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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ernalYoung Oct 29. 2018

체코와 폴란드의 베트남인(1)

(중부) 유럽의 베트남 디아스포라

1. 들어가며


지금까지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 및 영미권으로 이주한 베트남인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고 베트남 디아스포라에 대해 비교적 잘 알려져있다. 가령, “Politics, Kinship, and Ancestors: Some Diasporic Dimensions of theVietnamese Experience in North America”(Dorais, Louis-Jacques. 2010) 같은 경우 미국과 캐나다 퀘벡에 거주하고 있는 베트남인들의 디아스포라적인 순간들을 비교하고 있으며 디아스포라 내에서 혈연과 친족관계가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또한 디아스포라 내부의 프로하노이, 프로사이공으로 일컬어지는 정치적 지향의 다양성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하여 미국이 가지는 역사적 책임 때문일 수도, 가장 많은 베트남인 이민자수 때문일수도 있다. 그러나 비교적 많이 알려져있지 않지만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에도 많은 베트남인들이 현재까지 거주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1960년대 체코는 단기적인 이주노동자들의 유입을 꾸준히 받아들였는데 베트남은 단기 노동자와, 견습생, 학생들을 보내던 중요한 송출국 중 하나였다. 또한 1990년대 후반부에 구소련 국가들에서 “양쪽을 오가는 이동성(Shuttle mobility)”현상이 나타나는데 폴란드로 중국인, 베트남인처럼 당시 폴란드에게 이국적인 외국인들이 많이 유입되었다.


 체코와 폴란드 두 국가 모두에서 베트남인들은 상위 10개의 이민자 국적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폴란드에서는 베트남인들이 아시아 출신 이민자를 대표한다. 이들 국가에서 이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노동이나 경제활동이다. 베트남 출신의 이민자들은 주로 체코에 많고 그 다음으로 폴란드에 거주한다. 특히 체코에서 베트남은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외국인들의 출신국가 상위4개국 안에 든다.


 체코와 폴란드에서 공간적으로 베트남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자. 체코에서는 인종 집단이 대체로 특정 도시나 지역에 집중된 양상을 보이지는 않지만 베트남인들은 예외적으로 체코와 독일 국경지역을 따라 집중된 작은 마을들에 거주하고 있다. 체코의 비정규적 노동시장은 낮은 임금, 높은 근로자 융통성에 대한 요구, 국내 노동력의 비교우위 상실등으로 인해 불법 이민자의 고용과 이주민의 유치를 유발한다. 또한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베트남 같은 포스트 소비에트 국가들이 체코의 비공식 경제에서 지배적이라고 지적했다. 공간적으로 이민의 과정으로서 불법적인 경제활동이 많은 지역들은 많은 수의 합법적 고용자를 가진 지역들과 일치하며 체코의 대도시들을 포함한다. 


 폴란드에서는 가장 큰 그룹의 외국인들 중에서도 베트남인의 수도 집중도가 가장 높았다. 그들 중 1/4은 단 한 지역 (Wola)에 살았으며, 베트남인 중 56 %는 중앙에 위치한 3 개의 좌파구(left-bank)에 거주했다. 특히 베트남인들은 폴란드 내에서 전통적인 정착 및 통합 패턴과 과년이 있는 유일한 집단으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주로 무역, 미식술 및 교육 등의 경제부문을 통해 더 영구적인 형태의 이주를 한다고 알려져있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체코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은 독일-체코 국경지역에 집중되어있고 폴란드의 베트남인들은 수도를 중심으로 대도시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같은 베트남 국적의 이민자들이 어떠한 연유로 폴란드와 체코에서 다른 거주양상을 보이게 되었는가? 거주양식의 차이는 베트남 이민자들의 이주경험에서 어떠한 차이를 가져오는가?  또한 각각 체코와 폴란드에서 베트남 공동체가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자신의 문화를 적응시켰는지, 그리고 정착국가 및 주류문화와 어떤관계에 있는지 세밀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2.   연구내용


