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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ernalYoung Oct 03. 2018

“여행하는 언어”

문화와 언어 - 인도네시아의 사례를 중심으로

김형준(2001) “공용어의 확산과 이슬람화에 따른 인도네시아 자바어의 변화에서 자바인의 언어생활에 영향을 준 두가지 요소로서 인도네시아어와 이슬람화를 제시하고 있다. 다종족사회인 인도네시아에서 공용어인 인도네시아어의 위상 및 사용과 그에 따른 자바어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침투한 인도네시아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때 공용어이자 표준어로서의 인도네시아어는 코드 혼합의 수준이 어휘 뿐만이 아니라 발음 및 구문의 수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슬람화는 가장 특징적으로 자바인들의 언어에서 신을 부르는 방식의 분화를 가져왔는데 자바 토착화되어 발음되던 종교용어를 아랍식 발음에 가깝게 발음하려는 경향이었다. 이 논문의 특징적인 요소로는 언어의 요소중에서 의미의 차원 뿐만이 아닌 발음이라는 음성학적 측면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언어에 대해 이야기함에 있어서 발음이나 억양, 목소리의 질감 같은 측면은 간과하게 된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언어의 상징적이고 의미론적인 측면에만 주목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 언어, 준언어, 비언어 등 다양한 차원의 언어와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총체적인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저자의 현지연구 장소였던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 있는 욕야카르타(족자)에서 필자 역시 1년 동안 머무르며 다양한 상황에서 언어의 발음, 억양, 목소리의 질감 같은 준언어적인 측면에 고민하게 되었다.  처음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때 나는 주로 20대 중후반의 남녀와 어울리게 되었는데 높은 확률로 이들은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드라마 애청자인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가 아닌 실제로 한국사람을 보게된 이들은 반복하여 필자에게 드라마에서 보았던 그것, “아~” 를 해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도통 이들이 무엇을 본 것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곧,  한국인 화자가 “아~ 그거?” “아~ 그렇구나” “아~ 그래요?” 라고 말할 때의 그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오빠’ 같은 어휘나 ‘안녕하세요’ 같은 표현이 아닌 “아~”라는 말을 할 때의 음 자체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한국어 모국어 화자로서 단 한번도 이것을 신기하게 여겨본 적이 없었던 필자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고 언어에 따라 자주 사용하는 음의 높낮이나 관용적인 허사 등이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또한 모국어인 한국어를 사용할때도 필자는 특유의 목소리나 말투 등으로 인해 ‘사근사근하다’, ‘나긋나긋하다’, 영어를 쓸 때는 ‘soft’라는 표현을 많이 듣는 편인데 이것이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할때라고 다를리 없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족자에 사는 한국인이 족자사람처럼 (느리고 부드럽게) 말한다며 재밌어하였다. 자바섬 대체로, 특히 족자에서는 언어습관에 있어서 Kasar(거친)가 아닌Halus(부드럽게)하게 말하는 것이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맥락에서는 필자의 언어습관과 행위가 그저 개인의 특징 정도로만 여겨진 반면 인도네시아의 맥락에서는 지역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또한 종교용어 말고도 아랍어에 기원을 둔 단어를 아랍어와 가깝게 발음하려는 경향도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 외국인 학생들이 makanan khas (지역의 특별한 음식)을 ‘마까난 카스/카하스’라고 발음하자 인도네시아인 선생님이 비록 많은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잘못 발음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단어의 어원은 아랍어에서 왔으므로 ‘마까난 하스’라고 발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주위의 무슬림 친구들은 너무나 유명한 “인샬라”말고도 “알함두릴라”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친구가 키우던 고양이를 잃어버렸다가 찾았는데, 인스타그램에 다행히 신의 뜻으로 일이 잘 풀렸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언어는 한 문화의 상징체계를 견고히 구성하는데 일조하고 있으며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들의 에토스와 세계관, 윤리를 반영한다. 기어츠(1973)는 저작『문화의 해석』에서 ‘Rasa’ 와 ‘Cocok’이라는 단어의 사례를 통해 인도네시아인들의 에토스를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때 어휘 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에서 사용되는 발음, 억양, 말투, 목소리의 질감 역시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와 의도의 발화수반력을 가진다. 지인 중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러시아 여권을 가지고 태국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필자가  영어로 Armenia를 발음했는데 친구가 “’아르르(Rrr)메니아’가 아니라 그냥 ‘아르(r)메니아’야. 너 러시아 사람처럼 발음하네. 러시아인들은 아르르(Rrr)말고 그냥 R이 없거든.”이라고 하였다. 스스로Rrr발음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필자는 이 지적에 놀랐을 뿐 아니라 Rrr발음으로 인해 러시아-아르메니아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매우 오랜기간 오스만투르크 통치, 러시아혁명 등을 겪으며 동화와 박해 같이 러시아와 복잡한 관계를 형성해 온 아르메니아인의 입장에서 Rrr 발음은 하나의 지표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어에는 ‘ㄹ’만 있고 r발음이 없기 때문에 한국인은 발음이 힘들다’,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이다’ 등의 서사에 익숙한 필자와는 분명 다른 세계관이었다.  


