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시대의 러시아 + 동유럽의 Whiteness
엔리코 임레는 1989년 직후 집시라고 불리는 동유럽의 로마인들에 대한 반발은 초국가적 변화의 흐름 하에서 인종적 순수성이리는 환상이 위협받았으며 민족주의가 구시대의 산물이 되어간다는 현실주의적인 상징이었다고 말한다. 동유럽인들이 “진짜” 동유럽인에서 집시를 분리하려 노력하는데, 사실 서유럽이 동유럽을 이국적이고 비문명화된 “집시”로 동일시시키는 것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기원하여 정착한 것으로 여겨지는 헝가리인들의 집시에 대한 서사는 동유럽의 인종적 위계가 더 중요하게는 서유럽에 대한 그들의 열등감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사회주의의 붕괴이후 동유럽은 갑자기 점점 초국가적인 질서로 이행하는 세계에서 취약한 그들 국가의 경계를 찾기 위해서 소비에트 블록 하의 상대적 구속으로 부터 각성했다. 평등주의와 국제주의라는 공산주의의 레토릭이 점점더 의심스럽게 여겨지면서 동유럽인들은 “공산주의 시대의 사라진 확신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대체물이자 자신감의 원천”으로서 민족주의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민족주의 운동의 정치가들과 미디어에 의해 외부와 악으로 상상되는 “문화 제국주의”로 부터 국가의 문화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때 서구는 “해로운” 미국과 “진정한” 유럽적 가치로 양분화되었다. 이러한 양분법의 유용한 측면은, 동유럽 정치 캠페인에서 필수적인 슬로건으로 자리잡은 “유럽으로의 회귀” 담론이었고 이것은 다시 민족주의처럼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에 대한 담론을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게 만들었다. 초국가적 미디어와 경제, 포스트모던의 확산과 함께 불안정한 민족주의와 그에 동반하는 신 인종주의가 야기되었기 때문이다. 백인성에 대한 주장과 백인-비백인 사이의 색깔 경계는 인간/비인간, 고급문화/대중문화, 개인주의/집단주의, 과학/미신처럼 동유럽의 이데올로기들을 양분화하고 위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사실 이 양분법은 동유럽의 국가들이 “문명의 가장자리”에서 “본국의 식민지화(self-colonization)”의 과정이었으며, 자발적으로 서유럽 국가들의 이성, 진보와 인종적 위계라는 우월적인 유럽 계몽주의적 가치들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동시에 유럽이 제3세계에 했던 것처럼 유럽과 “다른 유럽(Other Europe)” 관계는 제국주의적 주인 서사를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을 했다.
서유럽에서의 종족과 인종개념 사용을 동유럽에서 사용하기에 어렵게 만드는 원초적인 이유중의 하나는 “인종”의 분류가 “종족”에 내장되어있는 것으로 남아있기 떄문이다. 동유럽의 역사적 맥락에서 백인성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와는 거리가 먼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먼 영토를 지배하는 우세한 대도시 중심의 이론과 태도"로서 동유럽 국가들의 형성에 철저히 영향을 미쳤다. 수세기동안 제국주의 “유럽다움(Europeanness)”의 상징과 모델은 동유럽에서 수입되었다. 결과적으로 동유럽 민족주의에서 인종주의의 제도화와 시초부터 모호했던 “유럽인다움”이 주요한 요소로서 등장한다. 