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유럽의 베트남 디아스포라
폴란드의 베트남 디아스포라 역시 두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첫번째는 과거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하노이 출신 베트남인들이 작지만 일관된 공동체를 형성했고 폴란드로의 연쇄이주를 자극했다. 둘째는 폴란드인과의 결혼이 이주를 정착으로 전환시키는 주요 요소였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폴란드인 배우자와 결혼한 후 또는 베트남으로 돌아온 후에 폴란드와 문화적 관계를 유지하고 무역과 같이 양국간의 경제적 협력에 종사했다. 1986년 베트남의 자유화와 폴란드 전환기의 우연적인 일치로 기업가 정신이 유행했다. 이때 폴란드의 베트남인의 경우 가족의 재결합과 결혼 이주가 안정된 이주와 정착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폴란드에서 두드러지는 국제(mixed)결혼에 관해 주목해야 한다. 이민법의 영향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1998년에 폴란드 시민권이 외국인에게 직접적으로 부여되어 거의 자동으로 폴란드인의 배우자가 되었고 그 결과 베트남 여성과 폴란드 국민 사이의 결혼 수가 상당히 증가한 통계가 있다.
무역 등에 종사하여 경제적 기여와 현지인과의 결혼 등 앞서 언급한 요인들 덕분에 비교적 많은 수의 베트남인들이 폴란드에 정착하게 되었고 이는 폴란드에서 재현되는 텟(Tet) 축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텟(Tet)은 베트남의 음력 설로 모국인 베트남과 디아스포라의 공동체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축제이다. 보통 베트남인들은 텟 축제를 대가족과 함께 축하해야한다고 여기고 이 대가족의 범위에는 심지어 죽은 조상들도 포함된다. 이 축제를 위해 사람들은 주로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디아스포라에서는 대신에, 특정 이민 단체에서 공동체 차원으로 조직된 행사에 참여한다. 때문에 이런 텟 축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뿐만아니라 정치적으로 다양화된 베트남 디아스포라의 관점을 보여주는 장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관점으로 디아스포라를 국가와 연결된 디아스포라(state-linked diaspora)와 국가와 연결되지 않은 디아스포라(stateless)로 보는 방법이 있다. 폴란드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은 국가와 연결된 디아스포라에 속한다. 하지만 최근 미국이나 서유럽 디아스포라와 연대하려하는 친-민주적인 활동가들이 나타났다.
대사관을 통해 베트남의 국가정책 방향에 초국가적으로 영향을 받아 베트남 디아스포라의 ‘공식적인’ 조직으로 존재하는 AVP(the Association of the Vietnamese in Poland)는 ‘외부의 시민권자’인 이민자들에게 국가의 명시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많은 폴란드의 베트남 사람들이 언젠가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기 때문에 ‘비공식적’인 조직을 지지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반공산주의적인 활동들은 반정부적일 뿐만 아니라 반-베트남적인 것이자 반애국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친민주적인 조직들은 그 수가 아직 적지만 폴란드의 미디어와 인권단체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 2014년에 일어난 2번의 텟 축제는 폴란드 내 베트남 디아스포라의 정치적 다양화를 보여준다.
두 축제 모두 베트남인 공동체 내부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베트남 문화를 외부 폴란드 주류사회에 홍보하여 통합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이 두 축제는 정치적으로 AVP와 반 공산주의자 활동자들 모두에게 두가지 투쟁의 전쟁터로서 고려된다. 바로 베트남 공동체의 ‘정서적 투쟁’(struggle for the souls) 과 포란드의 대중에게 공유되는 ‘이미지 투쟁’(struggle for the image)이다. 최근까지 AVP는 베트남 공동체에서 공식적인 주최자로서 높은 지지를 받아왔고 첫번째 투쟁에서 이기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친 민주주의 세력들은 폴란드 미디어에 공산주의 정권에 억압받은 베트남인들의 이미지를 만들어 두번째 투쟁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베트남계 폴란드인 1.5세대와 2세들의 재현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베트남의 정치적 다양화와 민주주의의 소개를 위해서 친민주주의 세력들은 폴란드 출신과 베트남 출신의 대중 모두를 끌어들이려 한다. 이들에게 행사의 정치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모국과 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베트남 정부의 정책을 따르고 송금 처럼 이민자들에게서 제공받는 경제적 이권들을 극대화 하려는 공식적 조직체들은 철저히 정치적 요소들을 배제하고 문화적 측면만을 강조한다. ‘전략적 본질주의’(strategic essentialism)으로 이야기 되듯이, 폴란드 주류사회에 ‘베트남 전통문화’와 전통적 가치를 따르며 무해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조화로운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 말인 즉슨, 폴란드 영토 내에서 공식적인 이민자 조직들이 초국가적으로 베트남 사회주의 정부와 연계하여 베트남 정부의 정책을 이민자들에게 실행하고 베트남인들의 통합의 패턴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동시에 또다른 초국가적인 교류의 주체인 친민주주의 세력들은 미국의 베트남 디아스포라의 모델을 참조하여 폴란드 거주 베트남디아스포라의 담론을 형성하려 한다. 두가지의 상이한 모델이 충돌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폴란드의 베트남인들에게 2개의 텟 축제는 베트남계 폴란드인들 2세대들과 모국과 정치적으로 긴장관계에 있는 디아스포라에 대한 담론에 관한 것이다. 국가가 제공하는 담론과 문화적 정체성이 맞지 않다고 느끼는 많은 디아스포라의 2세대 구성원들이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3. 맺음말