2.1   동유럽의 베트남인들; 사회주의 국가로의 이주(Socialist migration)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공산주의 진영의 몰락은 동유럽과 소련에 있던 베트남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과거 고국으로 발전된 기술을 가져가기 위해 초대된 손님이라고 여겨지던 베트남인 학생, 견습생, 노동자들이 냉전의 종식과 함께 사회적 배재와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Christina Schwenkel은 냉전이후 고국으로 국가 건설을 위한 새로운 기술과 전문 지식을 가지고 귀국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남겨진 사람들(leftover bodies)”이 “의도하지 않은 다이스포라”를 구성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난민이나 정치적 추방자 신분의 베트남인들을 받아들인 서유럽과 북미 및 동맹적 관계에 있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와 달리, 이런 “의도하지 않은 디아스포라”의 베트남인들은 영구적 거주자들이라기 보다는 일시적인 노동력의 일원으로서 돌아가기로 예정되 있던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이들은 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우크라이나를 건너 자유가 약속되었던 폴란드, 독일, 체코에 불법적으로 남거나 향하게 된다. 


이처럼 역사적인 경험은 베트남인들이 체코와 폴란드에 정착한 원인이자 현재의 이주 상황에서도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체코와 폴란드 모두 2 차 대전 이전에는 이민 송출국가였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중부 및 동부유럽 국가에서 인구의 균질화 과정이 발생했으며 공산주의 시대의 고립주의 정책에 의해 심지어 강화되었다. 결과적으로 1990 년대 이전에는 이들 두 국가에서 이민을 받아들인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체코(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특별한 예외로 간주되는데, 사회주의 국가들이 공유하는 국제 원조 때문에 멀리 떨어진 개발 도상국 사회의 수련생, 노동자 및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의미있는 주체였다. 이시기 이주민들 중 일부, 특히 체코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은 1990 년대 이후에 다시 등장하여 새로운 이민자 커뮤니티를 설립했다. 폴란드의 경우에도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폴란드  시민권자와 결혼한 후 남기로 결정하였다. 폴란드와 체코가 사회주의적 혈연관계의 틀에 기초해 유지했던 노동 시장 접근과 경로는 가끔 나중에 같은 국가의 이민자들을 유입하는 배아가 되기도 했다.  


  가령, 체코와 독일 경계의 베트남인들은 남겨진 “색의 동지(comrades of color)”[1]의 의도되지 않은 디아스포라를 설명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당시 그 지역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임시비자를 가지고 있었고 노동 계약이 무효화 된 공산 정권 붕괴 이후에도 머물렀다. 이들은 매우 취약한 생계수단을 가지고 있었기에 생존을 위해 이미 사회주의 시기에 성장하고 있던 암거래 시장으로  유입되었다.  이러한 불법무역은 국경과 세대를 거쳐 전수되었고 이곳의 베트남 디아스포라가 “프라하(Prague)와 드레스덴(Dresden)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만들었다. [2]  독일어와 체코어를 하던 무역인들은 프라하의 사파 마켓(Sapa Market)과 드레스덴의 동쑤언 마켓(Đồng Xuân market) 을 오갔다. 과거의 역사적인 경험은 현재의 베트남인 이주에도 영향을 주었고 확장된 상품 교환도 지리적으로 베트남에서 부터 중국을 거쳐 소련, 동유럽까지 이어지는 이동경로를 따른다. 


  폴란드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와 달리 계약직 노동자 없이 학생과 연수생들로 이루어진 베트남 사람들은 국가와 시민사회 조직들 사이에서 베트남에 대한 충성심을 재확인 받는 동시에 서양의 민주화 개혁에 대한 압박으로 긴장 관계에 있었다. 동독과 특히 바르사바(Warsaw)에서 귀족 출신 베트남 이주자들은 과거의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이 만연한 포스트 사회주의의(Post-socialist) 유럽사회에서 어떻게 좋은 사회주의적 주체가 될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처하곤 했다. 