필연적으로 동유럽에서 유럽인다움을 위한 인종의 서열화는 국내에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동유럽인들은 단 한번도 서유럽과 같은 “조현병적인 정체성 분열”을 겪지 않았고, 인종주의는 아마도 공산주의 시대 당시와 이후, 공식적 이데올로기와 사람들의 환상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저조하게 연결지어진 요인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장주의와 민주주의가 가져온 발언의 자유가 유대인, 로마, 그리고 종족적 소수자들에게 혐오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주의가 민족주의를, 민족주의가 다시 인종주의를 강화시키게 된 것이다. 민족주의를 위해 특정종족의 인종주의화가 이루어졌다. 백인성의 도덕적 우월이라는 개념을 보유하는 이 양분법은 국가 사회주의에서 글로벌 자본주의로, 저항적 민주주의에서 초국가적 신식민주의로, 유럽, 백인, 남성 상류 문화에서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영역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희석되기 시작했다. 민족주의의 유효성이 이민자들과 이미지의 초국가적인 유동에 위협받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도 민족주의가 백인성을 활용하였다. 그러나 동유럽과는 달리 러시아는 대국이며 오랬동안 다민족국가였다. 때문에 서구에 대한 열등감과 동양과 서양 사이라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러시아 내부의 동양에 대한 정의가 서구에 대비되는 타자로서 이루어져왔다. 러시아에서는 “유럽으로의 회귀” 담론이 동유럽에서의 위상을 가지지 못했지만 ‘러시아다움’ 역시 ‘유럽다움’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 최아영(2007)에서도 러시아의 청년들이 서구라고 지칭되는 미국과 서유럽에 대해 상이한 인식과 태도를 보였다. 러시아 청년들은 서유럽과 미국의 문화와 가치관이 매우 다르다고 답했다. 그들은 유럽은 ‘수준 높은 문화’, 미국은 ‘전통이 없고, 낮은 수준의 문화’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양분법은 러시아 내부의 문화에 대한 위계를 만드는데 기여한다. 러시아의 단순한 정치사상이 아니라 옐친 정부 중반(1996년)이후 러시아의 대내외정책에 용해되고 특히 2000년 푸틴이 집권한 이후 정부 정책노선에 명확히 드러나는 신유라시아주의에서도 그 단초를 살펴볼 수 있다.
16-17세기 유럽의 부상의 영향으로 러시아를 ‘서구화’ 혹은 ‘유럽화’하려 했던 표토르 대제의 문화혁명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 연관지었던 역사와 지리가 길다. 유라시아주의 관점에서는 러시아의 유라시아성, 특히 러시아의 동양성과 정체성에 대해 살펴 볼 수 있게 한다. 18-19세기에 동양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은 저열한 타자로서 형상화된 아시아에 대한 유럽의 지배적 담론을 받아들였다. 아시아에 대한 유럽의 문명화라는 사명으로 표현된 서양의 제국주의적 기획에 러시아도 동참한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유럽적 정체성에 대한 서양의 승인 부재는 슬라브주의자들로 알려진 러시아의 민족주의자들에게 러시아의 정체성의 기초로서 고유한 제도들, 이를테면 러시아정교와 농촌공동체 등을 찬미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동양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그 후 몇몇 지식인들은 유럽에 대한 러시아적 대안으로서 아시아로 향했다. 포스트 소비에뜨 시대에는 신(新)유라시아주의, 즉 러시아의 새로운 정체성은 동양적 원리와 서양적 원리 중의 어느 하나에 대한 배타적 옹호와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양자에 대한 통합적 사고에 기초한 새로운 유라시아적 전망을 구체화함으로써 확보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이떄 ‘동양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문제가 된다. 러시아와 동양의 관계는 러시아와 서양의 관계에 비추어 의미를 얻었기 때문이다.