지금까지 동구권 국가들 중에서 폴란드와 체코를 중심으로 베트남인 디아스포라의 이주와 정착의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베트남이라는 같은 국적의 사람들이며 정착국가 역시 과거 동구권으로서의 역사적 배경에서 공유하는 지점들이 있으나 이주자의 사회경제적 상황, 수용국가에서의 맥락에 따라 두 디아스포라는 독특한 정착의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폴란드에서 재현되는 텟 축제와 체코에서 베트남 디아스포라가 체코인 유모를 고용하는 것 모두 디아스포라의 주류사회와의 소통을 위한 노력이자 정착의 과정에서 나타난 경험들이다. 공통적으로 주류사회에서 베트남 디아스포라를 보는 시각과 특정한 담론이 존재하고 이는 갈등상황과 새로운 현상들을 만들어낸다. 폴란드의 경우 현지인과의 결혼이라는 차별적인 정착과정으로 인해 다른 동유럽 국가들 보다 조금 더 많은 수의 베트남인들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착하였다.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서 친민주주의 같은 디아스포라 내부의 정치적 다변화가 발생하기도 하고 베트남계 폴란드인들과 디아스포라 2세대 구성원들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변화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공동체의 차원에서 디아스포라의 의미와 정착의 과정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체코의 경우 디아스포라 공동체 차원에서의 정착을 위한 노력이나 담론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개개인과 가족적 차원에서 실존하는 차별과 담론들에 대항하기 위한 적응 전략으로서 주류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체코인 유모를 고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경지역에 많이 거주했던 체코의 베트남인들에게 과거 초국가적 무역이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들은 완전한 디아스포라라기 보다는 코스모폴리탄적이고,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 갔었다. 체코에서는 또한 같은 상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지역에 따라 민족공동체 외부에 정착여서 주류사회에 통합하여 적응해나가는 사람들과, 민족공동체 안에서 체코어도 익힐 필요 없이 베트남인들의 도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파 마켓 상인들 사이의 차이가 있다. 그동안 밀폐되고 고립된 공동체라는 주류사회에서의 이미지처럼 체코 사회에 통합이 안되었었기 때문에 최근에야 디아스포라를 벗어나서 수용국에 적응하려는 움직임, 문화를 재현하려는 움직임들이 생기고 있고 이들의 인식 변화에 자녀들의 학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폴란드에서 베트남과 폴란드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난 베트남계 폴란드인 2세들에 대한 담론은 현 상황에서 큰 시사점을 준다. 베트남계 2세들이 폴란들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완벽한 폴란드어를 구사함에도 이들은 스스로도, 민족적 다수로서의 폴란드인들에게도 완벽한 폴란드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폴란드인의 정체성으로서 폴란드 종족 정체성의 규범이 폴란드 사회 내부에 매우 깊이 관여하고 있어서 소수 집단의 구성원들조차 스스로를 완전한 폴란드인이라고 이해하는데 실패한다. 현실의 상황과는 동떨어지게 아직까지 폴란드를 비롯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지에서 도덕적 카테고리로서의 ‘백인’(whitness)이 사회적으로 유효하게 통용되고 있다. ‘찢어진 눈’과 ‘노란 피부’를 가진 2세대들은 담론의 밖으로 밀려난다.
이들의 실제 삶 속 경험에서의 모순을 통해 본질적으로 고르지 않은 세계화의 방향을 인식하게 된다. 동유럽에서 세계화에 관한 논리가 소중히 여기는 탈영토화와 통일된 세계에 대한 개념에 대 반대하여, 세계화 과정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억압된 문명 프로젝트를 상기시킨다. 즉 베트남계 폴란드인에 대한 인종화와 그들의 외국인으로서의 본질화를 통해 그렇게 서쪽도 아니고 너무 동쪽도 아닌 폴란드의 역사적 위치에서 비롯된 폴란드의 1989년 “유럽으로의 귀환”(Return to Europe)담론을 허용한다. 특히 애니코 임레(Anniko Imre)가 말하기를, 동유럽 국가들의 백인성에 대한 암묵적인 주장은 그들의 “유럽적임”(Europeanness)을 확신시키는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덜 인지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의문 없이 이 담론이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담론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폴란드에서 이주, 인종,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권력구조가 형성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체코의 베트남 디아스포라 2세들도 비슷한 담론 하에서 ‘체코인’유모를 고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담론이 동유럽 사회에 계속해서 통용되는 한 신체적으로 구별되는 특질을 가지는 베트남 디아스포라 2세대들은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끝없는 갈등을 겪고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동유럽 사회에 통용되는 문명과 유럽에 대한 담론이 아시아계 이민자의 신체를 거쳐 구체화되었고 이는 폴란드와 체코에서 베트남 디아스포라의 정착과정에서 독특한 적응과 재현 전략을 생성하였다. 전지구화와 함께 계속되는 이주와 이민, 이산의 과정 속에서 디아스포라는 수많은 담론의 장이 되고 이것이 우리가 디아스포라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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