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언어는 그 아픔을 이해하려는 의지를 가진 청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의사소통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또한 개인의 감각경험이란 너무나 주관적이어서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이해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강한 동기나 권력관계가 있어야만 한다. 이혜민(2016)의 ‘아픔을 관하기 ; 한의원에서 언어 사용을 통해 본 아픔의 언어화 과정'에서는 개인은 자신의 아픔을 언어의 형태로 옮겨냄으로써 아픔을 단순한 감각 경험으로 남기지 않고 사회적으로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언어화 과정을 통해 아픔은 타인과 교감되고, 공감되고, 소통될 수 있는 형태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아픔의 언어화는 개인적인 감각경험을 타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형태로 번역하는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다. 또한 환자와 한의사의 상호작용 속에서 충돌, 설득 혹은 협상을 통해 재구성되는 역동적인 작업이다. 이때 환자는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 일상생활의 맥락과 다양한 비유를 사용한다. 한의사는 개인의 아픔을 의료지식으로 번역하고 다시 환자에게 설명하는데 말은 감각을 전달할 수 없다는 언어이데올로기에 의해 많은 지시어와 비언어적 표현을 사용한다.
한의사가 아픔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번역과 설명에 참여하고, 환자와 충돌, 설득, 협상을 하려는 이유는 이 모든 과정이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적절한 처방과 치료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권위는 감각을 묘사하는 개인이 아닌 청자인 한의사에게 주어진다. 의료전문가인 한의사는 환자의 아픔을 ‘해석'해내야만 그 권위를 인정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비록 평등한 의사소통이 아닐지라도 역동적인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청자에게 ‘아픔'을 이해하려는 의사소통의 의지가 없을 시에는 이 모든 과정이 매우 험난해질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생리통이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은 생리통을 호소해왔고 안타깝게도 태어날 때부터 생리통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자신의 아픔과 생리 중의 감각을 비유를 통해 묘사해왔다. 자궁을 칼로 긁는 느낌, 스펀지를 쥐어짜는 느낌, 위경련이 아랫배에서 나는 느낌 등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공감했던 것은 “생굴을 낳는 느낌”이었다. 또한 이렇게 다채로운 비유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이 호소하는 ‘생리통'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들 역시 감각은 언어로 전달될 수 있다는 언어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짤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한 예시가 항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비행운 사진에 ‘생리중에 재채기할 때'라는 짤이었다. 의사소통의 의지를 가진 의료전문가들이 생리통의 존재를 번역하고 해석해주기 전까지 생리통은 긴 과정을 겪었다. 그동안 ‘꾀병'으로 치부되었던 여성들의 아픔은 이제 적절한 치료와 대응의 대상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감각을 언어화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방학동안 외국인 모델 에이전시에서 촬영장 현장 통역으로 일할 당시였다. 나의 역할은 한국인인 광고주나 사진작가들의 요구사항을 외국인(주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백인들이다)인 모델들에게 영어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정확한 언어화와 번역보다 중요한 것은 어찌되었든 요구한 사람이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도록 돕는 것이었다. 주로 당황스러운 요구들은 “너무 쎄보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하라고 말해주세요" “나이에 맞는 청순한 느낌이 나도록”, “당당하고 시크하게", “그윽하지만 노려보지 않는 눈빛" “봄날의 미소" 같은 묘사였다. 우리 회사 청바지가 잘 늘어나서 편안하다는 것을 강조해달라는 것처럼 차라리 광고의 목적을 드러내도록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런 광고현장의 의사소통은 두번의 문제가 있다. 첫째, 한국인인 나도 저 사람이 요구하는 “느낌"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것을 영어로 설명해야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결과물의 형태가 포즈나 사진 등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소통 과정에서의 조정, 협상, 설득 등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화자의 감각이 적절히 묘사 혹은 실현되지 못하는 ‘답답한'상황은 ‘화'를 내도록 만든다. 특히나 유럽과 아시아, 서양과 동양의 맥락에서 감각과 이미지는 그 나라의 지배적인 젠더 이데올로기의 강한 영향을 받는다. 예를들어 ‘세련된'이미지를 원한다는 요구에 모델은 ‘당당한'이미지를 묘사하지만 광고주는 ‘조신한'이미지를 다시 요구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통역자는 비록 의료지식과 같은 권위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지만 같은 문화권과 한국어권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화적 개념들을 이용하여 최대한 ‘마음'을 읽으려 노력한다. 이것을 다시 영어로 번역한다 하더라도 그 언어에 결부되는 젠더 이데올로기는 또 다시 의사소통의 장애를 일으킨다. 개개인의 감각은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다양한 사회문화적 영역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참고문헌>
강윤희, 2016, “언어와 감각: 커피 향미 표현에 대한 민족지적 사례 연구,” 『사회언어학』 24(1): 1-36.
이혜민, 2016. “‘아픔’을 ‘관(觀)'하기: 한의원에서의 언어 사용을 통해 본 아픔의 언어화 작업,”『비교문화연구』 22(2): 45-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