋쩍게 아저씨의 팔을 치며 버스가 늦었다고, 미안하다고 대답했다.


미안한 마음에 평소보다 과일을 더 샀다. 아보카도 3개, 망고 1개, 바나나 2개, 오렌지쥬스 1개, 계란 14개. 다 합쳐서 5000원이 조금 안 나왔다. 갓 짠 오렌지주스는 늘 상상 이상의 맛이 난다. 설탕 한 스푼 첨가하지 않는 걸 눈앞에서 봤는데도 어쩐지 이게 무과당이라는게 믿겨지지 않는다. 계란 14개를 봉지 안에 싸주셨다. 코앞에 집이 있지만 잘못하다가는 깨질게 분명했다. 주스를 마시며 생각했다. 떨어뜨려 깨질까봐 무섭네요. 이걸 스페인어로 어떻게 말하지? 하는 사이에 아저씨가 과일을 넣은 봉지 위로 계란 봉투를 넣었다. 옆에 있던 딸이 깨질 것 같다며 조심하라고 했다. 한창 ‘떨어뜨리다’가 스페인어로 뭐였지 생각하던 나도 때마침 ‘무서워요. 종이는 없나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계란 담는 종이판을 갖다주셨다. 판을 반으로 자르며 한 개 위에 계란을 올리고 다른 하나는 덮개로 쓸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 위에 테이프까지 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아저씨는 도와준다는게 그만 계란 하나를 깨트렸다. 새로운 계란으로 채워주고는 멋쩍게 주변을 배회하는 사이 아주머니는 계란 포장을 완성했고, 딸은 끝까지 조심하라며 엄마에게 주의를 주었다. 과일만 파는 줄 알았는데 양파며 토마토, 마늘도 있다. 대형마트보다 질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싸다. 이제 되도록이면 마트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저씨가 나를 여전히 치노(중국인)라고 부르는 게 거슬리기는 하지만 매번 쏘이 꼬레아노 해봤자 사람들은 금방 까먹는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우리도 백인들을 보면 다 미국인이라 생각했듯이 아시아인을 통틀어 치노라고 하는 거다. 인종차별 이라고 하기엔 뭐하다. 이들은 꼬레아라는 작은 나라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가 그만큼 중남미와 멀다는 핑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단은 중국의 국력이 강한 탓으로 돌려두면 마음이 좀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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