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케이크메이커 Cake Maker >
달달한 케이크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죠?
정말 묻고 싶다. 그리고 저 맛있게 생긴 포스터를 보고 영화를 안 보고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특히 영화를 보고난 후인 지금은, 왼쪽 맨 밑에 두 주연배우가 옆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모습이 영화를 잘 보여주는 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에서 굴을 먹는 장면 이후로 <케이크메이커>의 케이크 먹는 장면이 영화와 음식의 관계를 이야기할때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본 후 가장 오래 나에게 여운을 남긴 것은 토마스의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너무나 외롭게 살아온 나머지 토마스는 독일과 이스라엘을 왔다갔다 출장다니는 오렌과의 간헐적인 만남에서 사랑과 행복, 삶의 의미를 얻는다. 토마스에게는 오렌이 아내와 아들, 가정이 있다는 것도 그를 자주 보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자라면서 마치 고아와 같은 삶을 살았다.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없이 한 번도 사랑받은 적이 없는 거 같다. 그의 외로운 삶은 묵묵히 일을 하는 그의 몸짓과 표정에서 드러난다. 지나가며 케익을 사러 들른 손님은 무심코 넘어갈지 모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크게 웃거나 슬퍼하지도 않고, 소리 지르지거나 화를 내지도 않고, 자신의 표정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토마스를 보게 된다. 그의 몸짓도 제과제빵을 할때 말고서는 큰 바디랭귀지를 보이지 않고 매사에 절제되어 있는것만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토마스가 느끼는 외로움을 더욱 크게 느낀다. 마치 실망하고 상처받고 싶지 않아 감정을 느끼는 법을 잊으려는 사람 같이 행동한다.
지독하게 외로운 토마스가 케이크메이크라는 직업을 고른 이유는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달콤하고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순간적으로 표정이 밝아지며 행복해하는 손님들, 그리고 아나트를 지켜보는 토마스의 모습이 그 단서다.
이 영화는 독일-이스라엘 합작 영화로서 주목을 받았고, 감독은 "국가, 종교, 정체성을 넘어선 사랑"을 다룬 이야기라고 영화를 설명했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원래 사랑은 국가, 종교, 정체성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
나와 2년을 함께한 슬로바키아인 연인은 정말 열심히 싸웠다. 그때마다 그는 "너는 잘사는 나라(rich country)에서 온 버릇 없는 아이(spoiled child)" 라고 소리쳤고 나는 "너야말로 소련시절의 가치관을 가진 구식인간"이라고 소리쳤다. 사실 처음에는 우리가 왜 이렇게 싸우는지도 몰랐지만 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다 알게 되었다. 가정에 무책임했던 아버지, 소비에트 시절의 근검절약과 노동을 중요시하는 나이 많은 어머니, 철 없는 세명의 누나, 그가 위안을 얻었던 교회 등. 그가 한국의 후기 자본주의와, 청년 취업난, 가성비를 중시하는 문화, 소확행 등을 이해했다면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