신유라시아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인 빠나린(А.С. Панарин)에 의하면 러시아는 제국의 복원 에 기초가 되는 문명적 다원주의의 지구적 보호자로서 행위하는 것이다. 빠나린은 뚜르끄- 무슬림 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지니지만, 본질적으로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러시아 정체성의 한 요소로서만 간주한다. 이슬람에 대해서도 현실적 동맹자이면서도 동시에 실제적 경쟁자로서 인식한다. 빠나린은 서양의 헤게머니에 대항하기 위해 슬라브와 뚜르끄 세계뿐만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와 극동 아시아의 통합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러시아에서 신유라시아주의는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러시아의 대안적 정체성의 창조 혹은 고전적 유라시아주의처럼 동양에 대한 문화적, 사회적 친근성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지속적인 중요성과 역할의 정당화와 궁극적으로 강대국의 하나로서 그것의 지위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것이다. 오원교(2009) 역시 과거의 초제국에 대한 향수와 메시아적 사명에서 비롯된 러시아의 주도적 역할과 위상의 지나친 강조는 특정한 정치세력의 이익에 부합하는 위선적인 정치 강력에 머물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푸틴은 다민족국가인 러시아에서 민족간의 평화공존은 국가정책의 최우선 과제에 속한다고 답하면서, 타민족 혐오든 러시아인 혐오든 모든 형태의 혐오감을 없애는 데 노력해야 하며, 행정, 입법, 사법 등 모든 정부 기관이 다함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2007년에 민족주의, 인종주의, 제노포비아가 활발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소련 붕괴 이후 이데올로기의 진공상태, 러시아의 주류 집단인 러시아 민족의 좌절감과 방향성의 상실 등에서 기인한다고 대답하였다. 이어서 정부기관의 적절치 못한 대응을 시인하면서도 상황적으로 어쩔 수 없었음을 내비치며, 그럼에도 정부, 언론, 시민사회의 협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고상두, 김예슬(2012)는 푸틴이 러시아의 제노포비아를 해결되어야 할 사회문제로 인식하지만 불가피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제노포비아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가와 사회의 협력을 촉구하는 것이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즉, 그가 제노포비아 문제를 해결하자는 언급에 비해 실질적으로 행동으로 옮긴 것은 별로 없고 오히려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는 것이다(Yaffa 2006, 18-19).
이러한 맥락에서 판필로프(Panfilov 2006, 142-143)는 제노포비아가 푸틴의 비공식적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한다.
종합하자면, 동유럽에서처럼 러시아에서도 체제전환 이후 민족주의와 함께 백인성(Whitness)과 문화적 양분법, 위계를 특징으로하는 정체성 담론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신유라시아주의 내부의 동양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러시아 내부의 동양적 요소들에 대한 태도로 이어졌다. 신유라시아주의를 표방하는 푸틴정부는 제노포비아에 대해 기본적인 입장을 밝혔으나 침묵을 통해 정치적으로 이것을 이용하였고 이러한 일련의 상황이 제노포비아 현상을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구에 대한 열등감에 대한 반발로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통한 자존감의 회복을 도모하는데 그 일환이 푸틴의 권위주의와 유라시아주의적 대외정책이다. 이때 푸틴이 주장하는 유라시아는 어디까지나 강한 러시아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세계의 다극성과, 그 다극 중 하나인 유라시아에서 중심은 러시아가 되어야만 한다. 때문에 다극성을 존중하지만 같은 극 안에서의 위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과 같은 세력을 견제하게 된다. 이 위계질서는 러시아 내부에도 적용되므로서 강한 러시아를 위한 국가 통합과 사회 안정성 추구라는 명목하에 소수민족 및 이민자에 대한 탄압, 정교회 이외의 종교에 대한 탄압 등 위계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진다. 또한, 푸틴 시대의 러시아에서 불안정성에 대한 염려가 민족주의의 부흥을 이끌었는데 이것이 전통적 가치들의 수호로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의 기반이 되는 러시아인의 문화심리는 푸틴 같은 정치지도자를 선출하기도 하고 현대 러시아 사람들이 서구의 클럽문화나 음악을 향유하는 독특한 방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전부터 러시아의 제노포비아 및 스킨헤드와 같은 단체가 존재했다는 주장도 존재하나 푸틴의 실용주의 적이고 기능주의적인 정부와 정책들이 인종주의 역시 대중 선동과 동원의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활용됨으로써 러시아 제노포비아의 강화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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