  반면 북부 스웨덴 사람들은 ‘Yes’라는 의사전달을 위해 아주 독특한 방식을 사용한다.  ‘휘’라는 발음을 할때의 입모양을 만들고 마치 병 속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휩-’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 휘-입 하는 소리는 ‘응’, ‘아’ 등과 달리 어떤 어휘나 발음도 아닌 소리이지만 실제로 북부 스웨덴 사람들은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마치 언어처럼 사용하고 있다. 분명 다른 국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이 ‘휘-입’하는 소리는 언어나 의사소통이 아닌 그저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휘-입’ 소리도 언어의 일부분이며 스웨덴의 ‘문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때, ‘북부’ 스웨덴이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스웨덴의 북부에는 소수민족이 살고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내 소수 민족 Sami people(Samer)혹은 Lapp/Lapplander 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와 러시아 콜라 반도에 사는 민족들을 일컫는다. 스웨덴 내에는 대략 1.5만명에서 3만명 정도 거주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행해진 동화정책 때문에 현재 사미언어는 사멸 위기에 처해있다. 사미 부족은 순록 목축, 수공예품 생산이 전통적인 생업인데 지금은 순록 목축을 하는 사람들의 수는 많이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스웨덴 사람들이 명확하게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이 ‘휩-’ 소리를 통한 의사소통 행위 자체가 소수민족 혹은 지역정체성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김형준(2001), 강윤희(2004) 등 선행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네시아는 역사적으로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에 영향을 받아왔다. 인류학에서 현지 연구를 함에 있어서 현장의 언어를 익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다민족, 다언어 사용 지역이 존재하는 등 완벽한 조건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 본인의 모국어와 문화적 배경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인도네시아에서 길을 물어봤는데 아주 작은 현지가게를 가르키는 ‘키오스크’라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해 난처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폴란드인이 그 단어를 알아들었다. 사전에서는 키오스크를 ‘신문, 음료 등을 파는 매점’을 뜻하는 영어단어로, 정보통신에서는 정보서비스와 업무의 무인 · 자동화를 통해 대중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장소에 설치한 무인단말기* 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번더 어원을 살펴보면, 원래는 정자(亭子)를 일컫는다. 고대 이집트의 정원에는 종종 정자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페르시아, 터키, 시리아, 이집트 등 이슬람 식 정원에도 정자는 중요한 건축물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건물이 18세기의 영국, 독일, 프랑스의 정원에 도입되어 터키 어(語)인 Köşk가 전음(轉音)되어 키오스크가 된 것이다.  아마도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문화권 혹은 서구의 영향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폴란드의 맥락에서 어떻게 사용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재미있게도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최근 발전 과정에서19 세기 이후부터 형성된  '카페 지식인 (cafe intelligentsia)'의 이데올로기를 포함하는 이른바 "시민 카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저자 모니카와 조안나(2012)는 카페에서의 활동가들의 담론에 강력하게 나타나는 시민 사회와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바로 그 아이디어에는 사회적 분단을 극복 할 수있는 도시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드카와 문화를 가진 키오스크"가 메뉴에 진정한 (도시의) 민주주의를 가져오고 싶다면 바르샤바의 추잡한 수업은 조용한 군중의 말을 듣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로 보았을때 시민카페들은 현대의 카페 개념보다는 보드카를 파는 키오스크의 의미에서 변화해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극동세계(Far east) 에 위치한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무인정산기로서의 의미를 제외하고는 낮은 빈도로 사용된다고 생각한다. 전지구화를 통해 다양한 언어와 어휘들이 세계를 여행하고 조금씩 보편적인 어휘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극동에 도달하기 까지 많은 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언어를 문화라는 체계를 반영하는 거울로서 사용하기도 하고 언어 자체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는 언제나 과정으로서 존재하고, 전지구화(globalization)와 지역화(localization) 을 반복하며 그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 그리고 시공간적 맥락과 활발한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을 주의해야 하겠다. 


          



<참고문헌>

김형준 2001. “공용어의 확산과 이슬람화에 따른 인도네시아 자바어의 변화” 『사회언어학』 9(2): 49-70.

강윤희. (2004). 주변화에 따른 전통구술장르의 변화와 언어이데올로기: 인도네시아 쁘딸랑안 부족의 사례. 한국문화인류학, 37(2), 23-48.


“Kiosks with Vodka and Democracy: Civic Cafes Between New Urban Movements and Old Social Divisions,” in eds. Monika Grubbauer and Joanna Kusiak, Chasing Warsaw: Socio-Material Dynamics of Urban Change Since 1990 (Frankfurt, Germany: Campus Verlag, 2012).


          

[1] 기어츠. (1973). 『문화의 해석』문옥표 옮김.

[2] How do Swedes actually say "Yes"? (2016) https://www.youtube.com/watch?v=IJ7TddO22ig 

[3] [네이버 지식백과] 키오스크 [kiosk, kiosque]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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