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아뉴기니에서 한국까지
파푸아 뉴기니의 가푼마을에서 여성과 남성은 공개적으로 화를 내는 방식에 대해 다른 언어 수행을 하고 있었다. 남성들은 화를 표현해도 즉시 그것을 부정하고 감추었고 때문에 파괴적인 행위를 불러올 수 있는 날것의 화를 내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화는 남자들에게 마치 그들이 지식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다루어졌다. 반면 여성들은 뻔뻔스럽게 화를 표출하고 화가 불러올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남성과 달리 화를 낸 이후 격앙된 상황을 완화시키려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어린애같고 파괴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스테레오 타입이 생겼다. 그러나 이 상황은 전통, 토지, hed의 개념 그리고 여성과 연결되는 Taiap이라는 지방어와 기독교, 백인, 돈, 학교 등 근대성과 연결되는 Tok Pisin이라는 표준어의 언어이데올로기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남성들의 Tok Pisin을 이용한 언어활동은 언제나 공식적이고 근대적이고 지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가푼 마을의 중대사는 남성의 집에서 이성적이고 화를 내지 않는 협동을 지향하는 어른 남성들에 의해 결정된다. 어렵지 않게 가푼 마을이 가부장적 사회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지방어와 표준어가 함의하는 언어이데올로기로 인해 남성과 여성에 대한 젠더 스테레오타입이 생산되었고 그것은 가푼 사회에서의 젠더질서를 공고히 시켰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사회에서 언어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젠더와 권력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성폭력과 그러한 성폭력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에서 우리 사회의 언어이데올로기와 젠더질서가 드러난다. 성폭력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레토릭들이 있다. “딸 같아서 예뻐해준 것 뿐이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어서 그랬다”, “술을 먹어서 우발적으로 저질렀다” 등 너무나 많이 들어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놀라운 점은 모두 명확한 가해자들의 목소리이고 우리는 가해자의 목소리는 언제나 들을 의향이 있고 또 기억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상대 여성이 꽃뱀이었다”, “앞날이 유망한 젊은이(가해자)의 실수” 등의 말과 함께 사라진다. 또한 사회의 성폭력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들 역시 성폭력 가해자를 ‘비정상’적이거나 ‘일탈적’, ‘예측불가능’한 개인으로 묘사하고 동시에 여성 피해자는 무력하거나 성적 매력을 사용하여 남성들에게 여지를 주는 공동체의 ‘위험한’ 존재 등으로 서술하기도 한다. 이러한 레토릭들은 여성의 사회공간을 제약하고 남성에 비해 열등한 사회적 존재로 여성의 위치를 재생산하여 사회의 젠더질서를 강화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질타받아야 할 범죄인 성폭력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 순결을 훼손당한 여성의 몸이라는 식의 프레임은 크게 문제제기되어 왔다.
성폭력은 항상 권력관계와 사회적 구조 안에서 발생한다. 윤창중 대변인의 인턴 성추행, 교회 목사의 청소년 신도 성폭행, 영화 감독의 여배우 성추행 등 무수한 예시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고착화된 언론의 성폭행사건 보도 방식이나 우리사회에서 성폭행 사건들을 묘사하는 언어들은 성폭행 사건을 개개인의 문제로 수렴시킨다. 특히 성폭행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꽃뱀과 같은 단어는 여성에게 사회적 낙인의 두려움을 심어주고 사회의 젠더질서와 젠더위계를 더욱 강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파푸아 뉴기니의 가푼 마을에서 화를 내기 때문에 비이성적, 전통적, 무책임한 여성들이 공동체의 화합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서 배재되어 진것을 앞선 사례에서 확인하였다. 그런데 언론의 성폭력 보도 방식과 사회에서 이야기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묘사를 통해 우리 사회 역시 성적인 매력으로 공동체의 화합과 유지에 해를 가하는 위험한 여성들의 존재를 배제하려는 모습을 보았다. 가푼마을의 경우 언어이데올로기로 인해 만들어진 젠더 스테레오타입이 공론의 장에서 여성들을 배제시켰고 후자의 경우는 사건 이후 만들어지는 사건의 정의와 담론들이 젠더 스테레오타입을 재생산하고 있다.