    2.2   체코에서의 특징


체코에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 중요한 장기 협력이 있었다. 정부 간 협약은 주로 베트남 시민의 전문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예를 들어, 1979 년 협약에 의거하여 총 8,700 명의 베트남 학생들과 23,300 명의 취업 연수생 및 훈련 참가자가 체코 슬로바키아에 도착했다. 또한 1980 년 협정에 의거하여 베트남 시민의 고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체코에 있는 베트남인 디아스포라의 특징들은 아델라 수라로바(Adela Souralova)의 체코의 베트남인 디아스포라에서 체코인 유모를 고용하는 것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연구 응답자들은 모두 198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와 베트남 사이의 사회주의 협약 시기나 2005년도에 체코에 왔다. 이후 그들은 베트남으로 돌아가 결혼을 하고 부인 혹은 아이들과 함께 체코로 돌아왔다. 이미 정착한 친척들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영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체코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1세대 이민자인 부모들이 자녀가 다 자라서 경제적으로 상황이 안정되면 베트남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가정이 주요한 이유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블록이 분해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를 비롯한 동구권으로의 베트남인 이민은 1989년을 기점으로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1989년 이전은 두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강력히 국가주도하에(state-managed migration) 이루어진 이민이라면, 1989년 이후는 자유 시장과 사적화된 보통의 노동 이주로 전환된다. 그러나 두번째 이민 경향은 사회적 네트워크와 송출-수용 국가의 공동체들 사이 관계에 의해 제한되고 형성되었다. 또한 1989년 이후 경제붕괴로 체코에 남아있던 베트남 사람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소규모 거래에 많이 종사하게 되었다.  체코에서 두드러지는 베트남 디아스포라의 특징은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집중도가 강하고, 일과 관련된 이주로 인해 인구구성에서 높은 비중의 여성과 어린이들, 매우 낮은 비중의 비생산인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 하에 체코에서 베트남 가정들이 체코인 유모를 고용하는 현상은 아주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이민자가 유모로 노동하는 현상과 반대된다. 또한 다른 나라의 베트남 이주자들은 유모를 고용하지 않는다. 체코의 다른 이민자 집단은 베트남인들처럼 조직적으로 체코인 유모를 고용하지 않으며 일반적인 체코 가정에서 유모를 고용하는 것이 흔한 일도 아니다. 이는 베트남 디아스포라 구성원이 어떻게 일과 가족생활을 병행할 것인지, 모국과 새로운 정착국가에서의 가족 모델을 어떻게 재고할 것인지 그리고 직면한 새로운 가족 상황을 대가족의 도움 없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통해 가정해볼 수 있다.  


 첫번째 주목할 점은 베트남과 체코에서 노동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도 맞벌이 가정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그들이 이주를 통해 이민자 경제 내에서 사업가가 되면서 비숙련화(de-skilling)가 일어난다. 이런 비숙련화는 노동의 강도를 강화시킨다.  두번째 주목할 점은 베트남인으로서 체코에 산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지만 그들의 아이들이 사회에서 이국성(foreignness)이라는 낙인을 가지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해야한다.  세번째는 일과 가족 사이에서 일상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부모들에게 체코는 일을 하는 곳이지만 자녀에게 체코는 삶의 장소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일이 곧 삶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 일하지만 시간상 함께 할 수는 없게 된다. 


  베트남에서는 맞벌이 부부가 자녀 양육을 위해서 엄마들이 집에 있거나 아이를 보호시설에 보내거나 아이들 돌봐줄 제3자를 찾는다. 체코에서는 1989년 이후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여성들은 일을 더 많이 하게 됬다. 그러나 동시에 가정에서 남성의 양육과 집안일 분담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체코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이루어지는 양육 지원책은 베트남인들이 많이 사는 국경지역에 충분하지 않거나 시간적으로 유연성이 부족하여 이용할 수 없다. 또한 양육 모델에 대한 베트남과 체코의 차이도 있다. 베트남 이민자들과 달리 체코에서는 ‘모성 신화’가 유행하여 아이들을 보호시설에서 집단적으로 양육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베트남인들을 위한 자녀보육시설들이 너무 멀거나 자리가 없거나 시간이 적합하지 않았다. 


사실 많은 경우에 베트남에서 조부모, 특히 할머니가 양육을 떠맡는다. 그러나 친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주의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유모는 엄마 그리고 할머니의 자리를 대신하며 “우리 가족의 일원”이라는 레토릭을 가지게 된다. 또한 유모라는 직업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으로서 경제적 여유가 있지만 시간이 많거나 ‘유모’라는 직업을 원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같은 이유로 체코인 할머니(유모)가가족 반경안에 포함되며 할머니로서 받아들여진다. 베트남인들은 체코에서 인구학적으로 유모일에 적합한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유모라는 직업을 가치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체코인 유모들은 주류사회와의 연결지점이자 가족의 체코에서 생활의 적응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들이 체코어와 체코인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전수하여 사회적 문화적으로 디아스포라의 2세대 구성원들이 체코를 집 혹은 모국이라고 느끼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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