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북경자전거 >
북경에 자전거가 많다니. 생소했다. 나는 2014년에 인민대학교에 다니는 91년생 친구 판조를 만나기 위해 대학친구들과 북경에 갔었다. 판조는 당시 인민대학교에서 경제학과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북경에 있는 시진핑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전에는 뉴질랜드에서 유학한 경험 때문에 매우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이모 역시 인민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북경에서 나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고 하루는 판조의 친구가 아우디 차를 가져와서 시내구경을 시켜주기도 하였다. ‘내가 언제 또 아우디를 타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도로에 많이 보이는 현대자동차들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함께 만리장성을 오르면서 당시 화제이던 영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얘기를 했었고, 마오쩌동 동상을 보고 판조는 어쩐지 따옴표 제스처를 하며, “이분이 바로 그 위대하신 우리 건국의 아버지야”라고 했다. 만리장성 후에는 판조의 부모님이 다닌다는 발 마사지집에 갔다. 20대 중반의 마사지사들이었는데 음양의 조화를 위해 여성은 남성 마사지사, 남성은 여성 마사지사가 배치되었다. 판조는 한국에서 온 우리가 다양한 외국어를 배우는데 관심이 많은 것을 보고 신기해 했는데 중국에서는 영어 외의 외국어 교육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했다. 외국에서 온 우리를 위해 판조는 매번 신장위구르, 쓰촨, 베이징 등 다른 지역의 음식점으로 우리를 데려갔고 항상 상다리가 휘도록 많은 음식을 시켜주었다. 다 먹을 수 없는 음식 양에 난처해하는 우리를 보고, 풍족하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예의라고 했다. 또한 우리는 훠궈를 먹으면서 한 자녀 낳기 정책으로 인해 부모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부담스러운 학업 압박, 중국식 입시제도의 어려움 등을 이야기했다. “베이징에는 아무나 살 수 없어”라는 말이 그때는 이상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호구제도를 설명하려 했던 것 같다. 판조는 내몽고 출신인 여자친구와 함께 영국으로 석박사유학을 준비하게 될 거 같다고 했다. 동창회를 간 판조 대신 하루는 한국어에 관심이 많은 판조의 친구가 동행해 주었는데, 지하철과 박물관이 전부 지나치게 검열이 심하다고 느꼈었다. 그 친구는 베이징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민대학교에 진학했지만 판조만큼 부유해보이지는 않았다. 그 친구와 내몽고 출신인 판조의 여자친구는 ‘판조는 애초에 우리랑 달라’라는 생각을 가진 듯 했다. 언어장벽을 넘어 힘들게 그들은 대학입시에서 소수민족 쿼터제와 시스템을 설명하려 했는데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학생 개개인의 인생에서 굉장히 까다롭고 힘들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북경에서 돌아온 이후 일반적인 연락의 방법이 이메일에서 페이스북, 카카오톡, 왓츠앱 등으로 바뀌면서 중국에서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을 사용할 수 없는 판조와는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도대체 내가 경험한 북경에 그 많은 농민공은, 구웨이는 어디에 있는가? 가난한 도시민인 지안은 여기서 누구인가? 어쩌면 어리숙해 보이던 발마사지사들이나 훠궈집의 서빙 직원들은 도시 노동자로 살고 있는 신세대 농민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도대체 내친구 판조는 누구인가? 추측컨데, 중국에서는 호구제도를 비롯한 각종 사회적 차별을 통해 가속화된 경직된 계층화와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를 바탕으로 초국가적 엘리트 집단이 군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업가든, 부동산 업계든, 주식시장이든 “큰 손은 전부 중국인이다”라는 말이 농민공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신세대 엘리트들은 외국생활을 통한 자유주의적 사고관과 자본주의 문화를 통해, 판조가 마오쩌동을 완전히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은 것처럼 전통적인 중국적 가치관에 균열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판조가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못해 연락이 끊어졌던 것처럼 거대한 중국의 사회주의적 정책과 이데올로기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왕샤오슈아이 감독이 2001년에 농민공의 어려움과 도시민의 차별, 빈부격차 등을 그리려고 했다면 영화 이후로도 10년이 넘게 흐른 후 내가 본 북경에서는 도시민 사이에서도 엄청난 빈부격차와 계층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생존수단으로서의 자전거를 포기할 수 없었던 구웨이와 달리, 여자친구를 뺏긴 후에는 자전거를 포기하였던 지안을 각각 온포상태와 소강사회의 인민으로 비유한다면, 판조는 이미 유토피아로 상상되는 대동사회의 경지에 이른 것일까? 대동사회의 특징은 노동 능력이 있는 자는 노동에 종사할 수 있게 하며 노동 능력이 없는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인은 사회 보장제에 의해 부양한다는 것이다. 대동사회의 이상을 근거로 할 때, 경제 성장의 궁극적인 목적은 ‘경제 성장에 걸맞은 복지 향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농민공에 대한 차별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중국의 발전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힘이 자기로부터 나오지 않음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자기만을 위해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대동사회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판조 같은 신세대 초국가적 기득권 계층의 고민과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시진핑 시대의 공산당과 중국이 그리는 미래 속에서 구웨이와 지안, 판조의 모습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